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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중도 진보적'해법이 더 좋다

‘더 무책임한’ 주장을 ‘더 진보적인 주장’으로 혼동해서는 안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기사입력 2017/05/23 [13:07]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중도 진보적'해법이 더 좋다

‘더 무책임한’ 주장을 ‘더 진보적인 주장’으로 혼동해서는 안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입력 : 2017/05/23 [13:07]

최병천 (정책혁신가, 前 국회의원 보좌관) 

문재인 대통령이 ‘찾아가는 대통령’의 첫 번째 행보로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대통령의 일정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국정의 최우선’으로 두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훌륭한 선택이며, 약간은 감동적이었다.

 

‘월급쟁이 변호사’를 200명 고용하는 A대형로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A로펌에 변호사는 아니지만 이런 저런 행정-보조 업무를 하는 노동자 800명이 있다고 가정하자. 변호사들 연봉은 2억원, 행정-보조 노동자 연봉은 7천만원이라고 가정하자.

 

이 경우, A로펌 변호사에게 연봉 2억원을 주고, 행정적-보조 업무 노동자에게 연봉 7천만원을 준다면, a) ‘차별’인가 아닌가? b)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위배인가 아닌가? c) A로펌 변호사와 노동자 모두에게 ‘급여를 동일하게’ 줘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 주장은 타당한가 아닌가?

 

이러한 연봉-급여 차이는 a) ‘차별’이 아니며 b)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며 c) ‘모두에게 급여를 동일하게’ 줘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간접고용 노동 - 인격적 종속성, 갑(甲)질의 근본 원인은, 고용불안 그 자체

 

인천공항의 경우 정규직 15%, 비정규직 85%이다. 정규직의 평균연봉은 약 9천만원, 비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약 3500만원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년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는 ‘용역 회사에 의한 간접고용’이 많았기에 상시적인 고용 불안정에 시달렸다. 자본의 횡포와 관리자-상급자의 횡포에 대해서 노동자의 정당한 방어권(=즉, 대항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고용불안’ 그 자체가 인격적 종속성을 강화시키고, 갑(甲)질에 대한 방어능력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①숙련이 높지 않은 + ②고용이 불안정하고 + ③노동자 평균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지만 + ④ 용역ㆍ파견업체에 의한 + ⑤간접고용 비정규직에 대한 합리적 대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합리적인 해법은 ①숙련이 높지 않기에 + ②고용을 안정화시키되 + ③급여는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 + ④공공부문 자회사에 의한 + ⑤정규직 노동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해법은 A로펌의 예시처럼 ‘숙련 및 직무의 차이’를 고려하는 것이다. 이는 내용적으로,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 직무형 정규직에 가깝다.


‘더 무책임한’ 주장을 ‘더 진보적인 주장’으로 혼동해서는 안돼

 

연봉 9000만원 받는 노동자 2,000명이 있고, 연봉 3500만원 받는 노동자 8,000명이 있는데, 연봉 3500만원 받는 노동자의 급여를 모두 연봉 9천만원으로 올릴 경우, 추가되는 급여 재원은 6.65배이다. 한마디로 ‘불가능한’ 해법이다.

 

► 현행, (9천만원×2,000명)+(3천5백만원×8,000명)=1800억원+2800억원 = 4,600억원
► 모든 노동자 9천만원으로, 1800억원 + 2조 8800억원 = 3조 600억원 (6.65배 증가)

 

혹시라도, 민주노총 혹은 진보정당 일부에서 ①고용 안정 + ②자회사를 통한 + ③정규직화에 대해 그것은 ‘가짜 정규직화’라고 주장하며, ①직접고용 + ②동일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만 진짜 정규직화라고 주장한다면, 그런 주장은 ‘더 진보적인’ 주장이 아니라 ‘더 무책임한’ 주장에 해당한다.

 

한국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진짜 핵심은

정규직/비정규직의 격차가 아니라, 원청/하청 격차이다.

 

원청 비정규직은 1차 협력사 정규직보다 급여가 높고, 1차 협력사 비정규직은 2차 협력사 정규직보다 급여가 높다. 즉,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의해서 ‘지위’가 결정되는게 아니라, 원청에 속하느냐, 하청에 속하느냐에 의해서 ‘지위’가 결정된다. 정규직/비정규직의 구분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원청/하청에 의한 지위가 더욱 ‘결정적’이다.


한국의 간접고용이 많은 이유와 ‘기업단위 노조위원장 직선제’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용역ㆍ파견ㆍ외주(=간접고용) 비율이 많아진 것에는 노동조합 운동의 책임도 적지 않다. 그 핵심은 ‘기업별 노조에 연동된, 노조위원장 직선제’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병원사업장의 경우 핵심역량은 의사와 간호사이다. 그런데 기업별노조와 기업별 노조위원장 선출구조로 인해, 노조위원장 선거를 거치며 병원내 기술직 노동자의 급여가 핵심 역량인 간호사에 근접하게 된다. 조무사의 경우도 대동소이하다.

 

이런 ‘기업 내부의 획일주의적 평등주의’는 부정적 외부효과로 작동하게 된다. 즉, ‘기업단위 노조의 내부 정치’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숙련과 직무 차이가 무시된 기업내 상향평준화가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이는 회사-사측 입장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증가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회사-사측은 비용절감을 위해 ‘저숙련 직무의 외부화’를 추진하게 된다. 즉 용역 및 파견업을 확대하게 된다.

 

요컨대, 기업단위 노조위원장 직선제는 정치로 치면 ‘소선거구제’의 폐해와 매우 유사하다. 소선거구제에서 선출되는 국회의원은 ‘나라 전체’를 생각하기보다는 ‘(소규모) 지역구 관리’가 훨씬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동네에서 악수 많이 하고, 축사 많이 하는 것이 정치행위의 핵심이 된다. 그리고 쪽지 예산 등을 통해 지역구 예산 따오기가 지상과제가 된다.

 

기업단위로 선출되는 노조위원장 직선제 역시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노동계급 전체’ 혹은 ‘전국단위-산업단위 노동시장’을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소규모) 기업내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생산성과 직무를 고려할 때 핵심 역량이 아니어도 ‘쪽수가 많은’ 기능직 조합원들의 이익이 과대 대표된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방송사 노조이다. 방송사의 본질적 미션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감시하는 것이다. 핵심 역량은 당연히 ‘기자’이다. 그러나 기자 조합원의 쪽수는 방송사 기능직 조합원의 쪽수에 비해 적다. 그러다보니 기자들이 중시여기는 ‘방송독립성 이슈’보다 ‘조합원 처우개선 이슈’가 더 중요해진다. KBS 노동조합이 둘로 갈라지게 된 것에도 이러한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16년 여름에 전 국민을 가슴 아프게 했던 지하철 2호선 구의역 19세 김군의 죽음 역시 김대중 정부와 메트로 노조의 잘못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진행된 ‘저숙련 직무의 외부화’로 인한 피해자였다.


민주노조 운동 - 노동기본권 쟁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한국의 민주노조 운동은 냉전의 시대에 반공 파시즘적 국가 탄압과 구사대의 식칼테러 위협을 당하며 노동기본권을 피와 눈물로 쟁취한 영웅적인 투쟁을 했다. 그래서 ’노사관계의 민주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노조 운동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것은 ‘구조적’으로 그렇게 귀결됐다. 기업단위로 분절되어 있는 단체협상 구조하 에서 원청 노동자의 지위상승은 원청-하청의 격차 확대로 ‘파급-이전’되었다. 물론, 민주정부 10년 역시 오늘날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누구의 잘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다. 민주정부 10년, 민주노조 운동, 진보정당 모두가 ‘노동시장 전체 구조’와 기업단위 경제적 전투주의가 미친 파급효과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공동책임이 있다. 그래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결은 함께 노력하고, 함께 지혜를 모으고, 함께 양보해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경우 ▴숙련 ▴직무 ▴상시성 ▴예산제약을 고려하여,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와 별도의 직무체계 신설을 통한 직접 고용 등 다양한 방법을 실사구시하면 된다. 비정규직의 발생원인과 작동 구조는 다양하다. 어느 하나만을 정답이라고 단정 짓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함께 해결하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법을 둘러싸고 ①중도진보 ②전통진보 ③전통보수가 각기 다른 원인진단과 해법을 둘러싸고 ‘정책-노선 논쟁’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한국사회 정책-담론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매우 역사적인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최병천 (정책혁신가, 前 국회의원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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