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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진보’세력이 좌파인가?

‘진보·보수, 좌익·우익’을 바로 알고 ‘매카시즘’을 분쇄해야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

권혁시 칼럼 | 기사입력 2017/01/26 [21:22]

‘보수’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진보’세력이 좌파인가?

‘진보·보수, 좌익·우익’을 바로 알고 ‘매카시즘’을 분쇄해야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7/01/26 [21:22]

심히 우려했던 대로 수구세력의 망국적인 ‘매카시즘’ 획책의 기미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책임을 통감하고 자진해서 물러나야 마땅한 정치파행·국정파탄의 주범들, 무도불의하고 부패한 소인배 정치패거리가 이합집산하며 ‘전통보수’를 명분삼고, ‘좌파배격’을 내세우며 살 구멍 찾기에 나섰고, 여기에 ‘박사모’를 위시한 가증할 탄핵반대 세력이 동일한 주장으로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     © 오마이뉴스


“진정한 보수정치의 전통을 이어가고 좌파패권 세력의 집권을 막는 것이야말로 역사적 책무” 운운한 김무성 의원의 발언에서도 이러한 저의가 여실히 드러난다. 낡아빠진 정치를 바꾸고 썩을 대로 썩은 모리배 정치꾼들을 몰아내는 것이 위대한 국민의 지엄한 명령이거늘 그 장본인들이 ‘보수정치의 전통, 역사적 책무’를 거리낌 없이 입에 올리다니 그야말로 후안무치, 자가당착의 극치가 아닌가.


‘매카시즘’을 걱정하는 까닭은 논리적 이론 또는 사실적 근거 없이 정적을 비난, 매도하고 탄압하는 시대정신에 반하는 정치적 술수인 때문이다. 정치적 입지를 되찾고 우위를 점할 목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좌파’를 들먹여 부질없는 이념논쟁을 부추기고, 허구적 ‘좌우’ 대립의 진영논리를 내세워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급기야는 ‘진보·좌파’를빌미삼아 ‘친북·종북’몰이, ‘북풍’ 일으키기에 나설 것이다. 그래서 불 보듯 뻔한 수구 정치세력의 상습적인 허구의 선전·선동에 이제는 더 이상 현혹당해서는 안 된다. 그게 확실히 ‘허구’인 것은 지금, 이를 내세우는 주체가 부패하고 실패하여 ‘진정한 보수’일 리가 만무한 정치세력이고, 더욱이 ‘보수·진보’, ‘좌익·우익‘의 개념조차 제대로 인식치 못하면서 유권자 국민을 기만하고 호도하기에 그런 것이다.

 

미국이 1962년 10월, 쿠바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사태를 당하여 여러 가지 대응책 가운데 쿠바 침공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미국이 다른 나라를 선제공격한 적이 없는, 즉 평화주의의 가치와 그 전통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채택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대단히 잘된 결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통은 인간 삶의 전체적인 기반이며, 종교를 위시하여 ‘문화’가 거의 모든 전통을 포괄한다. 문화란, 인류학적 관점에서 지식, 도덕, 신앙, 법률, 예술, 관습을 비롯하여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이 취득한 습관, 능력 등, 인간과 사회구성의 모든 요소의 복합체이며, 정신적 유산으로써 ‘기본가치’의 근원인 것이다. 미국이 전통에 따라 절대로 선제공격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과거로부터 변함없이 이어져온 전례를 견지 한다는 점에서 ‘문화 및 전통’은 보수인 것이다.

 
더욱이 인간은 ‘습관적 동물’이어서 변화를 거부하는 속성을 갖는다. 그래서 사람은 거의 모두가 사회생활의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급격한 변동을 두려워하여 현상유지의 태도를 견지하며, 무엇보다도 안전을 우선시한다. 이렇게 사회문화의 전통과 모든 인간의 속성이 보수적인데, 사회현상이나 사람의 성향을 보수와 진보로 구분 짓는 것은 극히 부적절하다. 굳이 거듭하여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고 명백하다. 


“오늘날 ‘좌파’(공산주의·사회주의 세력, 좌익)는 실재치 않으며, ‘진보적 자유주의’(수정자본주의, 복지자본주의)를 좌파로 오인하고 있다” 그렇게 일전에 주장한 바와 유사하며 일맥상통하다. 그것은 적확한 ‘이해와 인식’, 즉 사물을 똑바로 ‘아는 것’이 세상만사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성 때문인데, 이는 인간의 삶에 관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핵심(core)인 것이다. 나아가서 국가의 안보, 사회, 경제, 교육 등, 전 분야의 ‘과업목표’(task goal)를 제대로 추진, 실행하고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그 대상의 기본원리에 관한 정확한 ‘이해’가 제 1의 조건이다. 따라서 혁명적 상황의 ‘총체적 난국’(crisis management)에 처한 국가·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 모든 사회구성원이 기본방향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공감하여야만 성공할 수 있다. 바로 ‘정의’(定義)가 키워드인 것이 다.

 

세계는 지금, 급격한 대변동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불안의 시대’다. 이미 오래 전에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 중국이 세계 경제 속으로 물밀듯이 들이닥쳤고, 고도로 발달을 거듭하는 과학기술, 금융(탐욕적 투기)산업의 과도한 확장 등으로 인한 '재화의 공급과잉'과, 자본주의의 ‘지나친 이윤추구의 생산활동’이 맞물리면서 역으로 만성적이고 극심한 경제의 불황을 증폭시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세기 말,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해 방편삼은 ‘신자유주의’(자유방임주의의 복고)의 폐단이 뒤늦게 돌출하면서 불평등, ‘1 대 99’의 양극화를 야기하여 세기적인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른바 좌파의 창시자 마르크스가 이미 꿰뚫어 봤듯이 독점적 천민자본주의의 만연과 횡포, 그것은 극단의 물질(황금)만능주의의 악폐를 키웠고 극심한 ‘부의 차별’, 그로부터 비롯된 대표적인 현상은, “부르주아(자본가)는 가족으로부터 그 감정의 장막을 찢어내고 가족관계를 단순히 돈의 관계로 만들었다”(마르크스 엥겔스, ‘공산당선언’) “정치제도는 경제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는 상부구조다. 예컨대 현대 유럽 국가들의 다양한 정치형태들이 프롤레타리아(무산자, 임노동자)에 대한 부르주아의 지배를 강화시키는 데에 봉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니콜라이 레닌, ‘마르크스주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부분’) 


안타깝게도 이미 21세기 벽두부터 이 같은 상황이 다시금 세계의 도처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필시 그에 반발, 저항하여 누구도 예상치 못한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연이어 ‘트럼피즘’(Trumpism, 트럼프주의), 그리고 ‘샌더스 돌풍’이 미국을 강타하여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고, 특히 주류·기득권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였다. 미국은 민주당(진보적 자유주의) 대 공화당(보수적 자유주의, 개념적으로 ‘전통적 자유주의’가 더 정확한 표현이며, 그러나 지지자들의 대다수는 진보적인 성향이다), 여당과 야당, 그리고 진보적, 보수적(전통적) 정당 모두에서 동시다발로 개혁의 태풍이 거세게 몰아쳤다(미국의 정치양상은 자유민주주의 내에서의 ‘진보주의 대 보수주의’ 간의 견제와 균형이다. 우리가 오해하여 흔히들 말하는 좌파·사회주의(진보) 대 우파·자유주의(보수)의 그런 대립구도가 확실히 아닌 것이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불평등, 양극화’를 평정하기 위하여 낡고 부패한 정치·경제 체제와 그 현상의 혁파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보수주의’(전통주의, 공화당)로부터 도널드 트럼프가, 버니 샌더스는 ‘진보주의’(민주당)에서 강력한 혁신을 부르짖으며 깃발을 치켜 들었던 것이다(샌더스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자칭하지만 엄밀한 의미로는 ‘진보적 자유주자’가 맞는 말이다). 트럼프는 오래전부터 ‘금권정치 결사반대’를 힘주어 말했고 특히, 샌더스는 줄곧 ‘정치혁명’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며, 뉴햄프셔의 2차전에서 대승을 거둔 직후,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소리쳤다.


“현재 유권자들은 미국이 직면한 엄청난 위기를 고려할 때 ‘늙고 낡아빠진 기성 정치세력과 경제계’에 국가를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부패한 선거자금 시스템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이 나라 기득권층에 통보했다”고 엄중하게 경고, 선포하였다. 신념과 소신, 사명감으로부터 우러나온, 그래서 미국 민주시민들의 가슴을 울리고 정신을 일깨운 샌더스의 사자후가, 트럼프의 포효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진보가 퇴행하고 보수가 발전하지 못하면 다 같은 수구일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과연 진정한 진보, 확실한 보수 세력이 존재하는가?

 

 

오래 전에 미국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지금과는 달리 오랜 기간에 걸쳐 교차적(정권교체)으로 일어났었다. 1961년 1월, 대통령으로 선출된 민주당의 존 F 케네디는 취임연설에서 미국의 혁신과 변화, 발전을 어필하면서 국가를 위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을 요청하였다. 케네디는 선거에서 뽑힌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연소(전체적으로는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을 승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최연소이다), 그리고 최초의 가톨릭 신자였다. 그는 이 같은 특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의욕적이고 용기 있는 기획, 실행으로 (온건한) 진보주의자로서 국민의 신망이 높았다. 


현상의 타개를 단행하고자 ‘뉴 프런티어’(New Frontier) 정책을 내세워 미국이 냉전 해소에 주도적인 참여로 세계평화의 주역이 되기를 원하였다. ‘평화봉사단’(Peace Corps)을 창설하였고,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과 ‘진보를 위한 동맹’의 결성을 추진하였다. ‘쿠바 미사일위기’의 사태에 봉착하여 소련의 후르시초프 수상과 대결했는데, 해상봉쇄의 강경대응으로 난제를 해결하였다. 그런 한편으로 극적인 타협을 통해 미국, 영국과 소련 3국이 ‘부분적 핵실험금지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미국, 소련을 비롯한 동서진영 간의 해빙무드를 조성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1960년대의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자’, 곧 진보적 자유주의가 부상하면서 급진적인 정책들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자유주의가 확산되자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청교도 정신’이 근간인 미국의 전통적 가치관의 회복, 미국 본연의 위상재건을 바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다. 그런 끝에 1981년, ‘강하고 풍족한 미국’이라는 슬로건, 혁신프로그램 ‘레이건 혁명’을 제시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의 제 4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70세의 고령인데도,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하여 대선 공약대로 어김없이 급진적인 변혁을 과감하게 실행해 나갔다. 이를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이라 하거니와, 전통의 가치관이 침해되거나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면 이를 회복하기 전까지는 대단히 강경한 급진적 대응책이 단행된다(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보수주의, 즉 온건한 전통주의에 반하는 신보수주의를 ‘진보적 보수주의’라 한다). 그리하여 레이건은 경제부흥(재건) 프로그램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재정감축(세출삭감), 대폭적 소득세 감세, 금리인하, 정부의 기업규제 완화, 관료제 축소 등의 정책을 단행하여 경기부양과 동시에 인플레이션 억제와 고용창출을 효과적으로 실현시켰다. 그래서 ‘경제의 번영, 세계평화’를 통하여 미국과 미국국민들에게 영광을 안겨주고, 정부의 방향을 돌려서 위대한 미국을 재탄생시키는 위업을 이루었던 것이다. 


레이건의 대외정책은 ‘군사력 기반의 평화’였다. 즉 레이건 독트린을 추진하여 군비증강, 테러와의 전쟁선포, 중앙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의 ‘반공산주의’ 분쟁지원 등 적극적이고 실효적인 외교노선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갔다. 특히 냉전과 데탕트(긴장완화)가 되풀이되는 불안정한 세계정세를 끝장내야 한다는 인식과 의지로 소련을 ‘사악한 제국’(Evil Empire)으로 규정, 포고하고 핵공격 방어시스템 구축(전략적 방어계획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결행하였다. 이는 ‘강력한 실천의지’를 천명함으로써 소련을 위시한 적대국들로 하여금 경쟁, 도전의 무모함을 확실히 인식케 하는 고도의 전술전략이었다.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주도면밀한 양동전략을 취함으로써 소련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로부터 ‘중거리 핵전력 폐기 조약’(INF Treaty)의 서명을 이끌어내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남북관계의 파국을 초래, 안보불안과 경제적 리스크를 야기한 강경 일변도의 군사·외교 노선에서 탈피하여 레이건과 케네디의 강온병행의 양동전략을 발전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보적 보수주의자’ 레이건의 개혁정책은 주효하였고, 그래서 미국 역사상 가장 긴 기간 동안 경제호황과 평화번영을 누리는, 그야말로 ‘미국의 태평성대’(팍스아메리카나)를 구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점에 이르러 적극인 ‘변화의 관리’(change management)를 모색하지 않았던 레이건의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적 급진정책은 모든 현상, 사태가 정점을 지나면 폐단에 빠지듯 그런 징후가 나타난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와 동류인 시카고학파의 경제이론이 주도했던 미국경제는 작금의 위기상황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앞에서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살펴본 바, 우리나라는 미국과 정치체계나 구도가 비슷한 까닭에 진보, 보수에 대한 개념을 미국의 정치 현상과 상황을 반면교사삼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특히, 부패하여 국민의 질시를 면치 못하는 기존의 수구 정치세력이 진보가 좌파라는 사회인식을 악용하여 비교적 진보적인 정적(政敵)을 좌파로 몰아 매도하고, 그도 모자라 ‘종북’을 덧씌우기까지 하는 저열한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반드시 척결하여야 할 악폐인 것이다.

 

보수는 진보의 바탕이고 진보는 보수의 발전이며,
보수와 진보는 ‘현실과 이상’의 융화이다

 

 

앞서 밝혔듯이 ‘보수성’이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 속성임을 전제하면, 이를 근거로 진보주의와 대비하여 정치적 이념(보수주의)으로 규정하는 것은 극히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와 관점이 통상적이고 일반적이므로 이에 맞춰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보수주의(conservatism)와 진보주의(progressivism)를 ‘가치관’ 차이에서 살펴보면, 습관은 인간 삶의 성패를 가름한다. 그렇게 인생살이에서 (좋은) 습관이 더없이 중요한 까닭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착된 습관에 의해서 변화에 강하게 저항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현상유지의 경향이 나타나며, 이러한 가치관에 따라 사고와 태도를 견지하는 것을 ‘보수주의’라 한다. 또한 사전적 의미의 보수주의란, ‘현재의 상태나 질서 지키기를 좋아하고 전통과 관습을 중히 여겨서 급격한 변화를 원치 않는 주의주장'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현실주의’(realism)와 다름없는 바, ①현상유지, 안정우선, ②(의미와 가치가 큰) 전통중시, 과거 지향적 경향, ③ 타협적, 설득적 태도, ④전례전범에 의한 주의주장, ⑤ (실효성과 보편성의) 단기목표 실현, 소폭의 변화수용 등이 보수주의의 대표적인 특성 또는 뚜렷한 경향이다.보수주의 역시 그 정당한 가치관의 손상, 침해 현상에 반동하여 급진적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진보주의가 보수주의에 상반된 개념은 아니다. 


따라서 진보주의는 보다 더 합리적(논리적)이라는 관점에서 ‘이상주의’(idealism)이다. 진보주의는 ①객관적 태도(사실과 지식), ②(현실과는 다소 유리될 수도 있는) 이상적 체계구축, 완전한 문제해결 방안탐색, ③원칙주의, 비타협적 성향, 수단적 부문 및 사항에 타협적 태도, ④ 장기적 목표 실현 역점 등, 논리적 가치관에 의해 형성된다 할 것이다. 더하여 보수주의, 진보주의로부터이든 혹은 그와는 또 다른 주의주장으로부터이든 가릴 것없이 진정한 ‘진보(주의)’는 합리적인 태도, 논리적 규칙을 통하여 실현된다.


또한 그것은 먼저 말로써 드러나며 나타난다. 즉 ‘언어의 규칙’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지혜·로고스 Logos, 곧 말에는 힘이 있고 말은 살아 있다’) 그러므로 특히, 의사표현이 활동의 전부일 수 있는 위정자·정치인의 말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래서 진지하고 정직(正直, 바르고 곧음)해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진보주의든 보수주의든 특정한 정치 이데올로기(이념)나 사상, 제도( 시스템)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부연컨대, 진보주의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받아들여졌던 전통적 가치나 체제, 정책 등을 문제시하여 그 틀을 부수고 일신하여 새로운 창조를 주장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관점에서 보다 간명하게 다시 말하면, ‘진보’는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을 추구하며 이론과 실제가 서로 부합하여야 하는 것이다. 좌파, 공산주의를 진보(사회주의적 진보주의)라 하는 까닭은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산주의(혁명)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그것은 이론과 실제의 모순, 부정합성, 곧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제도, 시스템에서 기인하였다). 따라서 공산주의, 좌파를 더 이상 ‘진보주의’라 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피력한 바와 같이 사유재산,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부르주아(자본가)를 타도하며 멸절시키고자 하는 정통의 공산주의(사회주의, 흔히 말하는 좌익)세력이나 국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북한이 유일할 것이나, 공산주의라기보다는 주체사상 중심의 ‘김일성주의’라 해야 더 옳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본주의(사유재산)와 시장경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 자체(내부)로부터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수정(지도·복지)자본주의 또는 정통의 신자유주의이며, 이를 통칭하여 '자유주의적 진보주의' 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의 정치체제나 경제시스템 자체가 진보나 보수로 규정되고, 또 그것이 불변, 고정된 것이 아님은 자명한 이치다. 좌파가 곧 진보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진보주의와 자유주의적 진보주의가 다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변화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현상타개를 통하여 변화, 발전의 추구와 동시에 그것이 실행이 추진되지 않는다면, 더구나 기득권에 탐닉하여 악습과 부패, 부조리와 무원칙을 방조하면 어떤 사상, 체계도 진보라 이름 할 수 없는 것이다(이는 사회주의든 자유주의든, 그리고 그와 다른 어떤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든 다 마찬가지다). 그런 관점에서 과연 우리나라에 진정한 진보세력과 확실한 보수세력이 존재하는지 적이 의문스럽다.

 

그렇다면 진보와 상반되므로 ‘보수’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거듭 말하거니와, 보수주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전통을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삼지만,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발전의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진정한 보수가 아니다(앞에서 급진적인 신보수주의를 실행한 레이건의 치세를 말한 것은 이를 입증하려 함이다). 진보와 보수는 그래서 상대적이고 대립적인 개념, 관계가 아니다. 보수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또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발전을 향해서 보수주의의 급진적 개혁,진보적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 보수, 또는 중도 등을 가릴 것 없이 문제해결, 변화·발전을 도모하고 추진하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수구’일 따름이다(그런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백안시하는 자유방임주의의 경향, 이른 바 ‘신자유주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는 더더욱 아닌 가증할 퇴행적 ‘수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씨앗에서 싹이 트고 뿌리를 내려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와 같이 보수가 먼저라면 진보는 앞서 나간다. 그리고 다시 진보가 자리를 잡아 보수를 이루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세에 완전과 만능은 존재치 않으며, 그래서 보수와 진보는 '현실과 이상'의 상호보완, 견인하는 관계다. 대립, 이분돼서는 안 되고, 나누려 해서도 안 된다.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은 이원화될 수 없다’(도올 김용옥) 이처럼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한 몸의 다른 지체’인 것이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그런데도, 냉전시대의 ‘자유진영, 공산진영’이라는 진부한 발설과 다름없는 극히 구태의연하며 시대착오적 ‘좌우’ 진영논리를 내세워 허튼소리로 사실과 본질을 호도하는 극히 상투적인 졸렬하고 편협한 수구적 발상, 퇴행적 ‘매카시즘’ 공세를 이제는 완전히 뿌리 뽑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거듭 바라거니와, ‘진보·보수, 좌익·우익’의 개념과 실상을 바로 알아 허구적 논리로 국민을 기만, 우롱할 뿐 아니라, 이유 없는 갈등을 유발시킴으로써 국론분열을 획책하는 경거망동은 반드시 응징하여, 척결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불의 부패한 수구·기득권세력을 물리치고 ‘정권교체, 정치혁명’을 성공시켜 총체적난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라의 발전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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