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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연령 18세 하향이 중요한 진짜 이유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기사입력 2017/01/13 [12:33]

선거연령 18세 하향이 중요한 진짜 이유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입력 : 2017/01/13 [12:33]

[논평] 선거연령 18세 하향이 중요한 진짜 이유

 

공직선거법상 선거권 연령 하향 조정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를 현행 19세에서 18세로 낮추자는 것이다. 야3당과 시민단체에서는 일제히 찬성하는 반면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 등 보수진영에서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한국이 OECD 국가들 중 유일하게 19세라는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 입영·운전면허 취득·아르바이트 및 취업 가능 나이가 18세라는 점 등을 들어 선거연령을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하는 측에서는 19세까지는 가정과 학교의 울타리 안에 있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2014년 현행 선거연령을 규정한 공직선거법을 합헌으로 결정한 헌법재판소에서도 정치적 판단에 있어 청소년들의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의 부재를 근거로 들고 있다는 점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사실, ‘19세를 그대로 유지하자’, ‘18세로 낮춰야한다’는 주장 속에는 ‘투표권’ 더 나아가 ‘정치’를 무엇으로 보는지에 대한 차이가 숨겨져 있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 청소년들의 정치적 판단 능력이 미숙하다는 사람들은 정치를 정부, 의회, 언론 권력의 장으로 한정한다. 따라서 이 치열한 권력 다툼의 장에서 활동할 사람을 뽑는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생각하는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이 점에서 청소년들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반면, 18세로 낮춰야 한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정치란 국민 다수의 이익을 실현하는 모든 행위이다. 이 관점에서 선거란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의사의 표출이고, 투표는 그 수단이다. 고등학생 정도면 삶을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할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충분히 투표를 통해 자기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다고 본다.

 

정치를 전자에 한정시켜 보면 정치와 국민의 삶은 괴리된다. 정부나 의회 등 기존 제도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엘리트와 재벌 등 기득권층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지식이나 정보를 가진 사람으로 참여자를 한정할 경우, 바깥에 있는 다수의 이익은 배제되고 참가자들은 사익 추구에 몰두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이 경제·사회적 어려움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동안 정부와 재벌이 수천억 돈 잔치를 벌인 박근혜 게이트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정치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정책들은 국민의 삶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정치는 소수 기득권들의 권력 추구의 장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국민들의 삶이 좀 더 행복할 수 있을지, 국가 공동체의 울타리가 얼마나 구성원들을 품어 안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고, 이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정치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것은 나이가 몇 살인지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게다가 동일한 나이의 외국 청소년에 비해 우리나라의 특수한 교육 여건으로 인해 청소년들의 판단 능력이 미숙하다면 교육을 통해 배양할 생각을 해야지 애초부터 배제시키는 것은 정치적 참여자를 축소하려는 태도로밖에 볼 수 없다. 실제 유럽 국가들은 경우, 14세부터 정당 활동이 허용되어 학교에 다닐 때부터 정당들의 다양한 정치적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정치 잡지, 각종 정치 행사들이 마련되어 주변에서 쉽게 정부와 정당의 활동을 접할 수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어리게는 14세부터, 아무리 늦어도 18세부터는 투표권이 주어진다. 어렸을 때부터 관련 교육과 토론이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심도 있는 사고가 가능하고, 그 근저에는 내가 유권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에 더욱 더 효과적인 것이다.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정치적인 활동을 접하고 권리와 의무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제도와 정치제도들이 국민의 삶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입시 경쟁에 치우쳐 깊이 있는 토론은커녕 수능에 나올 문제들로만 달달 외우게 만드는 것이 정치교육이라고 불리는 것의 현실이다. 결국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동일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능력조차 키워주지 못하는 교육제도의 문제인데, 이것을 청소년들의 나이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득권층의 책임 전가이기도 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처럼 입시 경쟁 속에서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만든 억압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소년들은 수동적이지 않다. 다양한 SNS 활동을 통해 현실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학습했다. 그리고 이번 촛불을 통해 적극적으로 국민의 이익을 위한 정치인들의 역할을 요구하는 등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개진하면서 투표권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냈다.

 

이제 어른들이 응답할 차례이다. ‘정치적 판단의 자율성이 부재하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가 말하고 있는 ‘정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과거 독재자 퇴진을 위한 시위, 민주화 항쟁부터 미군 장갑차 사건에 대한 촛불 집회, 미국산 수입쇠고기 반대 집회, 지금의 촛불 정국까지 주요 역사적 사건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청소년들에게 부족한 정치적 판단의 자율성이 무엇인가?

 

투표권 부여로 대입을 앞둔 교실을 선거판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보다 대입을 앞둔 교실은 왜 전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정치적 과정에서 배제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게 우선이다. 어렸을 때부터 투표권을 가지고 관심을 가질수록 정치가 국민의 삶과 더욱 더 긴밀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61만 명에 이르는 표의 득실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에 대한 이해와 성숙도에 관한 문제이다.

 

2017년 1월 13일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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