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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건강권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제대로 개편하자

정초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 | 기사입력 2016/12/05 [10:34]

국민 건강권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제대로 개편하자

정초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 | 입력 : 2016/12/05 [10:34]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책임 있는 발걸음

 

지난 주말, 사상 최대의 촛불로 뜨거웠던 분위기 속에 조용히 묻힌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누리과정에 대한 합의와 소득세 인상이 그것이다. 지난 수년간 누리과정 재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던 끝에 특별회계를 신설하고, 그 재원은 최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인상을 통해 충당하기로 한 것이다.

 

특별회계가 한시적이고 함께 추진되었던 법인세 인상이 좌초되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 ‘증세’에 합의를 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재원 부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보육’에서 미약하게나마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국민 건강권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

 

반면, 우리 정치권은 국민 건강권에 있어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빠르게 늘어나는 고령 인구로 인해 국민건강보험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데 비해,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내년부터 시작되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건강보험료 수입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는 2017년 예산에서 건강보험 국고지원액을 전년 대비 2,210억 원이나 감액 편성했다. 시민사회에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도 결국 증액 없이 통과되었다.

 

건강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논란을 일으켜 온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역시 여야 간의 대립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게다가 어이없게도 내년도 건강보험료는 동결되었다. 국민건강보험의 현행 보장성 하에서도 건강보험 지출이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비해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수입을 늘릴 방안에 대한 논의에서는 정부와 여야 정치권 어느 누구도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 정치의 수준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이 전 국민을 포괄하는 보편적 의료보장 제도로서 현재 63.2%의 보장성 수준 하에서도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상당부분 완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째 답보상태에 있는 낮은 보장성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의료비 불안을 겪고 있다. 따라서 국민 건강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장성 강화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경상의료비 중 공공재원을 기준으로 OECD 평균 수준까지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 여기에는 최소한 16.6조 원 이상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의 재정과 관련된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두 번째는 국고 지원 정산 제도, 세 번째는 건강보험료 인상이다. 각각의 쟁점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제대로 개편하자

 

현재 건강보험료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나뉘어 부과된다. 그런데 두 유형의 가입자 간에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을, 지역가입자는 종합소득‧재산‧자동차를 점수화한 기준(연 500만 원 이하 세대는 세대원의 수와 연령 등 감안)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 받게 된다. 또한 직장가입자에 한하여 피부양자 제도가 적용되어 직장가입자의 배우자, 부모, 자녀, 형제, 자매 등 가족의 경우 피부양자로 등록하면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아도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현행 부과체계는 몇 가지 불공평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첫째, 지역가입자 부과체계의 불형평성이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간 이원적 부과체계로 인해 직장근로자가 실직과 은퇴 등으로 인해 지역가입자로 편입되면 소득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보험료 폭탄을 맞는 경우가 빈번하다.

 

둘째, 직장가입자 부과체계의 불형평성이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종합소득이 7,200만 원을 초과하지 않는 한 월급을 기준으로 사업주와 근로자가 보험료를 반반씩 낸다. 이로 인해 월급 외의 기타 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와 없는 직장가입자 간의 불공평성이 발생한다.

 

셋째, 피부양자 문제에 있어 불형평성이다. 직장가입자에게만 동 제도를 인정함으로써 지역가입자의 불만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피부양자를 제한하는 소득 기준(사업소득의 존재, 금융‧연금‧기타소득 각 4천만 원 초과, 재산 과표 9억 원 초과)의 한계로 인해 고액의 소득이 있더라도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낼 수 있는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적용 인구의 40%가 피부양자에 해당하며, 2015년 기준으로 289만 명이 소득이 있는데도 보험료를 한 푼도 안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과적으로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 능력을 적정하게 반영하고 있지 못함으로써 불공평하다는 불만을 야기하고 있다.

 

<표> 현재까지 제시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방안

주 : 보건복지위원회. 2017 회계연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예비심사검토보고서

 

이런 문제들로 인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가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두 개의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핵심은 소득 중심으로 단일한 부과체계를 마련하자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약 3조8,300억 원 정도를 추가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더불어 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 보도자료)

 

국고 지원 정산 제도를 실시하자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에 대한 정부 지원을 규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과 국민건강증진법 부칙에 따르면,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일반회계에서 14%,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6%)를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국고 지원 비율은 약 15%에 불과하다. 이는 국고지원의 기준이 되는 보험료 예상 수입을 과소 추계하여 지원금을 적게 책정했기 때문이다. 2017년도 예산에서는 또 다시 적게 책정한 데 더하여 국고 지원 제도가 마련된 2002년 이후 처음으로 ‘감액조정’까지 감행했다. 그 결과, 보험료 수입은 매년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고 지원액은 전년대비 2,210억 원이 줄게 되었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2011년 이후 건강보험 재정의 당기수지 흑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반면 국가채무 비율은 계속 높아지는 상황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강보험 국고 지원에 대한 의무가 법적으로 명시된 이유는 건강보험 재정이 국가의 재정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지 않고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제도의 안정적인 운영과 단계적인 보장성 강화 계획이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앞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는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 중이고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으로 인해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이 상당하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국고 지원을 더 늘려서라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나서야 할 판에 당장의 일시적 흑자를 이유로 국고 지원을 축소 편성한 것은 안일하기 짝이 없는 처사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을 기준으로 하는 국고 지원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실제’ 수입액에 근거하여 사후에 정산하도록 함으로써 20%라는 법적 규정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추가로 약 2조 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까지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과 국고 지원 정산 제도를 주로 논의했다. 이런 두 가지 방안을 통해 약 6조 원을 추가로 걷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OECD 평균 수준의 국민 건강권을 보장하는 데 추가로 필요한 약 16.6조 원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또 하나의 방안, 바로 건강보험료율 인상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건강보험료율 인상해서 지금보다 더 내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과 국고 지원 정산 제도를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지금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여야 간의 이해관계 차이로 계류되어 있다. 여당 측에서 소득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부과체계를 개편하는 것은 또 다른 형평성 문제를 야기한다는 이유로 반대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과체계의 급격한 개편이 야기할 사회적 갈등도 우려하고 있다.

 

국고 지원 정산 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획재정부는 국고지원이 법적으로 고정된 비율이 아니라 예산의 범위 안에서 지원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후 정산의 대상이 아니며, 건강보험의 흑자 규모가 20조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적자 국채까지 발행해서 사후정산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위의 두 방안 역시 건강보험 재정을 조달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해당사자들의 이견 차이가 크고,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절차상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고 이런 두 방안을 담은 법률안이 통과되더라도 OECD 평균 수준의 보장성 강화를 위해 최소한 16.6조 원 이상이 필요한 상황에서 여전히 턱없이 모자라기도 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몇 년 전부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국고 지원 정산 제도와 더불어 건강보험료 20-25% 인상을 통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내부의 추계 결과에 따르면, 건강보험료를 20% 인상할 경우 약 16.7조 원을 추가로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건강보험료의 인상 방안과 관련하여 지금과 같은 단일 세율(건강보험료율)이 아니라 소득에 따라 누진적 부과 여부가 쟁점이 되기도 한다. 누진제는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소득층의 경우 의료이용률이 높아서 건강보험료를 적게 내면서도 건강보험 재정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즉, 이미 지출 부분에 있어 소득 재분배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누진적 부과 체계를 고려하는 데 있어 이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건강보험료 인상보다는 소득세와 같은 조세를 올려 재원을 충당하자는 방안도 제기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가채무가 이미 GDP의 40%를 넘은 재정 상황과 계속해서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고려하면 증세를 통해 확보된 금액이 건강보험 재정에 쓰일 수 있을지 오히려 더 불확실하다.

 

건강보험료의 인상은 국민들의 추가 부담을 야기한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불공평한 보험료 부과체계 하에서는 더 많은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형평성을 높이는 보험료 부과체계의 개편과 국민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보여주는 국고 지원 정산 제도와 병행하여 추진되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또한 현재 20조 원을 넘어선 국민건강보험 재정 흑자 역시 보장성 강화를 위해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재정 흑자는 약 10년간에 걸쳐 쌓인 금액으로 일회성 재원이다. 또 앞으로 급증할 의료비 지출을 감안하면 이런 흑자는 지속되기도 어렵다.

 

따라서 가장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책은 건강보험료 인상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경험을 보더라도 보장성이 늘어난 시기에는 항상 건강보험료 인상이 동반되었다. 보험료의 인상은 단지 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향후 겪게 될 건강 불안을 우리 모두가 공적 수단을 통해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리 기업인 보험회사가 운영하는 민간보험에 비해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료 인상은 정부 혹은 건강보험공단을 배불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재원이다. 민간의료보험에 내는 돈의 일부만을 국민건강보험에 더 내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국민 모두에게 큰 이익을 안겨 준다. 특히 서민과 중산층에게는 크게 유리하다. 

 

의료비 불안이 없는 세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유럽 복지국가들이 한 일을 우리라고 못할 리가 없다. 지금이야말로 국민 건강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보편적 의료보장의 길에서 우리 국민, 여‧야 정치권, 그리고 정부의 책임 있고 용기 있는 한 걸음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내년이면 벌써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 늦으면 늦을수록 의료비 불안과 우리 국민의 건강과 질별 관련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차기 대선을 앞둔 지금이 바로 복지국가 건설과 국민 건강권을 소리 높여 주창할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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