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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선생의 죽음이 주는 사회적 의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논평 | 기사입력 2016/10/07 [15:07]

고 백남기 선생의 죽음이 주는 사회적 의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논평 | 입력 : 2016/10/07 [15:07]

고 백남기 선생이 마지막 숨을 쉬신 지 열흘이 지났다. 하지만 주치의의 이해할 수 없는 사망진단서와 경찰의 무리한 부검 요구로 인해 그분의 영면은 아직 시작되지 못했다. 2015년 11월 14일 고인이 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내동댕이쳐질 때부터 300여 일 동안 유족의 눈물이 넘쳐흘렀기에 장례식장에는 정부와 경찰에 대한 의심과 원망이 가득하다. 

 
고 백남기 선생의 주치의인 백선하 교수는 사망진단서에 ‘급성경막하출혈 → 급성신부전 → 심폐정지’ 순으로 사인을 적었다. 원사인은 급성경막하출혈이고, 이것이 중간사인인 급성신부전을 일으켰으며, 급성신부전증이 직접사인인 심폐정지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심폐정지를 사인으로 규정한 것에는 문제가 있지만 인과관계의 연속 자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문제는 백교수가 사망의 종류를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고 사망진단서에 기재한 점이다.

 

우리나라 통계청이나 세계보건기구(WHO)의 사망진단서 작성 기준에 따르면, 원사인을 기준으로 사망의 종류를 정한다. 또한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하여 사망하였으면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라는 규정이 버젓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뇌출혈이 발생한 환자가 300여 일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폐렴에 걸려 사망한다면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이다. 이는 교통사고와 보험업계에서 정석이다. 따라서 고 백남기 선생의 경우 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급성경막하출혈이 발생했고, 이것이 원사인이므로 ‘외인사’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주치의 백교수는 ‘병사’로 처리한 것이다.

 

보다 악독한 것은 유족들이 뇌사상태에 빠진 백남기 선생의 연명치료에 최선을 다하지 않아 사망했기 때문에 ‘병사’로 처리했다는 백교수의 말이다. 이 말은 유족을 두 번 죽이는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고 백남기 선생의 유족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11월 14일 사고 직후 백교수와 대화가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백교수는 사고 직후 백남기 선생을 거의 뇌사 상태로 판정했고, 수술을 하더라도 향후 진전이 있을지 없을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로 보았다. 그리고 이후 상담 과정에서 백교수는 연명치료를 받더라도 장기부전으로 사망하게 될 것이라고 유족들에게 수차례 말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족들이 연명치료를 거부했기 때문에 ‘병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백교수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외인사’를 인정함에도 혼자 ‘병사’를 외치고 있을까? 이해의 고리는 검경이 제출한 부검영장에 있다. 검경은 처음 사인과 현재 사인이 달라져서 이를 보다 명확히 하려면 부검이 필요하다고 한다. 법원은 처음에는 영장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2차 청구에서는 “현 단계에서 변사자에 대한 입원기간 중의 진료기록을 압수하여 조사하는 것을 넘어 사체에 대한 압수 및 검증까지 허용하는 것은 필요성과 상당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움”을 이유로 영장의 일부를 기각하면서 부검의 장소와 참관인 등은 유족이 정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법원도 검경이 부검을 통해 사인을 왜곡할 수 있음을 감지한 것이다. 결국 백교수의 ‘병사’ 결정은 고 백남기 선생의 죽음과 관련된 사실들을 부검을 통해 왜곡하기 위한 초석 다지기였음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고 백남기 선생의 죽음은 단지 사인과 사망의 종류로만 기억돼선 안 된다. 당시 사고가 발생하게 된 보다 근본적 원인, 즉 우리나라의 ‘쌀값 안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 백남기 선생은 한 가마니(80kg)에 17만원이던 쌀값이 15만원으로 내려가자 이를 반대하기 위해 다른 농민들과 함께 길거리로 나선 것이다. 생존을 위한 합당한 투쟁 행위였다. 하지만 이 ‘쌀값 안정’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더군다나, 박근혜 대통령은 “쌀값 인상 17만원을 21만원대로”라는 공약을 대선 시기에 내걸었다. 쌀값을 인상하기는커녕 오히려 내려버리는 현 정부를 보면서 농민들은 대통령에게 공약 이행을 요구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인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본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해서는 안 되며 일단 약속을 하면 이행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했을 경우 제2의 백남기 사건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최근 현 정부의 부정부패가 하나씩 까발려지고 있다. 정부기관 내의 레임덕이 드러나고 있다. 현 정부가 고 백남기 선생의 죽음을 자신의 잘못이 아닌 자연사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것도 가시화되는 레임덕을 늦추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레임덕은 정권의 핵심부에서가 아니라 국민들 속에서 시작됐다. 아마도 고 백남기 선생의 죽음은 국민에 의한 레임덕을 보다 가속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며 정부의 부검을 통한 사실의 왜곡 시도는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것일 수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지난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고 백남기 선생과 그 유족들에게 사죄를 표명해야 한다.

 

2016년 10월 5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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