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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야권연대가 한국에 주는 교훈

야권연대 위한 올바른 길 모색해야

안주영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도코하 대학 교수 | 기사입력 2016/09/22 [14:20]

일본의 야권연대가 한국에 주는 교훈

야권연대 위한 올바른 길 모색해야

안주영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도코하 대학 교수 | 입력 : 2016/09/22 [14:20]

안주영  도코하 대학 교수

일본의 최대 야당인 민진당(구 민주당) 대표 선거가 9월 15일에 있을 예정이다. 세 명의 현역 의원이 입후보한 가운데 TV토론회 등 선거전이 전개되고 있다. 주로 헌법 개정과 복지 정책 등 아베 정권을 향한 세 후보 간의 정책 대결이 펼쳐지고 있지만 흥미로운 것은 자신 보다 의석수가 적은 일본공산당에 대한 쟁점도 있다는 것이다. 즉 지난 7월에 있었던 참의원 선거와 동경도지사 보궐선거에서 공산당과 함께 한 선거연대에 관한 논쟁이다.

 

세 후보 모두 선거연대로 참의원 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다음에 있을 중의원 선거에서는 선거연대를 전제한 선거운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일강다약(一强多弱)의 정당 시스템과 소선거구제가 중심인 선거 제도 속에서 야당의 선거 전략을 둘러싼 논쟁이 주요한 정치 쟁점이 되고 있다.

 

일본 선거 제도의 문제점: 낮은 비례성

 

일본의 선거 제도와 최근 몇 년간의 선거 결과를 보면 야권연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일본은 중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된 양원 제도로 국회가 구성되어 있고 중의원의 과반수로 수상을 선출하고 있다. 중의원은 소선거구제로 295명, 비례대표로 180명을 선출된다.

 

2014년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여당인 자민당은 소선거구제에서 평균48.1%를 득표했지만 소선거구제의 의석 중 75.59%를 점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과 공산당은 소선거구제 평균 득표율이 22.51%와 13.3%임에도 불구하고 의석 점유율은 각각 12.88%와 0.34%에 지나지 않는다. 정당이 난립한 가운데 소선거구제에서 집권여당이 득표율보다 훨씬 많은 의석수를 가져가는 것이다.

 

참의원은 중의원 선거 제도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242명의 참의원은 6년 임기이지만 한번에 242명을 선거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121명씩 두 번에 나눠 3년의 기간을 두고 실시한다. 121명 중에서 73명은 선거구로 48명은 비례대표로 선출하는데 선거구는 1인 선거구에서 5인 선거구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1인 선거구가 32명으로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여기서도 사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참의원 선거에서도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은 1인 선거구를 중심으로 야권연대 전략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참의원 선거 야권연대의 과정과 결과

 

그러나 반 아베 정권의 대표 정당인 민진당과 공산당의 선거연대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양당 간의 차이가 크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강령에 ‘과학적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고 ‘천황제’가 전제주의의 구습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미국의 일본 지배’는 제국주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 자본주의를 수정이 아니라 혁명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본의 상징적 존재로 정착한 일왕을 부정하며, 미일동맹 관계의 해체를 요구하는 강령이 현실적으로는 사문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것 때문에 다른 제도권 정당들이 일본공산당과 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진당과 공산당의 야권연대가 출범하게 된 것은 자민당 정권이 안보 관련 법안을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시킨 것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자민당 정권은 앞서 언급한 중의원 선거의 승리를 기반으로 안보 관련 10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 헌법 9조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무력에 위한 위협과 무력의 행사를 영원히 포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국 침략에 대한 자위적인 무력의 행사만 허용될 뿐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은 물론이고 어떤 이유로든 동맹국의 전쟁을 도와주는 행위까지 위헌으로 간주해왔다. 그런데 아베 정권이 동맹국 군대의 활동을 도와주는 자위대의 일부 행위를 허용하도록 법 개정을 시도했던 것이다. 

 

많은 헌법학자들이 이런 안보 관련 법 개정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하는 가운데 법 개정을 반대하는 대규모 데모도 일어났다. 안보 관련 법안의 개정을 반대하는 엄마들의 모임, 학자들의 모임, 학생운동단체 실즈 등이 조직되고 수상 관저 앞에는 반대 집회가 연일 일어났다. 엄청난 규모뿐만 아니라 랩으로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는 학생들의 새로운 운동 방식이 언론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안보 법안은 자민당의 압도적 수로 통과되고 말았다.

 

이후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세력은 ‘안보 법제 폐지와 입헌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연합’을 결성했다. 그 목적은 선거에서 야당을 승리시켜 아베 정권의 퇴진을 압박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공산당은 시민연합의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국민연합정부’ 구상을 발표했다. 이에 당시 민주당은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2016년 7월 13일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가 다가오자 시민연합의 요구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민연합이 주도하는 정책연합 등을 거쳐 32곳의 1인 선거구에서 민진당과 공산당, 사민당, 생활의 당은 후보 조정에 성공했다.

 

야당의 의석수는 이전 참의원 선거에 비해 늘어났다. 승부의 분수령이 된 32곳의 1인 선거구에서 민진당은 11석을 얻었다. 이전의 참의원 선거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한 것에 비하면 나아진 결과였다. 하지만 전체적인 판세는 여당인 자민당과 공민당이 헌법 개정 가능선인 3분의2 의석에 가까운 압승을 거둔 것으로 요약된다. 여당의 압승을 강조하느냐 야당의 의석 회복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야권연대에 대한 평가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민진당과 공산당 내에서 야권연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동경도지사 선거에서 야권연대가 실패한 이유

 

그런데 참의원 선거 직후 실시된 동경도지사 보궐선거에서 야권연대는 참패를 하게 된다. 동경도지사 보궐선거는 자민당의 추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고이케 유리코 후보, 자민당과 공민당의 추천을 받은 마스다 히로야 후보, 민진당과 공산당,사민당,생활의 당에서 추천을 받은 도리고에 순타로 후보 3파전으로 치뤄졌다. 이렇게 여당의 분열과 야권연대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고이케 후보가 44.49%의 득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야권연대 후보인 도리고에 후보는 20.56%의 득표율에 그쳐 3위에 머물고 말았다. 도리고에 후보의 득표율은 이전 동경도지사 선거에서 공산당과 사민당만의 추천 후보였던 우츠노미야 겐지가 기록한 득표율 20.18%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는 초라한 성적이었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패배였다.

 

그런데 이것은 야권연대의 과정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7월 10일 참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각 당은 동경도지사 후보를 물색하게 되었다. 14일이 후보등록 마감일이기 때문에 야권연대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어떤 투명한 절차도 없이 몇 명의 이름이 야권연대 후보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이 전부였고 당 밖의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민진당 주도로 도리고에가 야권 후보로 결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전 동경도지사 선거에서 2등을 한 우츠노미야 겐지도 출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츠노미야는 오랫동안 진보적 변호사의 길을 걸어왔고 한국의 박원순 시장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전 선거에서 우츠노미야와 지지자들은 ‘희망의 도시 동경을 만드는 모임’을 만들어 선거운동을 했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이 모임은 지속적인 활동을 해왔다. 동경도 의회를 방청하면서 동경도 의회나 정책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자신들의 정책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보궐선거의 야권연대 논의에서 그와 그의 지지 세력은 철저히 배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야권연대 후보가 일방적으로 결정된 이후에 우츠노미야에게는 야권 세력으로부터 불출마의 압력이 가해지고, 결국 우츠노미야는 등록 마감 직전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래서 그와 그의 지지자들은 도리고에 후보의 적극적 지지자가 되지는 못했다. 일방적으로 사퇴를 강요받은 후보와 지지자들의 마음이 쉽게 바뀌지는 못했던 것이다. 도리고에 후보는 패배가 확실해져 가는 상황에서 지지율의 반전을 위해 우츠노미야와 전격적인 양자회담을 하지만 우츠노미야가 제시한 안을 도리고에가 수용하지 않았고 우츠노미야도 그에 대한 지지표명을 하지 않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야권연대는 패배했다. 그리고 일본의 야권연대는 정책적 합의라는 큰 산만이 아니라 지지 세력과 정당 사이의 상처와 반목을 치유해야 하는 난제까지 남기게 되었다.

 

야권연대 위한 올바른 길 모색해야

 

야권연대는 다른 당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넘어서는 중요한 목적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제도 정치를 부정하는 듯이 보이는 공산당이 민진당과 연대할 수 있었던 것도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안보 관련 법안의 저지와 헌법 9조 개정의 저지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통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와 이에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을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동경도지사 보궐선거는 단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어떤 동경도를 구상할 것인지,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협의는 없고 단지 지명도가 높고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지도부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후보가 결정된 것이다.

 

야권연대를 위한 절차 또한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승자독식 구조의 선거 제도에서 야권연대는 후보자 조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정치의 규칙이 결과를 뒤바꿀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아베 정권도 자민당 총재 선거가 결선투표제로 시행되지 않았다면,그리고 그 결선투표제가 국회의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탄생조차 할 수 없었다. 규칙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 규칙이 각 당의 지지자들이 야권연대의 결과를 납득하고 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우츠노미야와 그의 지지자들은 4당이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그들이 고이케와 마스다 후보를 지지했을 가능성은 낮지만 이번 선거에 소극적 참여자가 되어 버렸다. 선거에서 득표율은 각 당과 세력 지지율의 단순한 덧셈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야권연대는 공통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정책 협의와 승자독식 구조로 이루어진 현행 선거 제도의 특징을 감안한 후보자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오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야권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그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그 과정을 감동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에서는 이기기만을 위한 졸속적인 야권연대, 내가 후보가 되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오만한 야권연대가 출현해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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