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교수] 모병제가 과연 정의로울 수 있을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

서울의소리 | 입력 : 2016/09/11 [10:13]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베스트 셀러로 유명해진 마이클 샌델(M. Sandel)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이라는 책도 썼습니다.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훨씬 가독성도 높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도 더 많은 편인데 유감스럽게도 별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일독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시장의 논리가 무한정 확장되어 우리 삶에 적용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것에 가격표를 붙여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과연 우리 삶을 더 좋게 만들어주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장기에 가격표를 붙여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만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의문 말이지요. 물론 샌델 교수는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에서 그 책을 썼습니다.


윤리학자인 그는 시장의 논리가 종종 정의라는 개념과 충돌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시장 논리의 과도한 확대가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시장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는 태도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샌델 교수는 모든 것에 가격표를 붙여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어떤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몇 가지 실례를 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인상 깊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징병제와 모병제 사이의 선택과 관련된 이슈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나도 이젠 우리 사회에서 모병제가 필요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모병제를 채택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습니다.

샌델 교수는 이 문제와 관련해 1861년에서 1865년까지 계속된 미국의 남북전쟁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샌델 교수의 지적에 따르면 그 수많은 전사자들 중 부유층의 자제는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징집제도를 보면 왜 그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남군은 어떤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노예의 숫자에 비례해 징집면제 쿼터를 배정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가문은 노예를 50명 보유하고 있으니 5명의 징집면제 쿼터가 배정되고, 노예가 100명이면 10명으로 늘어나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러니까 남군에 징집되는 젊은이는 모두 노예를 보유하지 않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지요. 

노예제에 반대하는 북군에는 물론 그런 제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징집영장을 받은 젊은이는 돈을 주고 남을 대신 군대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북군 역시 부유한 가정의 자제는 징집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샌델 교수는 과연 이것이 정의로운 것인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노예 해방이니 뭐니 고상한 이념을 놓고 피비린대 나는 전쟁을 일으켰지만, 부유층은 후방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고 빈곤층의 자제만 전장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것이 결코 정의로운 일이 될 수 없다는 데 공감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샌델 교수는 이것이 과거의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미국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전사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죽는 사람들의 출신 배경을 보면 월스트리트의 큰손이나 대기업 CEO들의 자제를 별로 찾아볼 수 없을 게 뻔합니다.

미군의 구성에 대해 소상한 통계를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사병으로 복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고 빈곤한 가정 출신이 많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렇다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어가는 미군들 중에도 빈곤한 가정 출신이 상대적으로 더 많을 것이 분명합니다. 샌델 교수는 바로 이 점을 들어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현재의 미국 사회에서도 남북전쟁시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모병제를 실시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군인도 일종의 커리어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준사관이나 장교라면 이 말이 맞다고 인정해 줄 수 있고, 따라서 지산의 지원으로 입대하게 되는 현재의 시스템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병을 커리어로 생각하고 군에 입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과연 어떤 젊은이들이 사병을 일생의 커리어로 생각하고 군에 입대하겠습니까?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스카이 대학 졸업해 잘 나가는 사람들이 그런 길 선택할 리 만무합니다.

사병 봉급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예산제약상 쥐꼬리만큼밖에 되지 않을 게 뻔합니다.  결국 그 쥐꼬리만한 봉급조차 매력적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만 사병으로 군에 입대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모병제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명약관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병으로 군 복무를 한다는데 이를 좋아할 젊은이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꽃다운 청춘을 자유를 구속 당한 채 병영에서 보내야 하는데 누가 그걸 좋아하겠습니다.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젊은 시절의 나도 똑같았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때는 급식도 형편 없어 매일 매끼를 염적무 국(짠무 썰은 것을 된장에 넣어 만든 국)으로 때워야 했습니다. 김치라도 나오는 날은 호사를 한 셈이었지요. 오죽하면 미원에 밥을 비벼 먹었겠습니까? 징집되어 이런 고생을 해야 한다면 누군들 그걸 좋아하겠습니까?

요즈음은 군대 생활도 내 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걸로 압니다.
그래도 학생들 커뮤니티 가보면 자신의 군대 생활을 한탄하는 글로 가득차 있는 것을 봅니다. 기본적으로 군 생활이란 개인의 자유가 제약된 상황을 의미하고, 아무리 호의호식을 한다해도 이 자유의 제약을 참기 힘든 법입니다. 

이런 군 생활을 상대적으로 가난한 가정의 자제에게 떠맡기는 것은 정의롭지 못합니다.
우리가 기꺼이 군에 입대하는 것은 국방의무가 모든 국민이 져야 할 신성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부유함의 정도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공정하게 나눠서 져야 마땅한 일입니다. 모병제는 돈을 주고 남을 대신 군대에 보낸 남북전생시 북군의 시스템과 아무 다를 바 없습니다.

만약 언제나 평화가 유지되고 군대는 의식용 정도로만 쓰인다면 문제가 다르겠지요.
국군의 날에 광화문 광장에서 가난한 집 가정의 자제들이 땀 흘리며 퍼레이드를 한다고 그것이 무슨 큰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고 군에 입대한다는 것은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모병제란 이런 위험성에 가격을 붙여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뜻합니다. 

'분배에서의 정의'(distributive justice)는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논의되어 온 윤리학의 오랜 문제입니다. 이득과 비용을 사회의 구성원에게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로운가를 논의하는 분야입니다.  병역의 의무를 국민들 사이에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가도 바로 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나는 모병제가 정의로운 병역 의무의 분배를 가져올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처럼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처애 있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모병제는 전쟁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해야 할 문제라고 믿습니다.

 

출처 : 이준구 전 서울대 교수 홈피 http://jkl123.com/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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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16/09/11 [12:54]
국가체제에 대한 심판이지요. 자신이 속한 국가가 지킬 가치가 있다면 지키겠지만 ,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국가라면 모병제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서 국가를 처벌하는 것이지요. 과연 개한미gook 이 지킬만한 체제일까요 ?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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