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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가혜 "공적인 것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홍가혜씨에게 가해진 2년4개월간의 표현의 자유 탄압과 국민의 알권리를 막은 국가폭력!

이정혜 | 기사입력 2016/09/05 [12:30]

홍가혜 "공적인 것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홍가혜씨에게 가해진 2년4개월간의 표현의 자유 탄압과 국민의 알권리를 막은 국가폭력!

이정혜 | 입력 : 2016/09/05 [12:30]

2014년4월18일 팽목항에서 mbn과의 10분 생방송 인터뷰로 현장의 사실을 알리며 구조를 촉구한 홍가혜 씨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고 심경을 전했습니다.

 

 

▲     © 이정혜

 

홍가혜씨의 무죄판결을 이끌어낸 참여연대 양홍석 변호사와 법무법인 이광철 변호사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세월호와 멀어지라며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당시에도 "그게 아무리 사실이어도... 어떻게 정부 발표에 반하는 말을 할 수 있냐"며 질책한 홍가혜씨의 아버지에게 "나도 멀어지고 싶었으나 진실을 알면서 어떻게 침묵할 수 있느냐"고 말한 일화도 담겼습니다. 아울러 이해할 수 없는 검찰의 재판 과정의 태도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홍가혜 씨의 페이스북 글 전문입니다.

 

<영화 같았던 재판과정, 무죄판결이 나오기까지에는...>

 

우선 이 글을 보실 분들께 함께 기뻐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이게 기뻐할 일인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떨쳐지지않지만 요즘 소리를 막 지르고 싶어요. 분노로 지르는 고함이 아니라 막 알에서 깬 공룡처럼 세상에 내지르는 소리요. 이제는 속에만 꽁꽁 담아놓아 속이 문드러져버린 저만의 또다른 이야기들을 조금씩 해보려 합니다

 

1심에이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이제 네 인생을 살아라, 너의 인생을 빼앗았고 찢어놓았고 상처준 세월호와 멀어지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교도소에 수감되자 달려와 "그게 아무리 사실이어도... 어떻게 정부 발표에 반하는 말을 할 수 있냐"며 질책한 제 생물학적 부 에게서요

 

저 정말 솔직히 그간 정말로 멀어지고 싶었습니다. 그때마다 진실을 알고 있기에 멀어지지 못한 것이지, 버틸만해서 참을만해서 꾸역꾸역 참아낸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국가폭력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제 일이라 생각하기에 멀어지진 않았죠.)

 

그래서였을까요. 평소같았으면 아빠에게 따지고 협박하고 반박하고 설득하고 달래고 했을텐데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구요. 아빠가 왜 그랬는지, (정말로 일각에서 주장하는 바와같이 -저도한때는 그리 세뇌당했습니다만- 우리의 주장에 동조해주지 않는다고 적이 아님에도.... 여튼 정말 새누리당 지지자여서 그런 말을 했던건지) 아빠와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는 68년생이시라 그시절 국가의 탄압, 국가의 폭력을 잘 알고 계시거든요. 이게 참 씁쓸한 고백입니다만, 도대체 아빠는 왜 이렇게 된건지 알것도 같아요. 추측이 사실이 되지 않길 바라지만...

 

아직 무죄 확정은 아니지만 항소심에서 "홍가혜의 인터뷰는 구조촉구를 하는 내용으로써, 현장에선 공공연한 사실"이였음이 판결문에 적시되었습니다. 판결문 받는대로 전문 볼 수있도록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유는 판결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어왔고, 있으므로) 물론 재판자료도 첨부해 공개할 것입니다. 페이스북상이나 간혹 공개적인 자리에선 웃으며 최대한 밝은 모습 보여드리려 노력했지만 사실은 제가 어떤 시간들을 보내왔는지도 그 자료들을 보면 누구처럼 '너의 고통을 안다'고 말 못하겠지요. 이게 참 어렵습니다. 누가 나의 고통을 안다고 말하면 화부터 나는데 이걸 컨트롤 하기가 참 어렵더라구요. (알긴 뭘 알아, 당신이 진짜 알면 그렇게 관중의 입장으로 가만히 있진 못했을텐데.)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만약 다시 검찰이 상고를 한다면 대법원의 법리 판단이 남아있습니다. (1,2심은 사실 관계를 증거, 증인들을 불러다 사실관계를 검증하는 사실심이며 대법원은 법리만 판단합니다.) 주위 모두가 대법원까지 갈거라고 (그것도 -대법원 판결-아주 질질 끌거라고 하더군요.) 마음의 각오하라 했지만 검찰이 스스로 제 양심을 석방하기를 바랍니다. (이젠 양심도 안바랍니다. 염치라도 있길...)

 

저야 이런 일 처음겪고 일반인이였던 제삶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려서 그 억울함에 마음이 힘들었던거지만, 변호사님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1심 무죄를 이끌어내시고, 2심 초기 변론 맡으셨던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이자 참여연대 부위원장이신 양홍석 변호사님께서는 제가 구속 되어 있을때 제 기억으로 그날로 돌아가, 현장 cctv도 확보하시고 항명빼고 전부터 검찰측 증인들이였던 증인들의 양심까지 석방시키며 변론을 이끄시고 검찰과 증인에게 이건 아니지 않냐며 고함도 치셨구요. 많은 분들이 영화 변호인을 보는것 같다고 감탄을 감추지 못했던 내 생에 첫 변호사님.

 

저희들은 그저 단순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일뿐인데 그걸 넘어섰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참 많이 싸우기도 했구요. 마치 남매 같았달까요. 앞으로의 제 인생까지 누구보다 걱정하시고 제가 당한 일들에 누구보다 분노하셨던 분. 제가 어느 모임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양홍석 변호사님께서 밤을 꼬박 새고 그랬던 날들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고. 지금 곰곰 생각해보면 재판 앞두고, 재판 끝나고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끙끙 앓고 있다 변호사님께 전화하면 서로 이야길 나누고, (변호사님은 거의 들어주고 한두마디 잔소리하심.) 그러다보면 전화통화는 한두시간은 기본이였고 언젠간 통화를 3시간 가까이한적이 있는데 중간에 사무실 전화로 다시하겠다고 했었거든요. 자정이 넘어가는 그 시간까지 변호사님은 사무실에서 제 사건으로 날을 새셨던거죠. 누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요

 

한번은 재판을 진행하다 양홍석 변호사님이 울컥 하신 적이 있어요. 증인들에게 변호인 신문을 하는데 그 변론을 통해 제 무고함, 제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 증인의 입에서 하나둘씩 정말 거의 일치하게 나왔는데 검찰이 그에 맞서 저의 사생활 왜곡 공격을 했고, 저는 그날 쓰러지시피 주저앉아 "국가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나"하고 자지러지자 저를 토닥여주셔서 마주친 눈. 그 충혈된 양홍석 변호사님의 눈은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아요. 그 마음까지 전부...

 

저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아직은 현실감이 없네요. 항소심 무죄판결 후 몸살이 나서 끙끙 앓기도 했고 하루종일 분노의 말을 쏟아내다 지쳐 잠들기도하고 하루종일 먹기만 하기도 했어요. 이제 조금은 실감이 나요. 그래서 여태 어떤 글도 못쓰겠더라구요. 검찰의 상고여부도 기다리는중이고요

 

누구도 아마 이런 재판은 변론을 꺼릴거에요. 국가, 그것도 뒤끝 작렬인 유죄로 만드려는 검찰과 맞서 진실의 검으로 그걸 내려쳐 무죄를 받아야하는 재판. 그것도 언론과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있고 피고에 대한 새빨간 편견, 색안경이 가득해 변호인도 인간이기에 의구심도 있었겠죠.. 얼마나 많은 내부투쟁을 했었을까요. 그런 재판을 항소심도 이미 진행되고 변호인이 바뀌는 상황에서 선뜻 변론 맡아주신 법무법인 동안의 변호사이자 민변 소속 변호사님이신 이광철 변호사님께 감사해요. 검찰이 상고하면 그 대응까지 해주시기로 하셔서 마음이 놓입니다.

 

그동안 저는 싸운 적이 없는데 자꾸 제가 투사처럼 비춰지는게 굉장히 스트레스이기도 했어요. 이제 시작인데 말예요. 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재판에 임하며 저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해경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본질은 검찰의 이해하기 힘든 플레이로 안드로메다에 가 버렸으니, '난 너희들이 만만하게 생각할 대상이 아니'라고, '어떤 이유, 어떤 목적에서건 국민은 마음껏 줘 패도 되는 대상이 아니라는걸 보여주고싶다' 결국 인간의 기본 권리인 "살 권리"를 되찾아와야 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꺼내는데에 2년 4개월이 걸렸네요. “나는 이 재판에 대해 세월호 사건을 넘어 인간의 기본적 권리찾기로 임하고 있다” 

신문고뉴스 - http://m.shinmoongo.net/a.html?uid=94958

 

많은 분들이 하시는 말씀처럼 세월호의 작은 진실조각이지만 이런 재판과정과 마녀 사냥은 진실조각을 지켜내는 싸움에서 그치지않고 삶이 개입 되는거 같아요. 전 죽느냐 사느냐 그걸 놓고 싸웠거든요. 이걸 못지킨다면 전 정말 죽을 수 밖에란 생각으로 자살을 계획했죠. 인간의 기본 권리는 "살 권리"라는것을 되새깁니다. 함께 하실지, 싸움 지켜보는 관중의 입장으로 응원과 위로만 보내실지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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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기소되어 결국 무죄판결을 받은 홍가혜 씨. 변론을 맡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의 양홍석 변호사가 직접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짚어주었습니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전문 링크>>> bit.ly/1BjHT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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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안에 생존자가 있었고, 해경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구조를 방기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민간잠수사들의 진입을 막았다”며 “그로 인해 304명의 꽃다운 생명이 우리들 눈 앞에서 서서히 죽어간 것도 어김없는 사실이다. 홍가혜 씨는 이 점을 지적하고 빠른 구조, 해경의 지원을 촉구한 것이다. 도대체 뭐가 거짓이란건가?”

전문 링크>>>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027978873905220&id=100000793515637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도 저 혼자인 것 같은 시간들이 있어요. 그 시간들중 한 부분이였던 법정에 서는 일, 그 복장 터지는 시간들을 곁에서 함께 해준 양홍석, 이광철 변호사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뭔가 감사하다는걸 글로 퉁치는것 같은 모양새인데 염치없지만 당분간은 그럴거 같아요. 조금 일상을 찾는 성찰의 시간 보낸후 그 외 저와 함께 힘껏 함께해주신 분들은 따로 찾아뵙고, 한걸음 뒤에서 (각자 위치에서) 위로 격려 해 주시며 응원 지지해주신 분들 모두 따로 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함께 기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함께 기뻐해요. 기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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