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한·일 양국이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의 재단’이 28일 공식 출범했다. 가해자에 의한 일방적인 위안부 합의 자체를 반발하고 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전원 불참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시민단체들은 화해·치유의 재단 앞 건물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 동의 없이 밀어붙이는 재단 설립은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공식 인정하는 것이고 할머니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정치적 폭력 행위”라 주장했다. 김태현 재단 이사장의 기자간담회가 예정됐던 회견장에서는 대학생 10여명이 단상을 점거하고 40여 분 간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끌려 나갔다. 이 과정에서 김태현 재단 이사장이 재단 출범에 반대하는 한 남성에게 최루액을 맞고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러자 채널A는 ‘물 만난 고기’처럼 ‘캡사이신 공격’을 대서특필했다. 재단 출범의 반대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들의 목소리는 단 한 마디도 싣지 않았다. 재단 출범의 ‘졸속 추진’ 의혹도 배제했다. 채널A <‘화해 재단’ 상처 난 출범>은 리포트를 시작하면서 “현판식과 함께 공식업무를 시작한 '화해·치유재단'”의 출범 장면을 잠시 보여준 후 곧바로 “김태현 재단 이사장이 괴한에게서 캡사이신 공격을 당한” 김태현 이사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줬다. 이후엔 계속해서 김태현 이사장이 ‘공격의 피해자’임을 부각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되는 김태현 이사장을 보여주면서 “사람이 다쳤어요, 사람이”라고 소리 지르는 구급대원을 조명한 화면은 연신 흔들리면서 주변에 흩뿌려진 캡사이신의 흔적을 비추기도 했다. 마치 급박한 테러 현장을 취재한 보도를 연상시켰다.
또한 “캡사이신을 뿌린 남성은 21살 신모 씨로 현장에서 체포” “신씨는 경찰 조사에서 특정단체에 가입하지는 않았으며 일본과의 합의로 만든 재단이 마음에 안 들어서 범행했다고 진술” “캡사이신은 인터넷에서 호신용으로 구입한 것” 등 ‘가해자’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이날 7개 방송사가 모두 이 사안을 보도했지만 ‘가해자 신상’까지 보도한 것은 채널A뿐이다.
위안부 합의와 재단 출범에 반대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단 한 마디도 없이 “대학생 20여 명이 간담회장을 30여분 동안 점거해 기자간담회가 지연”됐다며 ‘민폐’만 부각하기도 했다. 보도는 “저희가 진정으로 다가가서 아무리 반대하시는 분이라도 또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 했다”고 말하는 김태현 이사장의 기자회견 장면으로 끝나는데, 이는 앞서 ‘캡사이신 공격’ 장면과 더불어 김태현 이사장의 피해자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채널A는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에도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고작 9건의 보도를 내놓으며 15건 이상을 보도한 타사에 비해 사안을 축소했다. 또한 5월 31일, 김태현 재단 이사장이 “치유금이지 배상금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해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일본 정부와 똑같은 입장을 내비쳤던 사실에도 침묵한 바 있다. 이번엔 졸속 합의 및 재단 출범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가해자’로 묘사한 것이다.
이런 정황은 일본이 돈을 언제 낼지, 재단이 어떤 사업을 벌일지 분명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재단이 출범했음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가 소녀상 이전 문제를 10억 엔 출연과 계속 연계시키려 한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정부가 이번 출범식에 피해자 할머니들을 참석시키기 위해 가족의 대리 의사를 받았다거나 돈과 식사를 내세웠다는 의혹까지 나온 바 있다. ‘졸속 추진’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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