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국기자협회와 대한변호사협회는 9월 28일 시행을 앞둔 김영란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하며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은 ‘내수위축 및 경기침체’ 프레임을 앞세워 김영란법에 흠집을 냈다. ‘법 규정이 모호하고 적용대상이 너무 많아 실효성이 의심된다’, ‘언론인·사립학교 교원 등 민간 영역을 적용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과잉 입법이다’, ‘내수 위축 및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 등의 주장도 이들의 고정 레퍼토리였다.
이에 한국사회가 뇌물 및 부정청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언론들이 몸소 증명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개혁에서 언론인만 빠져나가려 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보수언론을 위시한 언론계로서는 허탈하겠지만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 이른바 김영란법에 제기된 4가지 항목의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가 모두 합헌 판결을 내렸다.
헌재의 판결이 나온 28일, 7개 방송사는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TV조선을 제외한 6개사가 모두 헌재 판결을 톱보도로 냈고 지상파 3사와 JTBC의 경우 관련 보도량이 7~9건에 달했다. TV조선, 채널A, MBN은 모두 4건의 보도로 앞선 4개 방송사보다는 보도량이 적었다. 보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비교해보면 KBS, TV조선, 채널A, MBN의 부정적인 태도가 두드러진다. KBS는 적용 대상, 적용 행위, 법안의 취지 등 ‘법안 설명 보도’를 단 1건만 내놓은 것과 달리, 법안 비판에는 무려 4건을 쏟아 부었다.
MBC도 법안 비판이 3건이지만 그나마 법안 설명 2건을 덧붙여 KBS보다는 균형을 지켰다. TV조선, 채널A, MBN은 법안 설명 보도가 아예 없으며 농축산업계 등의 피해만 2건 보도하는 편파적 태도를 보였다. 부정부패 척결 및 사회 풍토 변화라는 입법 취지를 전하는 보도는 SBS와 JTBC에서만 나왔다. 문제는 이렇게 편파적인 방송사들의 보도 내용이 앞서 설명한 보수언론들의 프레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헌재의 합헌 판결이 나왔음에도 KBS를 위시한 방송사들이 여전히 ‘내수위축’ 등 케케묵은 ‘흠집 내기’에 열중했다는 의미이다.
‘내수위축’ 프레임 반복한 KBS, 기업의 ‘혼란상’도 유일하게 부각
이날 재계의 반응을 따로 떼어 보도한 방송사는 KBS, SBS, JTBC인데 KBS의 이 보도만이 유독 ‘혼란상’에 주목했다. SBS <바뀌는 접대문화…사회 대변화 예고>(6번째, 정호선 기자, http://me2.do/GOcs4LaY)는 “골프장에서의 대관, 홍보업무는 일부 행사를 제외하곤 거의 사라질 전망” “식사에 2차, 3차 술자리가 이어지는 전형적인 접대 관행도 바뀔 가능성” 등 ‘관행 변화’에 초점을 맞췄고 JTBC <시범케이스? 몸 낮춘 기업들>(4번째, 박영우 기자, http://me2.do/FGgRrIxw)도 “9월 28일 이후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대규모 행사 계획도 무기한 연기” 등 기업들의 ‘몸 사리기’를 전하면서 ‘변화’를 예고했다.
KBS만 마치 기업 활동에 큰 타격이 있을 것처럼 보도한 셈인데 이날 공식입장을 낸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허창수 회장도 KBS처럼 과민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허 회장은 “(기업인도) 국민들이 생각하는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며 안 된다. 대다수 기업인들은 이것을 잘 알고 행동하는데, 일부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며 최근 잇따라 불거진 대기업의 비도덕적 행태를 비판했다. 김영란법 합헌 결정에 대해서도 “다만 6개월 정도 시행해보고 문제점이 나타나면 국회에서 신속하게 법 개정을 통해 보완해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법안 설명도 제대로 안 한 KBS, 기존의 비판점은 일일이 보도
△ 김영란법이 ‘사람 간의 관계’를 메마르게 한다는 KBS 보도(7/28)
이에 그치지 않는다. 헌재 결정을 자세히 전한 보도가 3건인데 KBS는 이중 2건에서도 헌재 결정에 대한 비판에 비중을 크게 뒀다. KBS <“부정부패 사회적 위기”…압도적 합헌>(2번째, 노윤정 기자,http://me2.do/5CPUEVtD)은 “민간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규제해야 할 부분에 국가가 개입해 형벌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 “외국의 경우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특정해 규제하는 법률이 거의 없다는 점” 등의 ‘언론인 포함’에 대한 기존 보수언론의 비판점을 열거했다. 이에 합헌 결정을 내린 헌재의 입장은 “교육과 언론 분야에 만연한 금품수수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면서 자정 노력에만 맡길 수 없다”는 짧은 설명으로 갈무리했다.
논란이 된 농축산업계의 타격에 대해서는 헌재도 “내수 위축에 따른 경제 타격에 대한 헌재의 고민도 드러냈”다면서 “헌재는 시행령에서 식사비와 선물값 등의 한도를 3만 원, 5만 원 등으로 정한 것에 대해 현실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하라는 취지로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자사 입맛에 맞는 내용만 뚝 잘라 보도한 전형적인 ‘반쪽짜리 보도’이다. 헌재는 관련 산업의 피해 부분에 대해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야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부패의 원인이 되는 관행을 방치할 수는 없다”며 “공공 및 민간 부문의 부패 방지’라는 공익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골프장 울상’까지 나온 타사 보도도 엉망, 은폐된 김영란법의 의미
언론 및 사학의 자유 침해의 경우 “과도기적인 사실상의 우려에 불과하며, 심판대상조항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언론의 자유와 사학의 자유가 제한된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었다. 재판관들은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약자가 아닌 사학 관계자와 언론인에게 아무 이유 없이 1회 100만원 또는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준다는 것은 건전한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검경의 감시권 강화에 대해서도 “국가가 입법 목적을 무시하고 권력을 남용하여 법률을 부당하게 집행할 것을 예상하고 이를 전제로 법률의 위헌성을 심사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논란이 컸던 ‘배우자신고 의무’에 대해서는 “이 조항들은 배우자를 통해 부정적 영향을 끼치려는 우회적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려는 정당한 입법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KBS를 비롯한 방송사들은 고집스럽게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JTBC <[앵커브리핑] 함께…파멸한다>(2부 1번째, 손석희 앵커, http://me2.do/GWtNZoAh)는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은 가슴 아프지만… 그러므로 어떻게든 한우와 굴비를 구할 방도를 생각해 볼지언정 함께 파멸의 길을 걸을 순 없는 일”이라며 ‘한우와 굴비의 한숨’에 혈안이 된 타 방송사들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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