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주석 친인척 서훈’ 독해법

문제의 본질은 연좌제가 아닌 보훈처의 대국민 기만행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조세열 | 입력 : 2016/07/04 [01:33]

김일성 주석의 삼촌 김형권과 외삼촌 강진석에 대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민족문제연구소가 6월 27일 서훈 사실을 공개하고 국가보훈처의 부실 심사와 조직적 은폐를 비판한 뒤, 다음 날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는 물론 각종 언론과 SNS상에서도 계속 쟁점이 되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언론이나 국회 정무위에 밝힌 그간의 경위는 이렇다. 

 

2012년 강진석을 포상한 뒤 민원 제기를 받고서야 그가 김 주석의 외삼촌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2015년 10월 자문위원회를 열어 서훈의 적절성에 대해 논의하였으며, 그 결과 광복 전에 사망하여 북한 정권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공적내용이 포상기준에 합당하기 때문에 서훈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또 공훈전자사료관 기록 등은 재심 과정에서 일시 삭제한 것으로 업데이트가 안 된 것일 뿐이며 이번 광복절에 복구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보도자료 등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반론한 바 있다.

 

먼저 연구소는 강진석의 독립운동 사실은 분명하며 연좌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서훈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보훈처가 사실관계를 알고도 건국훈장을 수여했다면, 남북 화해와 평화 정착을 위한 전향적인 결단으로 환영할 일이다. 더구나 현 상훈법 제8조 ‘서훈의 취소 등’에 관한 규정에 저촉되는 바도 없으며, 사회주의자에 대한 서훈 또한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도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삼을 이유도 없다. 이 점에서는 국회 정무위에서 밝힌 박승춘 보훈처장의 ‘포상 기준 합당’ 답변은 당연하며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극우 이념 편향적인 박승춘이 보훈처장으로 취임한 뒤 강진석이 김일성의 지친이라는 기초 정보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서훈을 했다가 이를 뒤늦게 알고 서훈 자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였다는 사실이다. 

 

보훈처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더라도 외부로부터 민원이 제기될 때까지 강진석이 누구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극우 성향의 박 처장이 저지른 그간의 행태를 보아도 강진석에 대한 서훈은 소신이나 원칙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부실심사의 결과라는 혐의가 짙다. 

 

이번 사태로 우선 공적심사위원회가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검증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는 물론 박승춘 보훈처장이 독립운동사 전문가들을 내쫓고 심사위원회를 뉴라이트 성향의 비전문가들로 채운 데서 비롯하였다. 작년 10월 재심이 있었는지 여부도 밝힐 길이 없지만, 재심에서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으면 모든 공적 기록을 즉각 원상 복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보훈처는 ‘사고’가 언론에 보도되자 업데이트 누락이라는 등의 행정상의 실수로 호도하고 나섰다. 민족문제연구소 주장의 핵심은 사고를 친 뒤 이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한 보훈처의 대국민 기만행위에 대한 규탄 바로 그것이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어설픈 변명은 그만두고 국민을 기만한 조직적 은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

 

그런데 박승춘 보훈처장은 서훈에 문제가 없음을 강변한 28일 국회 정무위 답변을 하루 사이에 정반대로 뒤집고, 29일 보도자료에서 상훈법 개정을 통해 ‘김일성 친인척’ 뿐만 아니라 ‘북한 고위층 관련 인물’에 대한 서훈 취소를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입에 침도 마르기 전에 본인의 말을 뒤집고 나선 것이다. 

 

보훈처의 이런 황당한 입장 변화는, 보수언론과 극우단체들이 반발하고 ‘과거 김일성 주석의 친인척에게 서훈한 적이 없다’고 했던 처장의 정무위 답변이 또 허위로 입증됨에 따라 나온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김일성의 삼촌 김형권에 대한 애국장 추서 또한 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제 한 몸 살겠다고 수십 년간 학계와 시민사회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립된 국가의 서훈 기준마저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부 부처의 수장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공직 윤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기이한 일은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그간의 진보 대 보수라는 진영 구도가 무색하게 백가쟁명식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극우세력은 박승춘 보훈처장을 공격하는 쪽과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애써 침묵하는 쪽으로 나뉘어졌다. 진보세력 일부는 서훈 자체가 문제가 없는데 공연히 이를 공개해 민주화의 성과인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서훈마저 취소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여기서 이번 사태의 본질을 다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연좌제가 아니다. 김일성의 외삼촌이라고 해도 서훈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면 서훈하는 것이 옳다.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라면 북한 정권 수립 이전에 옥중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강진석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다. 6·25전쟁 당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납북된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조차 1980년대 말에야 이루어졌으며, 해방 이전에 사망했거나 해방 이후 이렇다 할 좌익 활동을 벌이지 않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도 2005년에 이르러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보훈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립운동의 공적이 분명한 김일성의 친인척에 대한 서훈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가, 김일성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강진석을 서훈했다. 그리고는 나중에 가서야 그런 사실을 알고 조직적인 은폐 작업을 벌였다. 김일성의 친인척에 대한 서훈을 아예 감추려고 한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승춘이 처장으로 부임한 뒤 극우 편향을 보이던 보훈처가 뜻하지 않은 사고를 친 것이다. 그리고 그 사고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있는 박근혜정권의 편향된 역사인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기 위해 강진석 서훈 문제를 애초에 거론한 것이다. 박승춘 보훈처장의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박근혜 정권의 역사왜곡에 경종을 울리려는 진의를 곡해한 채 또 전후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마치 연좌제가 이번 사태의 본질인 것처럼 논쟁을 벌이고 있는 현상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태의 전모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훈처는 김일성의 삼촌과 외삼촌을 서훈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만일 김형권과 강진석이 김일성의 친인척이란 사실을 알고서도 동일한 서훈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본다. 서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던 박승춘 처장의 답변은 궁지를 모면하기 위한 얕은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연좌제 운운하며 서훈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박 처장의 변명은 그의 본심이 아님은 물론 현 정권의 적대적 대북관계를 감안하면 성립 가능한 정부 방침일 수가 없다. 

 

둘째, 민족문제연구소가 자료를 공개하기 전까지는 보훈처는 사실관계를 밝힐 의지가 전혀 없었다. 보훈처는 민원 제기가 있어 이를 알게 됐고 2015년 10월 자문위원회를 열어 서훈 유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적심사위원회도 간과했던 전문 정보에 관해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도 그렇고 공적심사위원회 재심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가 자문위원회의 자문을 받았다고 말을 바꾸는 등 진실성이 심히 의심스럽다. 

 

셋째, 보훈처는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뒤 조직적으로 은폐작업을 벌였다. 즉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내부에서 은밀하게 수습하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출간 배포된 『공훈록』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지만, 가능한 한 기록을 말살하려 치밀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보훈처 홈페이지 ‘공훈록’과 공훈전자사료관의 ‘독립유공자 포상년도, 훈격별 현황(전체)’, 훈장 미전수자 명부에서 김형권과 강진석을 삭제한 것이다. 오는 광복절에 복구하려 했다는 치졸한 변명은 서훈 유지를 결정한 자문위원회가 작년 10월에 열렸다는 점에서 전혀 설득력이 없다. 

 

넷째, 박승춘 보훈처장은 어제와 오늘 오전과 오후가 다를 정도로 변명과 거짓으로 일관하였다. 처음에는 김일성의 친인척이라 할지라도 재심까지 한 결과 아무 문제도 없다고 대답했다가, 다음날에는 아예 서훈을 취소하겠다고 180도 표변하고 나섰다. 김형권에 대해서는 아침에는 김일성의 숙부라고 했다가 오후에는 동명이인이라고 답하고 그 다음날에는 다시 동일인이라고 말하는 등 보훈처의 책임자로 보기에는 전문성과 도덕성에 있어 함량 미달임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다섯째, 보훈처와 박 처장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상훈법 개정을 운위하며 역공을 펴고 있다.비열하게도 북한 정권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유공자까지 거론해 물타기를 하며 이념전쟁으로 전환하려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보신과 자리 연명을 위해 국가의 보훈정책마저 제멋대로 고치려들고 있으니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지금 일각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의 본래 의도를 왜곡하고 마치 보훈처의 올바른 서훈 결정이 연구소의 자료공개로 인해 훼손되었다는 듯이 주장하는 논리까지 전파되고 있다. 여기에는 전제의 오류가 있다. 정부와 박 처장이 김일성의 친인척임을 알고 서훈한 것이 아니며 책임을 모면하고자 온갖 변명과 거짓을 늘어놓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엄연한 현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 연구소가 김일성의 친인척에 대한 서훈을 공개하지 않고 삭제도 비판하지 않았다면, 사실관계 자체가 은폐된 채 완전히 사라지고 의미 또한 퇴색하고 말았을 것임이 틀림없다.

 

보훈처에 대한 비판을 또 다른 연좌제나 색깔론으로 지목하고 있는 일부 진보 언론이나 논객들의 태도는, 자료를 오독한 데다 박 처장의 변명에 기초하고 있어 문제제기의 본질을 흐리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는 김형권 강진석 등 김일성 주석의 친인척들이 벌인 독립운동 공적을 부인하지 않는다. 연구소의 기본 입장은 사상과 이념을 떠나 모든 독립운동가들을 제대로 예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하의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지향했던 노선이 좌우통합이요 민족협동전선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다양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장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전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사기극을 벌인 박승춘 보훈처장은 당장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조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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