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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급 고착의 수단, 대학입시 제도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4/11/21 [22:23]

사회계급 고착의 수단, 대학입시 제도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11/21 [22:23]

한국에서 수능이 끝났습니다. 아마 많은 학생들이 이 결과로 웃고 울겠지요. 그러나 제 삶을 돌아보건대, 우리 때 '학력고사' 였던 그 시험의 결과가 내 삶을 얼마나 다르게 했는가 하는 걸 생각해보면, 이건 그저 시험의 하나일 뿐입니다.

 

오히려 이 시험은 어떻게 보면, 지금은 더더욱 기득권들이 자기들의 권력을 더 공고히 하려고 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데서, 이 시험에 응시해야 하는 학생들이 더 안됐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입시 위주의 교육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학생들의 행복권은 보장되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가, 자기가 읽던 책의 한 구절을 밑줄 그은 후 페북에 사진을 찍어 올렸더군요. 그 구절은 이랬습니다. 

 

"대한민국을 바꿔보려는 열정보다 상류층에 편입하려는 열망이 더 큰 이상 전 인구의 한자릿수 밖에 안되는 상류층의 이해관계가 다수결의 원리로 관철되는 불의가 지속된다"

 

지금의 수능이란 것, 우리의 교육이란 것은 결국 이 욕망의 결정체로서, 이 욕망을 이루고자 올라가야 하는 실질적인 첫번째 사다리인 셈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그 사다리는 매우 제한된 사람들만 제대로 올라설 수 있도록, 시간이 갈수록 재설계된다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에서는 국가폭력, 그리고 전쟁의 기억, 그리고 학살의 기억이 어떻게 우리 민중들을 눌러왔고, 이들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어떤 기제를 마음 속에 작동시키고 있는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쟁정치/ 전쟁과사회/ 김동춘 저) 민중들을 짓누르고 있는 학살의 기억, 어떻게 보면 일제시대보다 더 악독하게 작용한 국가폭력의 기억은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권력을 휘두르는 쪽에 어떻게 순응해야 하는가를 철저하게 학습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남을 밟고 올라가야만 자기가 그 사회에서 '생존권'을 제대로 획득해야 한다는 것을 체득하고. 

 

문제는 이렇게 순치시킨 구성원들에게 교육이란 이름을 빙자한 생존학습을 지금의 대입시를 통해 다시한번 각인시킨다는 것이지요. 입시를 위한 교육은 결국 이 시스템에 어떻게 미래의 사회 주요 구성원들을 순치시키는가 하는 것을 돌아보면, 매년 수능이란 이름으로 '선택된 몇몇'을 걸러내는 이 교육 시스템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망쳐가는가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 같아 마음이 힘듭니다.

 

미국에 와서 다시 대학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여기서 크리미널 저스티스를 전공으로 해서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지금도 다시 와인을 주제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곳의 교육 시스템 - 그나마 유럽보다는 형편없다는 - 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마 우리나라 학생들도 여기같은 시스템 아래서라면 자기들의 꿈을 훨씬 더 다양하게, 실제적으로 펼칠 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수능 시험 1-2 점 차이의, 잘못된 문제 출제가 학생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뉴스 앵커의 이야길 들으면서 이런 갑갑함을 더욱 금할 수 없습니다. 

 

시애틀에서...  권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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