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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에너지’에 휘감긴 이들이 헤어나지지 못 하는 이유

[둥굴이] ‘사랑’과 ‘결핍’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4/11/10 [13:38]

‘결핍 에너지’에 휘감긴 이들이 헤어나지지 못 하는 이유

[둥굴이] ‘사랑’과 ‘결핍’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11/10 [13:38]

사람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크게  나눠보면 ‘결핍’과 ‘사랑’으로 나눌 수 있다.

 

‘결핍 에너지’의 대표적인 경우는  ‘증오, 열등, 공포, 불안’이다. 이로 인해 생기는 각종 히스테리, 피해망상, 정서불안, 과도한  애착, 격한 상실감의 증세가 만들어지는데, 이러한 이들로 인해서 공동체는 서서히 뒤틀리고  붕괴의 길을 걷게 된다.

 

증오심을 가진 이들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자신의 증오심을  서서히 뿌리내리게 하고, 열등감을 가진 이들은 동료들보다 높이 서기 위해 주도권을 갖기  위한 추잡한 모략과 이간질을 일삼으며, 공포와 불안감을 가진 이들은 현실을 전혀 왜곡된  방식으로 인식하여 공동체가 객관적 대응을 할 수 없도록 이끈다.

 

이는 그 사람을 움직이는  에너지의 성격이 ‘결핍’인 이유로 주변의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고사시키는 특성 때문이다.  특히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에너지는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증오감이 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보이게 드러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예민하게 살피지 않으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묘하게 작용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무능력, 불성실,  부도덕이 옵션으로 추가되면 그가 속한 공동체는 더 심각한 일이 빚어진다. 

 

반면, ‘사랑의 에너지’의 대표적인 경우는 ‘헌신, 나눔, 이해, 낮춤, 창조적 역동성’이다. 이러한 에너지는 주변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공동체가 나아가는 강력한 동력을 제공한다. 쓰러져 있는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절망의 잿더미 위에 희망의 싹을 틔운다. (때론 결핍의 에너지가 왜곡되어 대단히 헌신적인  모습으로 가면을 뒤집어쓰는 등의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이러한 양분화는 시대, 장소에 따라  구분될 수도 있고, 나이 대에 따라서 구분될 수도 있으며, 진보와 보수 진영 내에서도 각각  보이는 현상이다.

 

민주-진보 진영의 끝없는 내분과  이합집산은 ‘사랑의 에너지’보다 ‘결핍의 에너지’가 내부에서 작용된 때문이고, 보수진영의  파시즘 역시 그 ‘사랑의 에너지’보다 ‘결핍의 에너지’를 타아(상대방=진보)에게 집중한  결과이다.

 

반면 민주-진보진영은 ‘사랑의 에너지’를 보편적 인류애로 지향하고 있고, 보수진영은  ‘사랑의 에너지’를 내부인들 끼리 공유하고 있다.

 

진보진영이 서로 싸우기는 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끝없는 비전을 생산하는 것, 보수진영이 타인들을 짓밟을 지라도 자신들끼리는 결속이  공고하고 우애가 넘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 중에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사랑의 에너지만 가진 사람’과 ‘절대적으로 결핍의 에너지만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그 양자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 상의 어느  지점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정확히 이해할 때 우리는 생에  능동적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양자의 에너지 중에  어떤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태껏은 다만  습관적으로 살아온 대로 그리 살아왔을지라도 스스로를 조망해보면서 자신이 어떤 에너지를 주로  사용해 왔는지... 내가 자연스레 사용하던 에너지가 주

변 사람들을 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끊임없는 절망과 분노 시름만 증가시키지 않았는지를 살피고, 긍정적이고,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즉 사람을 살리는 에너지의 증폭을 통해 서로 살리는 길을 틔워야 한다.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극도의  정신이상자가 아닌 경우에는 누구든지 (심지어 이 글을 보고 있는 둥글교 찌끄레기 신자들  역시)[사랑 에너지] 비중을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늘릴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위치를 먼저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통찰력’과 이를 살피고 잘 못된 길을  되돌아가는 ‘용기’ 두 가지를 가져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내 경험에 의할 것 같으면 그 두  가지를 가진 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사랑의 에너지가 충만한 이들은  말 안 해도 스스로 오류검증을 하면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반면, 어느 정도 임계점  이하로 떨어져 ‘결핍의 에너지’에 휘감긴 이들은 그로부터 헤어나지지 못 하는 이유이다.  이는 아마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인간에 내제된 근원적 본능인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스스로 잘 점검해 보라. 자신이  증오, 열등, 공포, 불안에 휘감겨서 자기 자신과 주변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묘하게’  고사시키고 있었지는 않은지.

 

그런데... 만약 둥글이 본인이 그런  인간여서 그러한 증오, 열등, 공포의 작용을 이루는 ‘결핍의 에너지’를 이런 글을 통해서  투사시키고 있다면... 이 글을 읽어 내려온 이들은 앉아서 피 빨린 거다.ㅠㅡ 

 

 유랑일지 -충청남도 충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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