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명창 박초선 명창이 향년 84세를 일기로 지난 13일 별세했다. 31년 전라남도 화순군 향천리에서 출생한 박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가) 보유자후보 (1985년 3월 1일 인정)로 공대일 김억순 김소희 박록주 김여란(판소리) 김종희(가야금) 에게 사사받았다.
1975년 국립국악원에 입단한 박명창은 1993년 미국 스토니부룩 대학교 한국학과 판소리 강의 및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박 명창은 '국악'이라는 표현이 일제잔재적 표현이라고 개칭을 주장하였다가 국악계에 배척을 당하고 생활고를 겪었다. 김원웅 의원의 발의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명칭이 개정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후 2012년 본지 서울의소리 www.amn.kr 기자의 주선으로 국악방송과 연결되어 명인명창 100인에 선정, 출연하여 2012년 10월 7일 방송분에서 자작곡 '멍텅구리' 등을 열창하며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당시 박 명창은 '너무나 행복하다' 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해당 방송 다시듣기: http://gugakfm.co.kr/record/people_100_view.asp?seqno=76&keyword=&sido=#none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아직 노래를 부르실 수 있으시니 후학을 양성하여 스스로 벌어 먹고 사시라" 며 당시 82세 였던 명창에게 지급되던 보조금을 중단하여 박 명창을 절망에 빠뜨렸고 결국 2014년 8월 13일 수급자 신청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직접 관공서를 향하는 길에 휠체어 속에서 별세, 친구병원에서 가족장을 치뤘다.
박 명창은 당대를 휩쓸던 국악 가인이었으나 막상 별세 당시 주머니에는 단돈 2만원이 들어있었고 유산으로 남은 것은 집안에서 두들기던 북 한개가 전부. 혈육인 아들 또한 생활이 어려워 그나마 장례조차 아들 지인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치뤄졌다.
오는 9월25일이 박 명창의 49재로 뒤늦게 별세사실을 알게된 본 기자가 국악방송에 부고를 알리자 국악방송은 안타까움을 전하며 '49재 특집방송'을 준비하겠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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