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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초선 명창 지난 13일 별세

국악방송 명인명창 100에 선정된 명창

정찬희 기자 | 기사입력 2014/08/29 [21:46]

박초선 명창 지난 13일 별세

국악방송 명인명창 100에 선정된 명창

정찬희 기자 | 입력 : 2014/08/29 [21:46]

 

국악명창 박초선 명창이 향년 84세를 일기로 지난 13일 별세했다.

31년 전라남도 화순군 향천리에서 출생한 박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가) 보유자후보 (1985년 3월 1일 인정)로 공대일 김억순 김소희 박록주 김여란(판소리) 김종희(가야금) 에게 사사받았다.

 

1975년 국립국악원에 입단한 박명창은 1993년 미국 스토니부룩 대학교 한국학과 판소리 강의 및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박 명창은 '국악'이라는 표현이 일제잔재적 표현이라고 개칭을 주장하였다가 국악계에 배척을 당하고 생활고를 겪었다. 김원웅 의원의 발의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명칭이 개정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 소리의힘 명인명창 100번째 명창으로 선정된 박초선 명창     © 국악방송

 

이후 2012년 본지 서울의소리 www.amn.kr 기자의 주선으로 국악방송과 연결되어 명인명창 100인에 선정, 출연하여 2012년 10월 7일 방송분에서 자작곡 '멍텅구리' 등을 열창하며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당시 박 명창은 '너무나 행복하다' 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해당 방송 다시듣기:

http://gugakfm.co.kr/record/people_100_view.asp?seqno=76&keyword=&sido=#none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아직 노래를 부르실 수 있으시니 후학을 양성하여 스스로 벌어 먹고 사시라" 며 당시 82세 였던 명창에게 지급되던 보조금을 중단하여 박 명창을 절망에 빠뜨렸고 결국 2014년 8월 13일 수급자 신청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직접 관공서를 향하는 길에 휠체어 속에서 별세, 친구병원에서 가족장을 치뤘다.

 

박 명창은 당대를 휩쓸던 국악 가인이었으나 막상 별세 당시 주머니에는 단돈 2만원이 들어있었고 유산으로 남은 것은 집안에서 두들기던 북 한개가 전부. 혈육인 아들 또한 생활이 어려워 그나마 장례조차 아들 지인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치뤄졌다.

 

오는 9월25일이 박 명창의 49재로 뒤늦게 별세사실을 알게된 본 기자가 국악방송에 부고를 알리자 국악방송은 안타까움을 전하며 '49재 특집방송'을 준비하겠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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