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목사님, 아이고 목사님! 부끄러운 대한민국 개신교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05/25 [06:21]

종교에 대한 자조 섞인 말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는 '종교가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이젠 세상이 종교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말이다.


여러 종교 중에서도 가장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소위 '개독교'라고 조롱받고 있는 개신교다. 물신의 지배를 받는 타락한 종교로 변질되고, 이른바 '정치 교회'로 군림하면서 수없이 많은 악행과 막말을 쏟아냈던 개신교였지만, 부디 이번만큼은 가만히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쉬어가지 않았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를 두고도 '막말'을 내뱉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 <한겨레>에서 발췌 -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 천안함 사건으로 국군 장병들이 숨졌을 때는 온 국민이 경건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애도하면서 지나갔는데, 왜 이번에는 이렇게 시끄러운지 이해를 못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다 백정이다."


- 한기총 부회장 조광작 목사, 지난 20일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 긴급임원회의에서의 발언 -


"여러분 아시지만 한국은요. 이번에 정몽준씨 아들이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을 향해) '미개하다'고 했잖아요. 사실 잘못된 말이긴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거든요. 아이답지 않은 말을 해가지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세월호 피해자들이) 총리에게 물을 뿌리고 인정 사정이 없는 거야, 몰아붙이기 시작하는데…"


-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가주 소재 '사랑의 교회'에서의 세미나 도중의 발언 -


어제(23일) 하루동안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세월호 참사로 인해 슬픔에 잠겨 있는 국민 그리고 수많은 개신교 신도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던 두 목사의 발언이다. (발언은 이전의 것이지만 알려진 것은 어제였다.) 물론 숫자로 따지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는 목사들의 수가 망언을 내뱉는 목사들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언론의 특성상 막말을 하는 목사들이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위의 발언을 한 목사들은 그저 평범한 목사가 아니다. 한 명은 한기총 부회장을 맡고 있고(위 발언으로 인해 비판이 쏟아지자 조광작 목사는 한기총 부회장 자리에서 사퇴했다.), 한 명은 대표적인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가 아닌가? 개신교 내에서는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구축하고 있는 종교 지도자의 위치에 서 있는 그들이기에 이런 발언들은 더욱 위험하다. 그들의 말 한 마디는 수많은 개신교 성도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력은 가히 상상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과연 개신교의 어떤 성도가 자신이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떳떳하게 밝히기보다 오히려 숨어다녀야 하는 현실, 그것이 대한민국 개신교의 현실이다. 하지만 몇몇 대형교회를 비롯한 개신교 내의 소위 종교 지도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여전히 교회의 덩치 불리기에 매진하고 있고, 정치에 기웃거리며 권력을 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개신교가 처음부터 이처럼 부끄러운 종교는 아니었다. 실제로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한국 개신교는 그 존재감을 드러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목숨을 걸고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반대하기도 했고, 군부 독재 정권 하에서는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그 역사를 조금이나마 들춰보도록 하자.

1938년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되자 한국 개신교는 들불처럼 일어섰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총회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무릎을 꿇었지만, 이러한 총회를 비판하면서 신앙적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개신교인들도 많았던 것이다. 당시 일제에 의해 투옥된 사람들만 2,000여 명에 달했다. 그 중에 31인은 옥중에서 순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배우 신영균 씨가 열연을 펼쳤던 영화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77)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황실불경죄·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목을 뒤집어쓴 채 온갖 잔혹한 고문으로 순교했던 주기철 목사(1897~1944)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비록 짧은 삶을 살다 갔지만 그는 한국 개신교계의 큰 별로 지금까지도 종교인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와 같은 해에 제작된 <사랑의 원자탄>도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 갇혔던 손양원 목사의 삶을 그리고 있다. 6년 간의 옥고를 마친 후에는 전남 여수에서 6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애양원이라는 나병(한센병)환자촌으로 가서 1,200명의 한센인들을 보살피기도 했다.


그와 관련된 대표적인 일화는 여수·순천 사건(1948년 10월 19일) 당시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학생(안재선)을 위해 구명 운동을 벌이고 급기야 그를 양자로 삼았던 일이다. 손 목사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조 그의 신앙적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예수의 심장을 가진 성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역사의 태엽을 감아서 1970년대의 개신교의 풍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1976년 명동성당 미사에서는 3 · 1 민주구국선언이 울려퍼졌다. "우리나라는 1인 독재로 자유 민주주의와 삼권분립 제도가 말살됐다"는 내용의 민주구국선언문을 작성하고 낭독한 문익환 목사는 이 때문에 실형을 살아야만 했다. 훌륭한 신앙인이기도 했던 문 목사는 한 평생을 통일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바쳤다. 그는 종교를 떠나서 누구나 존경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


1973년 12월 '민주회복을 위한 개헌청원 백만 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는 등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의문사(이제는 그것이 의문사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로 사망한 장준하 선생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한민국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일생을 바쳤던 장준하 선생도 아버지가 장로교 목사였고, 그 또한 종교인으로의 삶을 살았다.


물론 한국 개신교에 이처럼 밝은 면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목숨을 잃어갔던 종교인들이 있었던 반면, 장로회 총회는 일제의 신사참배에 굴복했다. 이 부끄러운 역사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채 이어져 내려와 개신교를 갉아먹고 있다. 또, 군사 독재에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던 종교인이 있었던 반면, 박정희 정권과 은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국 개신교 내부적으로 자정(自淨)이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는 그런 단계를 훨씬 지나쳐 버린 듯 하다.



한국 개신교는 2000년대에 들어서 보수적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정치의 일선에 뛰어들었다. 그러한 성격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던 케이스가 바로 지난 2007년 대선이 아니던가? 당시 한 장로 후보에 대해 아주 낯부끄러울 정도로 노골적인 지지 발언들을 쏟아내며 색깔론을 설파했던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개신교를 '개독교'로 만든 주범들이기도 하다.


한국 개신교는 이대로 끝일까? 물론 일부 대형교회의 목사들을 제외한 훨씬 많은 목사들은 참된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교회를 꾸려나가고 교인들을 섬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그만두자. 그런 말로 개신교의 개독화가 일부의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지 말자. 축소하지 말자. 합리화하지 말자.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개신교가 보여준 모습은 무기력 그 자체였고, 이제는 '막말 퍼레이드'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개신교는 죽었다.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참하고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오로지 한국 개신교뿐이다. 절반 정도는 그 사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고, 또 다른 절반은 위기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철저한 반성은커녕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저 위기라는 말만 기계적으로 되풀이할 뿐이다.


자정 능력? 위기에 대한 정확한 진단도 없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신적 무장도 되어 있지 않은 한국 개신교가 과연 자정 능력을 운운할 자격이나 있을까? <무한도전>의 유재석은 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짜 위기는 위기인지도 모르는 것, 위기인줄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위기 중에 나 혼자 살려고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묻고 있다. 한국 개신교는 어떠한가? 당신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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