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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렇게 살았습니다.....모든 게 제 탓입니다.:서울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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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렇게 살았습니다.....모든 게 제 탓입니다.

껍데기의 나라를 떠나는 너희들에게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4/05/03 [09:32]

저는 이렇게 살았습니다.....모든 게 제 탓입니다.

껍데기의 나라를 떠나는 너희들에게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05/03 [09:32]

처음에 뉴스를 접했을 때 "어? 이게 뭐지?"

전원구조했다길래 "그런가보지"

뒤이어지는 속보에.."그래도 대부분은 구해지겠지"

그 많은 해경, 배, 헬기...그렇게 에워싸고 있는데 적어도 최소한의 피해 외에는 구조가 되겠지..

그런데 첫날 아무것도 안한채 시간이 가고..

또 하루가 가고..
그렇게 그렇게 하루하루가 가면서...

저는 저대로 살아갔습니다. 


한편으로는 뉴스보며 울다가 또 한편으로는 밥은 뭘 해먹을까...곧 이사가는 집에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까 하며 새벽까지 쇼핑사이트를 뒤적였습니다.

아침이면 출근길에 버릇처럼 세월호 관련기사를 읽으며 지하철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도

직장에서는 동료들과 일상을 지내면서 농담하고 아무생각없이 깔깔 웃고...

퇴근하면 습관처럼 엄마없이 잠든 아이 곁에서 인터넷을 하고..

그렇게 반복적으로 보름을 보냈습니다.

네....저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40평생을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이제 솔직히 인정합니다.

슬퍼도 하루 24시간을 슬퍼할수는 없는 거 아니냐, 내가 당사자가 아닌데..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니냐, 내 새끼도 있는데..
언젠가는 잊혀질 타인의 불행 아니냐, 내가 직접 겪는 게 아닌 한에는....

직접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솔직히 이런 생각이 깊숙히 있었기에...

그동안 수많은 사회문제를 외면해왔습니다.

관련기사를 읽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고작 그 순간뿐....

80~90년대 대학을 다녔다면서도

나는 아이돌 가수 이효리만큼도 그런 일들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내 삶으로 연결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얼마 못갈 한때 치기"로 치부하며 내 비겁함을 정당화했습니다.


나의 비겁함이 누구나 걸어가는 기성세대의 보편적 모습이라고 합리화했던 것이...

그것이 이 일의 직접적인 원인임이 밝혀진 이 순간...

저는 3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책임 당사자였습니다.

유가족앞에 왜 자꾸 미안하다고 하는지 잘 못느꼈지만...

이제 왜 그래야했던 건지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사고를 만들어온 당사자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안합니다...

아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바보인 엄마 아빠를 깨우치기 위해 우리 아들 딸이 저리 되었다면....

앞으로는 정말이지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 자라나갈 아들 딸을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조직과 권력과 관행의 높은 벽 앞에 또 물러서고 풀이 죽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나의 좁은 일상에 갇혀 눈과 귀와 손가락만 발달한채 입과 다리와 행동은 없는...

그런 비겁한 어른으로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글을 쓰신 부모님의 두려움이 저의 두려움으로 느껴집니다.

혼자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라면 뭔가 길이 있겠지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직장 동료들과 뜻을 모아서 제가 사는 지역에서 추모위령제를 준비했습니다.


어제 그 자리에 많은 시민분들이 모여주셨습니다.

부족한 진행이었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분들을 보면서 한마음임을 느꼈습니다.

행사 전에는 모두가 눈물을 펑펑 쏟을 줄 알았지만

막상 준비된 학생들과 관련한 상황극을 보면서는

명치에 뭔가가 막혀 숨을 쉴 수 없어 계속 계속 가슴만 쳤습니다.

가슴만 치지 않아야겠습니다.

해야할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앞으로는 고개 돌리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런 어른이 되어달라고.....

아이들이 하늘에서 부탁하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자기들과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사고책임자인 저에게 웃으며, 또는 준엄하게...

그리 말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책임입니다.
책임질 수 있는 어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여러분도 제 마음이 변치 않도록 응원해주십시오.


글쓴이- 그냥

<글 아래 달린 답글들...>


두아이 엄마입니다.. 세월호 가족분들 힘내세요..


안녕하십니까..

평범하게 두 아이 키우는 엄마입니다..

정말 저도 모르게 하루에도 몇번씩 눈물짓는 요즘입니다..


며칠전 초1 아들과 6살 딸과 함께 뉴스를 보다가 아이들이

눈물짓는 저에게 다가와 묻습니다 .

엄마 저기 탈출하는 사람들 보이네 ~ (선장이 탈출하는 장면...)

그리고 100명넘게 살았다는데 .. 많이 살았다는거 아니에요?

설명해줘야 했솝니다 ..

어떤 아이들과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된건지를...듣자마자 아들 녀석이 말합니다

엄마. 내가 봤던 tv 애니에서 나오던 선장님은 배가 침몰하려고 하자

모든 승객들을 작은배로 옮겨 태우고 마지막에 혼자 위태롭게 나왔는데 ...

어떻게 저 선장은 저래? 저런 사람이 어떻게 선장이야?


그리고 옆에 있던 6살 딸아이 .. "맞아.. 오빠 어떻게 선장이야 해적이지..

엄마 울지마세요 저희는 저런데 안갈께요...."

저를 꼭 안아주네요...

어떻게 .. 초1 아이.. 6살아이..도 알고 있는데 ...

그렇게 경력이 많은 선장이라는 사람이 ....선원들이...에휴....

유가족 여러분들께 .. 뭐라 위로를 해야할지 ..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

힘내세요...


-태지맘- 


아들을 먼저 보낸 부모를 지켜 보았던 아들


내가 고2 때 학교에서 귀가 하던 중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큰 형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는 것...

그때, 나는 마음 놓고 울 수도 없었습니다.

형의 죽음이 현실 같지 않았고,

오열하는 엄마가 고개 숙이고 침묵하는 아빠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고 잔인한 밤을 보내고

형의 장래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 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멀리서 누군가가 우리 집 쪽으로 걸어 오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마치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 온 것처럼 큰 형의 이름을 부르며

멘 발로 달려 갔씁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빠가 아들을 부르는 그 음성이

너무도 생생해서 너무도 평소 같아서...

마치 정지 되어 있었던 심장이 다시 뛰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죽은 형의 친구였습니다.

아빠는 눈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형의 친구를 붙잡고 물었습니다.

"우리 00이는 어디 갔다가 아직도 안 오냐"

엄마가 다시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땅에 덜석 주저 앉고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또 멀리에서 누군가가 다가 옵니다.

아빠보다 연배이신 동네에 사시는 분,

우리 아빠보다 먼저 큰 아들을 앞서 보내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오셔서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창자가 끈어지는 아픔으로 아들의 죽음 앞에 서 있는 아빠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빠는 고개를 떨구거나 하늘로 향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마치 어린 아이가 울듯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분의 품에 안기어 그분과 함께 한 없이 울었습니다

난 생 처음으로 아빠가 그렇게 우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25년이 지난 오늘까지 기억하고 있나 봅니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부모는 그 자식을 마음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부모님이 이 땅에 사시는 내내 지켜 보았습니다.

우리는 잊고 살아 갔지만 그분들은 묻고 살아 가신다는 것을...



25년이 지난 현재

저는 안산 임시분향소가 있었던 근처 주택에서 살아 가고 있습니다.

화랑유원지로 분향소가 옮겨지기 전까지

이곳은 철 없는 아이들 마저 밖에서 뛰놀며 장난치는 소리도 없이 정막했습니다.

하루 하루 세월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울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존귀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터질듯한 가슴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구조적인 악이 일상이 되게 만든 어른인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침몰해 가는 세월호의 소식을 들으며 단 한 사람도 지켜 주지 못한 어른인 내가,

이 나라 정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아픈 가슴으로 진도 바다를 향해 자녀들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화는 부모님들을 보면서 꺼이꺼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도 두 아이의 아빠이고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기에...


모난돌 


자랑스럽던 대한민국이 부끄러워진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부끄럽다

아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부끄럽고 싫어진다

아니 권력과 힘이 난무하고 국민을 자기 자리 보전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권력자들과 언론이 너무너무 싫다

최초 사고시간, 사고 발생원인, 구조할수있는 2시간의 시간을 그냥보내고

그냥지켜보는 해경, 유가족과 실종자가족들에게 쉴세없이 거짓말을 일삼는

정부와 언론들...

정부에서 사고메뉴얼이라고 만든내용을 보니 국민들의 눈을 사고와

별상관이 없는 다른데로 이목을 돌리면서 자기들 자리만을 보전하려는 정부

정부를 믿고 함께 하는것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바라는 것은 이루어질수없는

꿈일것 같다는생각만드니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정부가, 언론이 부끄럽다


사랑하면서


껍데기의 나라를 떠나는 너희들에게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게 바침
권혁소(시인. 강원 고성중 교사)

어쩌면 너희들은
실종 27일, 머리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수장되었다가
처참한 시신으로 마산 중앙부두에 떠오른
열일곱 김주열인지도 몰라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일이었다

어쩌면 너희들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에서
머리채를 잡혀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이
욕조 물고문으로 죽어간 박종철인지도 몰라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일이었다

너희들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고향은
쥐라기 공룡들이 살았던 태백이나 정선 어디
탄광 노동자였던 단란한 너희 가족을
도시 공단의 노동자로 내몬 것은
석탄산업합리화를 앞세운 노태우 정권이었다

나는 그때 꼭 지금 너희들의 나이였던 엄마 아빠와 함께
늘어가는 친구들의 빈 자리를 아프게 바라보며
탄가루 날리는 교정에서 4월의 노래를 불렀다
꽃은 피고 있었지만 우울하고 쓸쓸한 날들이었다

여객선 운행 나이를 서른 살로 연장하여
일본에서 청춘을 보낸 낡은 배를 사도록 하고
영세 선박회사와 소규모 어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엉터리 안전 점검에 대기업들이 묻어가도록 하고
4대강 물장난으로 강산을 죽인 것은 이명박 정권이었다

차마 목 놓아 부를 수도 없는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희들이 강남에 사는 부모를 뒀어도 이렇게 구조가 더뎠을까
너희들 중 누군가가 정승집 아들이거나 딸이었어도

제발 좀 살려달라는 목멘 호소를 종북이라 했을까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절규하는 엄마를 전문 시위꾼이라 했을까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막말 배틀을 하는 나라
너희들의 삶과 죽음을 단지 기념사진으로나 남기는 나라
아니다, 이미 국가가 아니다
팔걸이 의자에 앉아
왕사발 라면을 아가리에 쳐 넣는 자가 교육부 장관인 나라
계란도 안 넣은 라면을 먹었다며 안타까워하는 자가 이 나라 조타실의 대변인인 나라
아니다, 너희들을 주인공으로 받드는 그런 국가가 아니다
그러니 이것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에 의한 타살이다
이윤만이 미덕인 자본과 공권력에 의한 협살이다

너희들이 제주를 향해 떠나던 날
이 나라 국가정보원장과 대통령은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머리를 조아렸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그래서였나
그래서 세월호의 파이를 이리 키우고 싶었던 걸까

아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이제 막 피어나는 4월의 봄꽃들아

너희들의 열일곱 해는 단 한 번도 천국인 적이 없었구나
야자에 보충에 학원에, 바위처럼 무거운 삶이었구나
3박 4일 학교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흥분했었을 아이들아
선생님 몰래 신발에 치약을 짜 넣거나
잠든 친구의 얼굴에 우스운 낙서를 하고 베개 싸움을 하다가
선생님 잠이 안 와요, 삼십 분만 더 놀다 자면 안 돼요
어여쁜 얼굴로 칭얼거리며 열일곱 봄 추억을 만들었을 사랑하는 우리의 아이들아
너희들 마지막 희망의 문자를 가슴에 새긴다
학생증을 움켜쥔 그 멍든 손가락을 심장에 심는다

이제 모래 위에 지은 나라를 떠나는 아이들아
거기엔 춥고 어두운 바다도 없을 거야
거기엔 엎드려 잔다고 야단치는 선생님도 없을 거야
거기엔 네 성적에 잠이 오냐고 호통 치는 대학도 없을 거야
거기엔 입시도 야자도 보충도 없을 거야
거기엔 채증에는 민첩하나 구조에는 서툰 경찰도 없을거야
거기엔 구조보다 문책을, 사과보다 호통을 우선 하는 대통령도 없을 거야
어여쁜 너희들이 서둘러 길 떠나는 거기는
거기는 하루, 한 달, 아니 일생이 골든타임인 그런 나라일거야

따뜻한 가슴으로 꼭 한 번
안아주고 싶었던 사랑하는 아이들아
껍데기뿐인 이 나라를 떠나는 아이들아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눈물만이 우리들의 마지막 인사여서 참말 미안하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안녕


이러면안되는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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