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는 공식적인 조건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인류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는 것이며, 이는 국제 분쟁 해결, 인권 및 기본 자유 증진, 국제 협력 강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 평화 증진에 기여한 공로는 국가 간의 우의 증진과 현존하는 군대의 폐지 및 축소, 평화 회담 개최 및 촉진 또는 평화 운동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된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를 선정할 때 해당 업적이 완전히 성공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현시점에서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를 선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이러한 기준과 조건을 고려한다면 이번 노벨평화상은 이에 어울리지 않는 오히려 정반대의 인물이 수상한 것처럼 보인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의 야당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스스로를 자유주의자이자 자유시장경제 옹호자로 정의하며 차베스주의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한 인물이다. 더욱이 좌파 성향의 차베스에 맞서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지를 호소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공공정책에서 국가의 역할 축소와 시장 자유화를 주장하며 기업가 정신을 부의 창출과 고용 창출의 주요 동력으로 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실제로 주장하는 주요 정책의 대부분이 시장경제와 민영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국영 석유회사의 민영화와 우고 차베스 정부 시절 국유화된 모든 기업을 원소유주에게 반환하는 정책을 제안하여 베네수엘라에서 최초로 민영화를 주창한 주요 정치인이 되었다. 또한 그녀는 베네수엘라 과야나 기업공사, 국가전력공사, 통신회사, 국영 호텔 등의 민영화도 함께 제안하기도 했다. 마차도가 노벨평화상 받은 직후 “고통받는 베네수엘라 인민과,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대의에 결정적인 지지를 보내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상을 바친다”는 글을 올렸다. 마차도가 상을 받은 것도, 상을 트럼프에게 바치겠다는 것도 신기하고 희한할 따름이다.
석유 매장량 1위 나라 베네수엘라의 1976년 석유산업 국유화로 미국 석유기업은 베네수엘라에서 철수했다. 석유전쟁의 시작이었다. 1999년 집권한 차베스가 ‘반미, 반제’를 전면에 내세워 미국과 대립했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와 추종 여부를 떠나 마차도의 이력을 종합하면 그가 ‘평화’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을 받을 만한지는 매우 의문이다. 그는 자국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단숨에 전복시킨 2002년 쿠데타를 주도했고, 헌법을 폐지하고 모든 공공기관을 하룻밤 사이에 해체한 법령에 서명했다. 그는 정권 교체 정당화를 위해 미국 정부와 공조했고, 자신의 플랫폼을 이용해 베네수엘라를 무력으로 ‘해방’시키기 위한 외국의 군사 개입을 요구했다. 트럼프의 침략 위협과 카리브해에 대한 해군 배치를 지지했다.
차베스에 이어 마두로 정권도 ‘반미’를 이어가며 중국, 러시아, 이란 등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 식량·의약·생필품 부족, 난민 발생 등은 미국의 경제제재 영향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무너진 이유가 과도한 복지라고 주장하는 대한민국 또는 세계의 극우들은 베네수엘라를 향한 미국의 경제제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는 ‘마약전쟁’을 내세워 베네수엘라 침공을 입에 올리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 체포 관련 정보 제공 시 5,0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고 베네수엘라 인근에 해병대 4,000명을 배치했다. 미국의 목표는 베네수엘라 좌파정권 전복, 친미 정권을 세우는 것이다. 미국의 오랜 숙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차도는 반공, 마두로 축출, 신자유주의를 기치로 내건 극우 정치인이며 트럼프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인물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로 결정된 것에 대해 터무니없게도 이 상을 노렸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낙담했을까. 트럼프는 수상에 실패했지만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지지하는 인물, ‘남미의 트럼프’라고 해도 좋을 인물에게 평화상이 돌아갔으니 트럼프는 ‘대리 수상’이라도 하게 되는 셈이다. 마차도의 평화상 수상은 노벨평화상에 대한 그동안의 논란과 비판을 다시 거세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위원회의 자격에 대해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마차도는 트럼프 추종자로 노벨위원회는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을 주는 최악의 선택을 피하는 대신, 그의 협력자인 극우 정치인에게 상을 주는 비겁한 선택을 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이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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