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진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실 식당에서 근무하는 분들을 격려하는 장면이다. 근래 저토록 환하게 웃고 있는 국민들을 본 적이 없다. 반가운, 너무나 반가운 표정들이 아닌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정부의 대통령이 식당 근무자들을 일부러 찾아가 인사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에서도 청소를 하는 분들을 찾아가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진 속의 한한 미소, 저게 바로 공감이고 진정성이다. 그것은 결코 사진으로 연출할 수 없는 것으로, 거기엔 항상 낮은 곳을 지향한 이재명 대통령의 전 생애가 투영되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통시장에 가면 바닥에 앉아 장사를 하는 할머니들을 찾아가 대화하고 소소하나마 물건을 사기도 하였다. 전에 시장에서 일하신 어머니를 떠올린 것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바로 그런 모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공감이란 경험의 공유와 진정성에 나오는 마음의 작용이다. 누구든 말로는 “고맙다, 잊지 않겠다, 여러분을 위해 일하겠다”고 할 수 있지만, 때론 언어의 수사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역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독한 가난과 고난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온 이재명 대통령의 언행은 다르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 상대원동 시장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백한 어린 시절은 전 국민을 울렸다. 그 공감이 오늘날의 이재명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감은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가짜뉴스나 다른 잡음이 들려와도 그 믿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수구들이 온갖 죄를 조작해 이재명 대통령을 제거하려 했지만 이렇다 할 증거 하나 내놓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국민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수구, 특히 검찰과 언론에 당하고 살았구나, 하고 알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수구들이 주구장창 외친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당선을 가져다 준 것이다. 반면에 윤석열은 수십 가지가 넘은 소위 ‘본부장 비리’를 모두 검찰을 이용해 덮었다. 거기에다 내란까지 일으키자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윤석열을 파면시키게 한 것이다.
가짜뉴스와 선동으로 형성된 여론은 금방 물거품이 될 수 있지만, 오랜 시간 공감으로 형성된 민심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전자가 모래성이라면 후자는 견고한 돌담이다. 수구 언론이 아무리 떠들어도 돌담처럼 견고한 국민 정서는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수구들이 이재명을 제거하고 싶어도 제거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기 때문이다.
지난 아픈 시간과 그것을 같이 극복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필자가 쓴 시 두 편을 소개한다.
우린 잠시 터널을 지나고 있을 뿐이야
때때로 예고도 없이 바람이 불고 땅이 흔들리며 등고선이 좁혀지는 그런 시간이 찾아오곤 하였지. 그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면마비 현상이 일어나곤 하였다.
간혹 앞이 흐려지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그런 나날이 계속되었지만 진앙(震央)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로부터 뭔가 꿈틀거렸고 악몽을 꾸다가 부스스 일어났다.
그때마다 어느 산골 소문도 없이 우거진 자작나무 가지에 흩뿌려진 하오의 햇살 밑으로 얼룩진 옷을 입고 엎드려 적군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내들이 떠올랐다.
고개를 들면 멀리 능선을 이루며 타오르던 그토록 많은 나방들이 저마다 푸른 눈을 뜨고 성난 파도처럼 꿈틀거리며 야만의 기슭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범도 이 사람아, 그냥 포수나 하지 왜 먼 땅으로 가 극장지기를 하다가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조국 땅에서 그런 수모를 당하고 사는지 그대 옆구리에 찬 권총이 슬퍼 보인다.
하여도 근원(根源)을 알 수 없는 깊은 땅속으로부터 뭔가 꿈틀거리는 게 보이는가. 잠시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먹는다고 설마 저토록 뿌리 깊은 조선 소나무가 쓰러지겠는가.
조금 더 가면 저만큼 반원의 햇살이 점점 커지며 온몸 가득 햇살 환한 그런 시간이 다시 올 거라 믿고 걸어가는 사람들, 우린 잠시 터널을 지나고 있을 뿐이야.
바람이 살다간 집
지붕에 쌓인 눈이 햇살에 녹아 밑으로 자란 시간을 만들었다. 살짝 건드려도 떨어질 것 같은 무딘 창끝을 바닥에 겨누고 무슨 말을 하려다 혼자 운다. 흐르지 못하고 얼어버린 생애가 너 하나뿐이랴.
구멍 난 창호지 사이로 바람이 오가고 문풍지가 밤새 떨고 있다. 달빛이 슬며시 찾아와 방안을 고요히 비추면 아랫목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사진 속 할머니를 바라본다.
인기척 없는 집에 빗소리만 요란하다. 먼지 쌓인 장독이 더욱 까매지고 마당가 감나무에 열린 홍시 한 알이 아직 남아 있으나 누구도 딸 생각이 없고 참새도 그냥 지나간다.
뚜껑 열린 가마솥이 눈을 널름널름 받아먹고 있다. 타다 만 장작에 눈이 내려 흑백의 시간들이 서로 껴안는다. 녹슨 낫 하나가 황토벽에 걸려 멀리 펼쳐진 들녘을 바라본다.
아직 입을 벌리고 있는 우체통엔 빛 바란 편지들이 쌓여 있다. 구멍 난 창호지 사이로 도둑고양이가 드나든다. 휘어진 철사가 깨진 벽돌을 붙잡고 있다.
인용한 필자의 시 두 편에 뭔가 공감되는 게 있다면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우리 뮤지컬 ‘어쩌면 헤피엔딩’이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인 토니상에서 6개 부분을 휩쓸었다. 한국 축구도 쿠웨이트를 4대0으로 이기고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주가도 2900을 돌파해 곧 3000이 될 것 같다.
TV를 안 보던 국민들이 요즘엔 뉴스 보는 재미로 산다고 한다. ‘어찌 우리가 가난하랴’, ‘상록수’ 같은 국민이 있는 이상 한국은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그걸 해 낼 것으로 믿는다. 그러므로 끝까지 응원하자. ‘비판적 지지’란 회색주의자들의 변명이다. 아가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그냥 지지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므로... .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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