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싸움으로 번진 김건희 문자 소동의 승자는 외견상 한동훈 후보로 보인다. 문자 소동 전후 여론조사를 비교하면 한동훈의 추세는 꺾이지 않고 견고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희룡과 나경원등이 수세에 몰리고 한동훈이 되레 공세를 퍼붓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한동훈이 온전히 이겼다고 보긴 어렵다. 내상과 후유증이 만만치 않아서다. '감히 영부인 문자를 씹다니' 라는 말로 원희룡은 계획된 분노를 일으켜 지지자들의 선동에 나섰고, 나경원은 '판단 미숙'이라고 애써 순화하는 표현을 사용햇으나 어차피 같은 느낌 다른 표현일 뿐이다.
김건희 한동훈의 문자소동에서 짚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그 문자를 정말로 한동훈이 씹었다고 한다면 한동훈은 정치인으로서 자질 부족을 드러낸 치명적 결함을 지녔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총선을 지휘하는 비대위원장 입장에서 김건희 사과는 영향을 끼칠수 있는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둘째, 설사 김건희가 사과를 했다고 하더라도 총선에서 국힘당이 승리했을 것이라는 역사의 가정은 참으로 정세를 읽지 못하고 판단도 못하는 어설픔의 연속이다. 그들이 총선에서 패배한 것은 취임이후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 오랫동안 쌓이고 누적되어온 결과물이다. 이채양명주라는 다섯글자로 상징되지만 그 외에도 그들의 국민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이다.
셋째, 한동훈의 '읽씹'은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찜찜함을 남긴 듯 하다. 당장은 미래권력이라고 불리는 한동훈의 손을 들어주지만 ‘과연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의심을 갖게 만들었다. "김 여사 문자 내용은 사과가 힘들다는 뜻"이었다는 한동훈의 해명은 전문 공개로 힘을 잃었다. 영부인 문자에 답하면 국정농단이라고 판단했다는 말을 따른다 해도 왜 즉시 대통령실과 논의하지 않았는지, 왜 김 여사 사과 의사만이라도 공개하지 않았는지 의문은 꼬리를 문다.
넷째, 한동훈의 거짓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동훈이 대통령실에 여러 차례 사과를 요구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는 명품백 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일관되게 '함정 몰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국민 눈높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흘리고, 대통령실과 갈등설에 "갈등 같은 건 없다"고도 했다. 심지어 한 언론사 질문에 "제가 김 여사 사과를 이야기한 적이 있던가요"라고 반문하며 정정보도 청구까지 냈다. 그래서 윤석열의 지지자들이 한동훈을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부르고 피노키한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유이다.
끝으로, 한동훈이 당 대표에 오르면 정무감각 부족 문제는 더 크게 불거질 수 있다. 차기 대선을 노리는 한동훈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차별화 행보를 가속화하면서 국민의힘이 분당 사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보수층에 팽배하다. 이를 막기 위해선 고도의 정치적 계산과 줄타기가 필요한데 한동훈에게 그럴 역량이 있을까를 걱정하는 것이다. 당장 한동훈표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내홍이 시험대가 될 것이다.
결국, 이번 '김건희 문자' 사태로 확인된 건 윤석열과 한동훈의 무능이다. 수십 년간 연을 맺고 한 몸처럼 지낸 그들의 권력 싸움에 국민의힘은 선거에도 패하고 이젠 극단적 분열의 길로 향하고 있다. 얼떨결에 국민의힘에 몸을 담은 두 사람은 여태껏 보수정권과 보수정당의 가치와 비전을 제대로 내놓은 적이 없다. 상대방 공격과 흠집찾기, 위압적 상명하복, 소통 단절 등 특수부검사식 사고와 문화,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섣불리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한계다. 검사 선후배가 이끌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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