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시인' 신경림, 세상 소풍 마치고 향년 88세로 별세민중의 그늘진 삶 질박하고 친숙한 시어로 담아낸 '민중적 서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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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 연합뉴스
<가난한 사랑의 노래>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민중의 그늘진 삶을 노래했던 문단의 원로 신경림 시인이 22일 오전 8시 17분께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민중 시인으로 알려진 고인은 문단에서 "우리 시대의 두보(杜甫)"라고 평가받았다. 노태우 정권 당시 국군보안사령부의 사찰 대상이되어 감시를 당하기도 했다.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신경림 시인은 1956년에 등단해 '낮달' '갈대' '석상' 등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 '목계장터' 등은 초중고 국어, 문학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빼어난 수작으로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작품이다.
고인은 민중의 한과 슬픔, 구비구비 굴곡진 삶의 풍경과 애환을 질박하고 친숙한 일상적인 시어로 담아낸 '민중적 서정시인'이었다.
특히 한창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1970년대 문단을 휩쓸던 모더니즘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피폐한 농촌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농무’는 10만 권 넘게 팔리며 어려움에 처한 창비시선이 지속적으로 발간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고인은 만해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호암상(예술부문), 4·19문화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민족예술인총연합 의장 등을 역임했다. 문인들은 고인과 그의 작품이 한국 현대시와 문단에서 차지하는 높은 위상을 고려해 장례를 주요 문인단체들이 함께하는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