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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스럽게 반복되는 역사 5.16과 12.12 그리고 검찰 쿠데타

이득신 작가 | 기사입력 2024/05/16 [21:25]

수치스럽게 반복되는 역사 5.16과 12.12 그리고 검찰 쿠데타

이득신 작가 | 입력 : 2024/05/16 [21:25]

▲ 출처=연합뉴스  © 서울의소리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박정희 소장 등 일부 정치군인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방송국을 장악하고 윤보선 당시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을 압박하여 쿠데타 군인들을 지지하게 만든다. 당시 실권자였던 장면 총리는 안경이 벗겨진지도 모르게 도망을 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제2공화국의 내각 은 9개월 만에 무너졌고, 박정희를 수반으로 하는 국가재건 최고회의가 등장했다.

 

정통 국군에는 이승만 정부 때부터 군의 부패와 비리에 불만을 품고 4.19 혁명 이후 정군 운동을 벌여 미국과 충돌했던 일군들의 옹호자들이 있었다. 군인 박정희와 1961년 2월 강제로 예편한 김종필 등 8기생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쿠데타를 개시하게 된다. 박정희 등은 이승만 정부 때 쿠데타를 이미 계획하였으나 4.19 혁명이 일어나는 바람에 무산되기도 했다. 이에 민중혁명 1년여 만에 다시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당시 주한미군과 주한미국대사관의 반대 성명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군인 참모총장 장도영 과 통수권자 대통령 윤보선을 회유하여 쿠데타를 지지선언하게 하고 4.19로 집권하여 민주정권의 완성에 박차를 가하며 민주화를 진행하려 했던 상황마저 무너뜨린다. 결국 쿠데타는 군사적 수단으로 움직이고, 군인들이 입법 사법 행정등 삼권을 탈취하여 미래 자신들이 조직한 군대 혁명 위원회가 대한민국의 모든 통치권을 행사한다고 선언하게 된다.

 

또한 박정희는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장도영을 의장으로 내세우고 자신을 부의장으로 하는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만들게 된다. 이는 반헌법기관이었다. 또한 1962년 12월 31일 까지 정치인에게 모든 범위의 모든 활동을 유일하게 중지하고 언론 사전 개입을 실시하기도 했으며, 정기간행물 1,200여 종을 모두 폐간한 후 2년 반 동안 군을 실시했다.

 

과거에는 이 사건이 군사혁명, 군사반란, 군사정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으나, 문민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으로 "5.16 군사정변"이 공식적인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5.16쿠데타로 규정지은 것이다.

 

박정희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난지 채 20년도 되지 않아 전두환에 의한 군사반란이 다시 일어났으며,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시는 군사 쿠데타가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검찰이 쿠데타를 일으켜 마침내 그들만의 세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쿠데타가 반복되기도 하고 민중혁명도 끝없이 반복되는 중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단순한 명제를 5.16일 군사반란의 날에 뼈 속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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