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진보개혁연합 세력의 총선 승리를 위해 출범한 더불어민주연합의 일정이 공개된 후 많은 후보와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후보들이 도전장을 던진 가운데, 특히 인권운동가 고상만 씨가 눈에 띈다. 그는 군 의문사진상규명에 앞장섰던 인물이며 특히, 장준하선생의 의문사를 파헤쳐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신원식 장관의 지휘관시절 이등병의 사망사고를 사회고발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시민 사회계열에서 진행되었던 그의 가열찬 행보가 국회를 통해 날아 오를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한편 더불어민주연합은 3월10일 최종 서류선발된 12명을 대상으로 공개오디션을 통해 최종 국민후보를 선출할 예정이다. 다음은 인권운동가 고상만씨의 출마의 변이다.
더불어민주연합 비례 국민후보로 출마했습니다. 그 이유는?
고상만 (군 인권운동가)
누군가 ‘당신을 대표하는 최고 경력이 무엇이냐’며 묻는다면 저는 ‘지나온 33년간의 진심’이라고 답하겠습니다. 1990년, 대학 2학년이 되던 그해 3월에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김용갑이라는 동료가 2시간 35분 실종 끝에 의문사한 시신으로 새벽 거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훗날 제가 장준하 선생을 비롯하여 군의문사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숙명적 사건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당시 20대 청년의 양심으로 ‘그는 죽고, 나만 살았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식을 처음 듣곤 한없이 몸부림치며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커터 칼로 제 검지 손가락을 그은 후 대자보 위에 혈서로 그의 이름, 석 자를 썼습니다.
저는 혈서를 쓰면서 약속했습니다. 하나는 내 일생동안 그의 기일을 챙기겠다는 것과 또 하나는 그가 염원했던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시대 양심을 잊지 않고 내가 실천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저는 그 약속을 지키고자 지난 33년간 노력했습니다. 정말이지 ‘딱’ 한번을 제외하고 매년 그의 추모제를 선, 후배들을 다독여 함께 챙겨왔습니다. 고백하자면 ‘딱 한번’ 그의 기일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91년 제가 부패한 사학재단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구속된 그의 첫 기일 때 였습니다. 그때 감옥에서 혼자 관식에 숟가락 꽂고 울며 묵념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마찬가지로 그와 했던 ‘두 번째 약속’ 역시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언급한 것처럼 학내민주화 과정에서 저는 91년 3월, 구속되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죄가 있어서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없어서 구속되는 것이 어린 나이에도 너무 분해 울었습니다. 그래서 수갑과 포승을 차고 감옥으로 끌려가는 호송버스 안에서 서럽게 울며 다짐했습니다. 내가 훗날 석방되면 인권운동가가 되겠다며 결심한 첫날입니다. 잊지 못합니다. 1991년 3월 27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일제 시대에 지은 강원도 고성경찰서 지하 대용감방으로 끌려가던 날입니다.
그 결심대로 저는 92년 <유서대필 조작 강기훈 무죄석방 공대위> 활동가를 시작으로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연합 인권위>, <천주교 인권위> 등에서 상근활동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또한 98년에는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 자문위원> 활동을 시작으로 오늘까지 26년간 군사망사고 피해 지원 전문가로 일해 왔으며 2002년에는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에서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조사관으로 일하며 책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과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를 쓰고 <나꼼수> 등 여러 방송에서 이 사건 진실을 알려 왔습니다. 이를 통해 의문사 전문가로 알려지게 되었고 <인권운동가 수사반장>이라는 별칭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2012년 8월 20일이었습니다.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신독재자 박정희 씨의 딸, 박근혜 씨가 당시 여당 대선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저는 그 직전 장준하 선생이 자신의 두개골에 6센치 가격흔을 드러내며 타살되었음을 외치고 있다며 세상에 말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후퇴하고 있었습니다. 독재자의 딸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아내와 상의한 후 재직중인 교육청에 공무원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자 침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표가 수리된 2012년 11월 29일, 저는 <오마이뉴스>에 이 한마디로 귀결되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일정한 자격과 조건을 갖춘 사람은 누구나 대통령을 할 수 있지만 단 한 사람, 독재자의 딸 박근혜 만은 안됩니다. 저는 이 한마디를 하고자 공무원 사표를 냈습니다. ....”
비록 그 해 선거에서 박근혜 씨가 당선되었지만 저는 그때, 제가 ‘가만히 있지 않고’ 제 양심의 울림에 따라 행동한 것을 죽을 때 까지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한편 많은 분들은 저를 <군인권 운동가>로 기억하고 응원합니다. 제가 군인권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98년 이후 지금까지 만나온 약 500여 명의 군사망사고 피해 유족과의 인연 때문입니다. 가족을 잃은, 더구나 자식을 보낸 참척의 고통은 무엇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이태원 참사의 고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참사로 가족을 잃은 분들의 절망을 인권운동을 해 오며 누구보다 많이 봐 왔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을 끌어안고 해결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의무이자 과제입니다. 그 올바른 해결은 진상규명입니다.
더구나 의무복무로 군에 보낸 자식을 다시 그 부모에게 돌아주지 못한다면 그 명예라도 돌려주는 것이 마땅한데, 대한민국에서 약 3만 9천여 명의 미순직 군인을 그냥 방치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국방부를 통해 처음 알아낸 때가 지난 2013년의 일이었습니다. 이 충격적인 비밀을 어떻게 국민에게 알리고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찾은 해법이 2017년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기획, 제작하는 캠페인이었습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는, 제가 만나온 그 500여 유족의 사연 하나 하나를 모티브로 제가 직접 대본을 쓰고 기획한 이야기입니다. 2016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다음 스토리펀딩>에 72일간 모두 33개의 글을 썼습니다. 이를 통해 국민에게 ‘미리 표를 사 주시면 군의문사 연극을 만들어 초청하겠다’며 후원을 호소했습니다.
이 호소에 해외동포를 비롯한 경향 각지의 2,800여 명의 후원자가 화답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애초 기획했던 10일간의 대학로 공연을 넘어 서울 <금천 문화재단>에 이어 육, 해, 공군 참모총장 초청으로 <계룡대 공연>까지 이어졌습니다. 군에서 핍박만 받던 우리 군사망사고 유족 어머니 아홉 분이 전문 배우와 함께 무대에 올라가 연기를 통해 ‘우리 아들은 죄인이 아닌 이 나라 애국자라며’ 외친 것입니다. 그야말로 감동과 눈물이 어우러진 이 연극을 관람한 국방부장관 등 군 수뇌부 역시 군인권 문제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기적은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께서 대통령 선거후 첫 외부 활동으로 이 연극 관람을 와 주셔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유족의 간절한 염원이었던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2018년 9월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 위원회>가 발족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지난 5년간 모두 1,860건의 미순직 사건을 진정받아 1,200명의 군인이 새롭게 진상규명 결정을 받아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최근 영화 <서울의 봄>으로 알려진 고 김오랑 중령과 정선엽 병장 역시 위원회 재조사로 기존의 <순직>에서 새롭게 <전사> 결정을 받아 큰 화제가 된 것을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이 나라엔 아직도 미순직 군인이 3만 8천 여명이나 남아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그래서 지난 2023년 9월, 법적 활동기간 종료로 위원회가 끝나던 날, 미순직 군인 자식을 그대로 남겨 둔 어머니들은 ‘이제 내 자식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고 그 모습에 모두가 함께 울었습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위원회 활동이 예산 낭비라며 해산 시켰습니다.
이게 정말 말이 됩니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몇 안되는 의무복무제를 채택하고 있는 분단국가입니다. 국민에게 의무복무를 요구한다면, 국가 역시 그 군인의 목숨에 무한책임을 져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군인 사망의 진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뢰를 얻지 못하는 국방부가 아니라 민관 합동의 외부 조사기구 존속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군사망사고 피해 유족의 간절한 절규입니다.
또한 실질적인 군인권 개혁을 위한 의식주 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 국회의원, 미사일이나 탱크 같은 거대 담론도 중요하지만 군대에서 더 이상 여군의 목숨을 위협하는 성폭력 문제가 좌시되지 않는 문화, 그리고 전쟁이 아니라면 누구나 살아서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며 복무가 끝나면 국가가 정성껏 예우하는 50만 군인 존중의 시대를 만들어 갈 때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이것을 책임질 수 있는 국회의원이 한 명은 나올 때가 되었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국가통계 포털>에 의하면 2022년도 현역 입영대상 청년은 20만 2천명입니다. 이들 청년의 인권을 지키고 그 생명을 지키는 것은 새롭게 한 명의 생명을 더 낳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미 태어나 스무 살이나 된 청년이 헛되게 죽지 않도록 지키는 일. 그 일을 하는 ‘이등병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하는 <국방위 전문> 국회의원, 그 일이 이제는 정말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역할을 누구보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 역할을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2017년 <국방부 적폐 청산위> 간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병사의 휴대폰 반입과 군위수지 폐지를 권고하여 군 자살율을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또한 2018년 <국방개혁 자문위> 간사위원으로서 군의료체계 문제와 부사관급 이상 사망 군인의 불공정한 순직 보상금 및 예우 문제를 개선하는데 긍정적 결실을 거뒀습니다.
이처럼 학생운동 및 재야단체 활동, 그리고 대통령 소속 조사관 및 기초자치단체 공직 경력, 특히 17대 및 19대 국방위 의원실에서의 실무 경험으로 국민이 원하는 의정활동을 유능하게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무엇보다 오늘도 군에 자식을 보내는 이 땅의 모든 부모님을 대신하여 이등병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모든 군인들의 의, 식, 주와 생명을 안전하게 책임지는 든든한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하겠습니다.
더불어 윤석열 정부와 신원식 장관이 의도적으로 제기하는 남북간 전쟁 위기를 막고 평화 분위기 조성을 통해 국민 모두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자신이 있습니다. 국민추천 비례 의원으로 선택해 주신다면 그 기대에 호응할 자신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국회의원, ‘비례 국회의원답게 전문성을 기초로 일할 준비를’ 했습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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