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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아버지와의 전쟁"과 "첫 번째 머슴"

"권위적인 아버지를 둔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렇듯 내게도 아버지는 언젠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정현숙 | 기사입력 2021/11/11 [17:40]

'이재명의 웹자서전'.."아버지와의 전쟁"과 "첫 번째 머슴"

"권위적인 아버지를 둔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렇듯 내게도 아버지는 언젠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정현숙 | 입력 : 2021/11/11 [17:40]

 

<아버지와의 전쟁, 그 시작>

 

공장으로 출근하는 길,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면 부러웠다. 교복 칼라는 아침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났고 아이들의 가방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담겨 있었다.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잿빛 작업복 차림이었다. 수다를 떨며 활기차게 등교하는 학생들을 거슬러 공장으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가급적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 골목길을 찾아다녔다.

 

하루는 공장에 교복 입고 출퇴근하는 아이를 발견했다. 뭐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알아보니 고등공민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내 안에서 뭔가 ‘반짝’ 빛났다. 

 

“아버지, 저도 야간학교에 들어갈래요.”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말했다. 희망 같은 걸 언뜻 본 듯한 흥분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입만 바라보았다. 

 

“야간학교는 정규학교가 아니어서 3년 다니고 다시 검정고시 봐야 한다.”

 

아버지는 승낙하지 않았다. 돈벌이로 공장이나 다니게 하려고 공부를 막는다고 나는 단정했다. 아버지와의 길고 깊은 갈등의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오직 ‘공부하기 위해’ 아버지와 싸워야 했다. 

 

아버지는 중퇴긴 하지만 대구에서 고학으로 대학공부도 했던 사람이었다. 교사나 순경도 했었지만 외아들이라 부모님을 모시려고 고향으로 돌아올 만큼 효자였다. 대신 농사일은 하나도 할 줄 몰랐다. 

 

그러던 아버지가 성남으로 상경한 뒤로는 완전히 바뀌어 수전노가 되어 있었다. 악착같이 일하고 지독하게 모았다. 집에는 돈 버는 사람만 있고 쓰는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는 어떤 계기로 그렇게 변했을까? 재영이 형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안동양반 출신이에요. 젊은 시절엔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도리를 다한다는 식의 선공후사 같은 도덕의식이 있었어요. 동네일은 공짜로 다 해주면서 곧이곧대로 살던 사람이었죠. 자기가 가진 지식과 돈, 시간을 다 남을 위해 썼던 거예요. 그런데 그 결과가 뭐였냐? 성남에 와서 아버지는 체면과 명분, 공부, 이딴 거 아무 소용없다, 거지를 면하려면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결심한 것 같아요.” 

 

아버지에게도 아버지의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맘 같지 않은 세상에 상처받은 후로, 원래의 자신을 부정하며 살았는지도... 어쩌면 아버지는 평생 화가 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네 살 아들이 공장에 다니며 야간학교에 가겠다는 걸 막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권위적인 아버지를 둔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렇듯 내게도 아버지는 언젠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야간학교에 가지 말라는 말을 들은 날,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래 울었다.

 

<첫 번째 머슴'>

 

청년들께 드리는 글 - 청년의 삶을 개선하는 '첫 번째 머슴'이 되겠습니다.

 

제가 선대위 회의에서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권유한 것에 대해 '해석'이 분분합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립니다.

 

그 글을 읽어보길 권유한 이유는 "2030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정치인이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다"는 청년들의 절규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030 세대의 정치, 정치인 불신에 깊이 공감됐습니다. 지금껏 2030 세대가 겪어온 많은 정치인이 이미지 개선이나 득표율 등 소위 ‘단물만 빨아먹고’ 청년 세대를 내팽개쳐왔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은 이득이 될 때는 ‘기특한 젊은이’지만, 표가 안 될 때는 ‘세상 모르는 철부지’라며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국민주권국가에서 같은 1인 1표를 갖고 있지만 2030 유권자는 선거철마저도 동등한 동료 시민이 아니라 '동원'의 대상이거나 ‘이미지 메이커용 병풍’ 취급을 당해왔습니다.

 

하도 오래 속아와서 믿지 못하는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약속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 그 사람의 과거를 보고 판단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청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공동체를 위해 특별한 희생을 한 분들께는 특별한 보상을 드려야 한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처럼,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느그 아들”이라는 씁쓸한 말이 회자되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남시장 시절 전국 최초로 '군 복무 청년 상해보험' 제도를 실시했습니다.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에는 31개 시군으로 확대해 경기도 청년들이 군 복무 중 다쳤을 때 누구나 상해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청년께서 취업을 위해 발로 뛰고 계십니다. 기업 역시 필요한 일인데도 청년들만 온전히 부담을 짊어져서는 안 된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 18세부터 만 39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면접수당’을 지급했습니다.

 

청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청년기본소득을 지급했습니다. 앞으로도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 밖에도 여러 일을 해 왔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기성세대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기회의 총량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전환적 공정성장을 내세운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공정과 성장을 통해 기회를 늘리지 않는다면 청년들의 앞으로의 삶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청년들께서 “현실은 시궁창”이라며 체념하는 현실을 바꾸고 싶습니다. 저는 주권자의 대리인인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주권자이신 2030 청년들이 제안이나 부탁하는 게 아니라, 주인으로서 당당히 요구하시면 사리에 맞게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주권자의 삶을 개선하는 것은 정치의 책무입니다. 대통령은 국민과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모두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새로운 대한민국,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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