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의 '시(詩)정신', 그리고 '조국사태'에 관한 단상

'시'처럼 진실하고 진지하며, 정직하고 정의로운 '정신과 태도'를 견지, 실천한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9/10/13 [22:55]

<꽃 자 리>     

                    구 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우리는 지난 어느 시대보다 경제적으로 부요하며 사회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풍요 속의 빈곤', '불확실성의 시대', '위선과 반역의 세태', '불안의 시대'  현대의 사회현상을 표징하는 이런 테제가 발의되고 일반화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앞에 적은 싯귀처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고,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고,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그렇게 자업자득의 '자가당착, 자기배반'을 마다하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니와, 뼈아프게 반성하고 치열하게 일신해야 마땅하다.

 

"시(詩, poem)는 동일성(同一性)이다" 통시적(通時的)인 면에서 '변화'를 통하여, 공시적(共時的)인 면에서 '갈등'을 통하여, 동일성(identity)은 가치개념으로 충격된다. 세분화되고 복잡해진 현대사회는 일관된 자아도 볼 수 없고 인지할 만한 자아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인의 영원의 차원에 대한 갈망은 이러한 영원한 현재 속의 비극적 자아를 극복하려는 데서 발생한다(김준오, '시론'). 또한, 시는 노래(歌 가, song)이다. '시'에는 희노애락(喜怒哀樂, four emotions; happiness·anger·sadness·joy)의 가락이 있고, 가락에 '시'를 실어 부르는 것이 노래인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란 무엇인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0월 11일, 이 땅에 '독립·민주·평화'(3·1혁명정신)의 민족적 열망이 용솟음치던 때에 천부적 시인 한 사람이 인생여정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열강침탈·국권상실, 민족분단·동족상잔, 불평등·양극화로 이어지는 질곡의 역사, 그 인고의 세월 속에서 정련된 그의 '시문학'(詩文學)은 샘솟는 물줄기가 되어 사람들의 말라버린 가슴을 적시었다.

 

'시'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글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시짓기'(시작 詩作, write poems)는 결코 아무나 쉽사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한 '시정신'에 누구보다 투철했던 시인이 오늘, 탄생 100주년을 맞은 구상(具常, 1919~2004년)이다. 그는 '영원과 오늘', 그 화두를 시작의 모티브, 시의 메타포로 삼아 모든 독자들이 '인간다운 삶'의 의미와 가치, 중요성을 깨달아 마음 깊이 새기게 하였다. 그래서 온 국민을 불안과 혼돈에 빠뜨린 작금의 '조국(曺國)사태'를 필두로 한, 암울하기 그지없는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이 시인 구상의 '작가정신'을 더욱 뚜렸이 가슴에 와닿게 한다.

 

열다섯 살의 소년이었던 그는, 신학교에 입학했을 정도로 독실한 그리스도교(가톨릭) 가풍의 영향을 받았고 이를 충실히 따랐으나, 문학(시작)과 종교(신앙)의 기로에서 번민을 거듭하다 끝내는 자퇴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도 '종교학'을 전공할 만큼 실제의 삶과 실천으로써 그리스도교적 존재론을 성찰하였고, 시를 지어 이를 노래했던(읊었던) 것이다. 구상은 자신의 문학세계, 그 '시정신'에 따라 겸손과 선행, 곧 덕행실천의 삶을 일관하였으며, 독자들은 물론 여느 일반인들까지도 그런 그를 '구도자'로 일컬었다.

 

6·25 한국전쟁 중에, 어느 미군이 준 군복 천을 염색하여 지은 두루마기를 팔순이 넘도록 입어 제자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에피소드가 말해주듯 근검절약을 바탕으로 무소유의 추구를 철저히 실행하였다. 이를 통하여 곤궁한 문인, 장애인들, 가난한 교회, 문단을 위해 자선을 행하는 '이타적 삶'을 살았다. 뿐만 아니라,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지만, 한국전쟁이 터지자 서슴지 않고 종군기자로 투신하였고, 그후에는 여러 언론의 요직에서 주저하지 않고 반독재 투쟁을 위시한 '사회정의'(social justice) 실현에 앞장섰다.

 

그로 인해 정부의 탄압을 받고 옥고를 치르기를 마다지 않았던 '행동하는 시인' 구상은 강단에 서서 후학양성과 작품활동에 전념하며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변함없고 투철한 '작가정신'은 한국문학사에 있어 최초의 연작시를 짓게 했을뿐더러 가장 많은 다작을 하게 했다. 이웃 '사랑'의 실천(아가페, 이타행)이 최고의 계명인 그리스도교 정신에 터잡아 온 마음을 다해 시작에 정신하였는 바, 대표적인 연작시선집 '오늘 속의 영원, 영원 속의 오늘'은 전 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노벨문학상 본심 후보에 올랐다.

 

이렇듯 치열하게 시짓기에 열정을 쏟았던 탁월한 시인 구상은 복음묵상집을 비롯하여 수상집, 사회평론집, 희곡집 등도 지어냈던 문학의 거인이었다. 그렇지만 시인 자신은, 스스로 철저하게 '시와 그 영혼의 진실이 일치하는 삶'을 영위하였다. 살아 생전에 소박한 진실을 화려한 수사보다 고귀하게 여기는 '문학적·도덕적' 당위성을 근간으로 시작에 몰입하였던 것이다. '영원한 시인'이었던 그가 1999년, 중병이 들어 병상에 누운 채 힘겹게 유언처럼 썼던 글씨, 그 한 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세상에는 시가 필요해요"

 

지금, 사리사욕에 눈멀고 아집으로 귀먹은 소인배들이 국론분열을 촉발시켜 나라가 온통 갈등과 반목, 혐오와 증오의 험악한 감정에 휘말려 국정은 위기로 치닫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 그야말로 '부패망국'(腐敗亡國)의 지경인 것이다. 하여, 작금의 '조국사태'를 당하여 바라는 바는 국민 모두, 특히 지도자·위정자들이 시정신, 작가정신에 투철했던 '행동하는 시인' 구상의 삶과, 그가 지은 '시'처럼 진실하고 진지하며, 정직하고 정의로운 정신(사고방식)과 태도(행동양식)를 본받아 반드시 실천하는 것이다.

 

이로써 국민은 깊이 회심(回心, a change of heart)하여 화해·화합하면서 희망을 찾고 평화를 이루며, 지도자·위정자는 통렬히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보편적 가치에 헌신, 곧 멸사봉공(滅私奉公)·살신성인(殺身成仁)을 몸소 준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지도자로서의 진정한 '리더십'(인식·경청·선견지명)을 자각하는 동시에, '군자표변'(君子豹變, 역경)의 자세를 견지해야만 하는 것이다(군자표변, 표범은 가을이 되면 털갈이를 하는데 그 무늬가 뚜렷하고 매우 아름답다. 그처럼 '군자'는 자기의 잘못을 깨달으면 '표변', 즉 달리던 표범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듯 서슴지 않고 '곧바로 고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적극적으로 '여민동락'(與民同樂, 맹자)의 치세를 이룩해 나아가야 한다(여민동락,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한다' 이는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통치자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구상 시인이 간절이 염원했던 즐겨 '시를 읽고 노래하는', 그토록 아름다운 세상, 살기 좋은 나라, 잘 사는 국민이 될 수 있는 최상의 방편인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구상이 지은 또다른 명시 한 편을 깊이 음미해 본다).

 

<오 늘>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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