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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철학이다 (3)

철학적 사고와 실천이 성공적 '국정운영·국가정책'의 근본이며 기초다

권혁시 칼럼 | 기사입력 2019/03/19 [02:45]

정책은 철학이다 (3)

철학적 사고와 실천이 성공적 '국정운영·국가정책'의 근본이며 기초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9/03/19 [02:45]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부패한 정권을 전복시킨 대한민국 국민은 이태 전 2017년, 5·9대선을 통하여 '시민정부'를 세웠다. 그렇게 '11·12민주시민혁명'을 일으키며 불타올랐던 민심(국민의 의지)이 꺼져 버린 것으로 오인한 듯 국정농단의 2인자였던 황교안 전 총리가 정계진출을 획책하여 수구정당인 자유한국당의 대표로 선출되었다(“박근혜는 퇴진하라, 황교안도 물러나라!” 목이 터져라 외치던 민주시민들의 뜨거운 함성이 생각나게 한다). 그런데다가 어이없게도, 수구 적폐무리가 떨구었던 고개를 다시 쳐들고, 굳게 다물었던 입을 벌여 분별 없는 망언을 쏟아냈다.

 

(국민소환제가 실시되었다면) 일거에 파면, 퇴출되었을 '국정농단' 세력이 5·18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으로 폄훼, 모독하더니 지난 12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작심한듯 시민혁명에 의해 세워진 정부와 대통령을 촛불 대행센터, 김정은 수석대변인으로 비하·우롱하는 등, 방발을 서슴지 않았다. 이어서 엇그제는 긴급대책회의에서 이념독재와 공직선거법, 공수처법,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검경수사권 조정) 등 4대악법의 저지 의사를 당론으로 발제하였다. 게다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국론분열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좌파독재 장기집권 플랜을 거론하였다.

 

특히 북한군 개입(5·18민주화운동), 김정은 수석대변인(문재인 대통령) 등의 발설은 한겨레의 염원이며 정치적 사명인 남북관계의 진작을 통한 '평화통일'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수구 패권의식의 저의가 엿보인다. 이와 함께 친일파를 처단하고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한 반민특위가 국론분열의 원인이라는 오도된 인식과 발언은 역사를 왜곡, 호도하고 그 사실과 의미에 역행하는 반민족(친일)적이며 시대착오적인 퇴행적 매카시즘, 그 골수에 박힌 망발이다. 촛불 대행센터, 좌파독재 장기집권 플랜 운운 또한 부패한 정권을 준엄하게 심판한 현재진행의 '민주시민혁명'의 주체인 국민을 비방, 모독하고 민의를 거스르는, 국민이 아연실색, 경천동지할 망언·망동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규정한 4대악법, 특히 공직선거법 개정에 의한 '연동형비례대표제'에 대한 반대, 그리고 '경제의 위헌'에 관한 문제, 좌파독재의 장기집권 의혹 제기는 패권주의의 집착에서 비롯된 저열하고 구태의연한 발상이 아니면, 유치하고 무지몽매한 사고방식의 소치다. 한마디로 말하거니와, ‘국민대표성’을 극대화하므로써 직접민주제(direct democracy)의 기대효과가 큰 가장 민주적인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이며, 현정부의 '재정정책'에 의한 경제는 (방법론의 문제는 차치하고) 근본주의적 자본주의·시장경제의 폐단(신자유주의)을 보정하는 최선의 유효적절한 방책임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좌파와 우파로 구분짓는 것은 난센스이며 시대착오적이다 ㅡ 자유시장·자본주의(또는 부르주아)로 왜곡, 오인하는 '우파'의 기원·원의는 귀족계급, 곧 지배계급 및 기득권세력. 하여, 진보와 변혁(발전)의 반대 개념은 전통과 보수가 아닌 구태의연한 '수구'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좌파'(공산주의·사회주의)도 변화하지 않으면 수구이며, '자본주의'가 케인스주의(수정자본주의)처럼 변혁하면 진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와 진보가 문제가 아니라, (사적명리, 기득권 유지에 눈멀어) 의미가 없고 가치를 잃은 과거에 매달리는 무책임한 수구적 발상과 구태가 뿌리뽑아야 할 악폐일 따름이다.

 

그래서 앞에서 지적한 수많은 발설, 망언들에 비추어 엄중히 경고하고 촉구하는바 위정자, 특히 전 정권의 국정농단, 정치파탄의 (연대)책임자들은 다시금 대오 각성하며 은인자중해야 마땅하다. 그러지 않으면 지난 6·13지방선거에서와 마찬가지로 차기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 환골탈태(換骨奪胎)하지 못한 채 국민의 대리인 ㅡ 위정자로서의 역할, 즉 민주정치에 있어서의 기본인 '정책정당'으로서의 책무를 위시한 공적사명을 실천하지 않을 경우에는 돌이킬 수 없는 오명을 역사에 남기게 된다는 사실을 각별히 유념하기 바란다.

 

위기(도전)에 대한 대응(응전) 전략 ㅡ 인재등용 활용과 국민 공감대 형성,
탕평인사에 의한 유능한 '인적자원' 기용,

유효한 '정책·비전' 제시를 통한 범국민적 '신뢰·합의' 도출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위정자는 모름지기 국민의 마음(민심), 그 뜻(민의)을 따랐다. 더욱이 민주국가의 위정자는 국민의 공복일진대 더 말할 나위 없지 않은가. “성인이 정치를 하면 불변의 마음을 갖지 않고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한다” (聖人無常心 성인무상심 以百姓心爲心 이백성심위심. 노자, ‘도덕경’) 그야말로 '철학적 사고와 실천'이며 성공적 국정운영, 국가정책의 근본·기초다. 그런데도 앞서 거론한 바처럼 거의 모든 정치세력이 이를 망각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역행하는 이유의 핵심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단언컨대 사리사욕과 아집의 발로인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상기하여 경계할 바는 갈수록 저열해지는 수구 적폐무리의 몰지각한 행태와 저급한 성향, 정체성이다. "군자는 위로 통달하고(날로 고명 高明함으로 나아가고) 소인은 아래로 달통한다(날로 비하 卑下함에 이른다" (君子上達 군자상달 小人下達 소인하달. 논어) 이렇듯 유구무언이어야 마땅한 적폐세력의 겁없는 망언, 그것이 바로 '정부위기론'의 결정적인 단서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런데 수구세력이 국정농단의 죄과를,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석고대죄했던 사실을 잊고, 통렬히 반성하고 은인자중하기는커녕 그런 적반하장의 경거망동을 거리낌없이 일삼으며 갈수록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이 같은 몰지각하고 후안무치한 작태의 빌미는 과연 무엇인가.

 

그러한 이유의 근본적인 문제는 두말 할 나위 없이 무지무도하여 '정책철학'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상과 신념의 부재는 물론, 밑바닥에 깔려 있는 불안정한 '민생경제'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우려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상적인 경제제도, 학교설립 및 교육, 이로써 경제적 안정을 기하여 백성의 생계, ‘민생’을 유지하는 것이 왕도(민본주의)의 시작이며 교육을 통하여 ‘인륜’을 깨우치는 것이 왕도의 완성이다" (富之敎之 부지교지, 공자 ㅡ 맹자의 경세론). 하지만 돌이켜 보면, 역사적으로 국가와 그 정책의 위기는 상존성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안정과 발전의 관건은 상시적이고 피상적인 위기론이 아니라, 다변하는 모든 사태에 대한 유효 적절한 '대응'(response)이다. 이른바 '도전(challenge)과 응전(response)'이 바로 그것이다.

 

'도전과 응전'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사태의 문제(도전)에 대한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대처(응전)이며, '창조적 인물'(creative minority)들의 능력 발휘와 아울러 '다중(민중)의 힘'을 결집을 선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전폭적인 호응을 받는 '인적자원'(man power)과 믿음직한 '전략·비전' 제시를 통해 사회적 인식의 일치, 곧 '공감대'(국민적 합의)를 형성하여야 한다(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이로부터 자신감과 진취성, 여유와 유연성, 침착성과 치밀성, 안정감과 결연성, 그리고 지혜와 합리성이 창출되며, 이를 백분 발휘할 수 있다. 그로써 연속되는 모든 도전적 사태를 역전시켜 응전적 효과로 대반전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경제정책'의 가시적인 성과가 미진하다는 원성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는 심리적 현상을, 이해와 설득을 통해 신뢰와 기대를 갖게 하고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다(정부정책을 일방적으로 부정하는 이념경도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수구언론의 악영향도 자못 크다). 이러한 현상에 섣불리 대응하여 단기처방에 급급한 나머지 미봉책을 연발하고, 그런 탓에 경제정책의 기조가 크게 동요하여 향방이 묘연해져서는 안 된다. 수단과 방법에 골몰한 나머지 목적을 잊거나 지향점을 잃을 수도 있음을 명심하여 국가(경제)정책에 대한 철학적 신념과 방책을 견지해야 한다. 여기서 다시금 고찰하여 심기일전해야 할바는, 위대한 인류문명의 성립에 있어 '고난과 역경'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저명한 역사가, 문명비평가 아놀드 토인비의 주장이다.

 

그의 응전(논리)의 핵심은 요컨대, 무엇보다 중시한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의 역할이다. 따라서 이에 부합하는 '인재등용'(탕평인사)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분가지다. 그럴진대, "현자를 높이고 유능한 인재를 부려야 한다" (尊賢使能 존현사능, 맹자) 아울러 이와 병행해야 할 (국가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거듭 강조했듯이) 정책에 관하여 명확히 개념을 정립(정의 定義, definition)하여 국민을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목적의식'을 갖고 정책실현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국민은 국가의 주체이며 주권자인 동시에 국가·사회의 전 구성원(경영인, 노동자, 자본가, 소비자, 위정자, 공무원 등등)이며 이해당사자로서 국정운영에 대한 통제·협력, 비판·혁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않다" (네크라소프)

 

"그러므로 정책의 형성자, 집행자 및 수혜자 모두는 확고한 철학을 지녀야 정책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최고통치자는 선명하고도 확고한 통치철학을 지녀야 그의 철학을 실현하는 집행자들이 정책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으며, 국민들도 정책과정에 적극 참여하여 그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중략) 특히 급변하는 정책환경에서 상황변수가 많을수록 원리 즉, 철학에 충실해야 정책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본다" (김형렬, '정책은 철학이다') 부연하거니와, "정책은 철학이다" 그러므로 '경제민주화'는 경제정책의 일관된 지향이고 최종의 목표라는 정책이상(理想), 그 원리의 추구를 견지해야 하며,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 혁신성장)은 이를 실행하는 유효한 방책이라는 신념이 확고부동해야 한다.

 

그런 정책에 관한 철학적 '부동심'(不動心)과 함께 반드시 명심하여 선결해야 할 것은 거듭 언명컨대, 정책목표에 대한 올바른 정의다. 개념이 적확하고 분명치 않은 정책철학(정립)은 불가능하며 정책목표(실현)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경제민주화에서 소득주도성장론으로, 포용적 혁신성장(혁신적 포용국가)론으로 또다시 그 이름(슬로건)을 바꾸었으나, (어느 경제정책 관련 핵심 인사는) 이 역시 변함없는 '경제민주화'임을 재천명하였다. 어떻든 그 의미와 방향에 대하여 합당한 논리로 국민을 설득·이해시켜 목표의식을 갖게하고, 이로써 국민의 참여·협력을 유인(誘因, incentive)할 수 있는 확실한 '정의'를 정립, 설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경제의 최종 목표인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그것은 누누이 거론한 바와 같이 간단히 말하면 '노사공동경영'이 키워드다.

 

'정책철학'에 의한 경제정책의 '개념정립'(정의),
국민적 '공감대' 형성-목표의식 강화, '참여·협력' 유인 

ㅡ '협력자본주의·케인스주의'에 의한 '경제민주화' 추진

 

독일이 '경제민주화'(노사공동경영)를 성공적으로 실행하는 가장 모범적인 국가인데, 이른바 독일식 '협력자본주의'를 추구한다. 이는 기업 전체(노사)의 이익실현을 목표로 하는 경영방식이므로 시장경제원리에 준거하면서도 절차적 정의가 엄수될뿐 아니라, 국민에 대한 적극적인 사회권 보장을 국가 '정책철학'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통치원리에 따라 국민경제는 '복지경제'(welfare economy)를 지향하며 경영인·노동자의 동반자 관계에 의한 노사 공동결정·공동경영을 중심으로 하는, 이를 테면 '사회적 시장경제'의 지향, 실현을 기업경영의 사명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징적인 시스템은 기업체와 금융기관 사이에 긴밀한 연계와 감시를 통한 기업의 지배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사회·감사회는 단순히 각개의 주주 이익에 앞서 의무적으로 회사 전체의 이익 창출에 기여해야 하며, 기업의 승인 없이 주주가 마음대로 주식거래(양도양수)를 할 수 없도록 제한(회사정관 규정)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독일의 은행(금융기관)은 채권자·주주로서 대단히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미국과는 확연히 달라서 금융버블이 전혀 없다시피 한데, 그런 까닭은 금융변동(거래)이 심한 미국처럼 은행과 기업이 분산·분립적이지 않을뿐더러 '경영지원, 산업진흥'에 집중하며 기업의 생산에 철두철미하게 협력, 지원하기 때문이다(이렇듯 '경제민주화'를 경제목표로 하는 '협력자본주의'의 금융시스템은 투기적 금융을 강력히 배격한다).

 

은행(경영)은 오로지 생산증대, 산업발전의 확실한 조력자일 따름이지 결코 지배자(주역)로 여기지 않는다(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금융시스템을 일신하여 여신에 대한 결정 및 역량을 고도화시켜 '산업·생산지원'의 역할에 진력해야 한다. 이는 담보대출 관행을 탈피, 기업의 발전가능성에 대한 판단능력을 길러 이에 근거한 금융지원을 실행하는 것이다). 개관한 바와 같이 독일의 '사회적 자본주의'는 대단히 건전하고 발전적, 진보적이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인 독일(또는 일본)이 자본·노동, 경영·금융, 그리고 기업들 상호 간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협력관계가 이토록 발전한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연유로 하여 우리나라도 그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다. 피상적으로 보기에는 한국이 여러 모로 미국을 닮았기 때문에 경제도 미국의 자본주의와 유사하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신자유주의가 발호한 이후에 그런 인식이 더욱 더 커진 경향이 농후하다). 그러나 그 속내를 잘 들여다 보면 미국보다는 독일·일본처럼 협력자본주의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집단의 체제, 고용안정의 지향을 비롯한 공동체의식의 전통적인 인식도 그와 같은 특징이다. 그럴진대, 한국경제의 적폐로 지적받고 있는 재벌 주도의 경제구조는 변혁(개혁,혁신)해야 마땅하며, 그리하여 재벌자본의 소유권 제한·통제를 중심으로 민주적 구조조정(restructuring)이 실행된다면, '참여·협력'의 기업경영 구조, 곧 노사공동경영이 실현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렇게 되면 민주정치(시민참여 국정운영)와 민주경제(노사공동결정·경영)가 시너지효과(상승작용)를 극대화시킴으로써 민주적 협력자본주의, 곧 '경제민주화' 실현의 탄탄 대로를 향해 나가게 될 것이다. 이야말로 상생경제, 포용국가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렇게 명실상부한 경제민주화, 진정한 민주적 협력자본주의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중심 논리, 그에 따른 물질만능(물신 物神)주의, 이기주의를 쳑결하고 시장경제와 민주민권의 공존공생,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공동선으로 여기는 사회인식, 정치패러다임의 확립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특히 기업 경영주는 '사회적 책임경영'의 철학을 실천하여 노동을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여겨 노동자에 대한 고용안전성·안정성을 보장하여야 한다).

 

따라서 성장일변도의 소로(小路)에서 발길을 돌려 민주적 시장경제, 철학적 법치사회, 포용적 복지국가로 향하는 대도(大道)로 힘차게 걸어 나가야 장기 침체에 빠진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하여, 거듭 제언컨대 앞서 말했듯이 '경제민주화'를 꽃피운 독일의 경제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그러자면 반드시 선결해야만 할 인식변화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서로의 장점을 ‘상호융화(融化)’시켜야 할 인간이 창출한 귀중한 의식적 가치이며 실용적 방편이라는 '발상의 대전환'(copernican revolution)이다. 그 핵심은 진보적 자본주의인 '케인스주의'(수정·복지자본주의)의 철학(사상, 경제관)을 전적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이는 협력자본주의(노사공동경영), 곧 '경제민주화'의 이론적 근거인 동시에 인권과 노동권이 존중되고, 나아가서 노사화합을 통한 노동자대표 경영참여의 실현을 의미한다. 이렇게 경제정책에 관한 철학을 정립하고, 이를 실천해야 비로소 수정자본주의(복지·지도자본주의, 케인스주의)에 의한 '적극적 재정정책' the positive fiscal policy을 실시하여 중소기업의 '지불능력' 증대(포괄적 소득주도성장, 기업이윤·노동임금 연동)를 바탕으로 노동자연대에 의한 ‘임금 및 노동 제 조건의 사회적 표준화’가 보장되는 진정한 노사·노노관계, 발전적인 경제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책철학'의 정립과 실천을 통해 국가경영과 복지경제의 최대 현안인 ‘1 대 99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첩경이다.

 

그야말로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화한 ‘중소기업 부실, 고용불안·소득격차 및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대기업과 중소기업(대기업중심 경제), 수출과 내수(수출위주 경제), 부유층과 빈곤층(중산층부재 경제)의 ‘3대 양극화’를 극복, 타개하여 복지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부디 그리하여 '민생안정'의 기본인 경제발전을 이루어 국정운영과 정치적 불안정을 해소함으로써 서두에서 제기된 '위기론'이 불식됨과 아울러 명실상부한 경제·정치·사법의 트리풀 민주화를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모든 사설(邪說)과 반동(反動)을 일축하여 현재진행의 '11·12민주시민혁명'(촛불혁명)이 완결되기를 간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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