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의 회한 “자한당 조문 깃발 오면 던져버리고 싶다”"그 용기 기억하겠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떠나보낸 27년째 수요시위정기수요집회, "김복동 할머니 추모 이어져위안부 피해자 김복동(향년 93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지 삼 일째인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 1천372차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다. 1992년부터 계속된 집회다.
집회 현장에는 김복동 할머니의 영정 사진과 꽃다발 등이 놓였고 집회에 참가한 500여명의 시민들은 집회 시작 전 함께 묵념하며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추모했다.
정의연 한경희 사무총장은 "할머니들의 삶을 생각하면 먹먹하다"며 "오랜 세월이 흘러 오늘 1372차 시위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사죄도, 인정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 총장은 "김 할머니는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괜히 시작했다 하시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전쟁범죄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다"며 "큰 나무가, 나비가 된 할머니의 삶을 보고 '우리도 저렇게 싸워야겠다'는 마음으로 활동하게 만드셨다"고 말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이자 여성인권·평화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김 할머니는 숨을 거두기 5시간 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 달라.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을 나를 대신해 끝까지 지원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문 대통령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십시오"..고 김복동 할머니 조문행렬
김 할머니가 별세한 이튿날인 29일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와 사회 각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았다. 정계 인사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30일 아침 8시 10분께 빈소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떠나보내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면서 또 조문록에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십시오'라고 적었다.
강 장관은 빈소 앞에 마련된 시민들의 추모 포스트잇을 둘러본 후 “우리의 마음과 역사 속에 길이 남아주시오서”라고 적어 게시판에 붙였다.
김 할머니 빈소에서 잠시 묵념한 강 장관은 이후 유족과 대화를 나눴다. 병세가 위독해진 김 할머니가 모르핀을 투여하며 마지막까지 버텼다는 이야기를 들은 강 장관은 “끝까지 버티셨던 것”이라며 “할머니가 계속 지켜보고 계실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전 생애에 걸쳐 세계인권대회와 유엔인권이사회 등에서 증언하며 여성인권·평화운동 캠페인을 했다. 정대협과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세우고, 세계 무력분쟁 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해 정의기억연대 여성인권상 상금을 기부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지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용수 할머니 "복동 언니, 나 또 왔어..장학금 통장 보여주려"
“언니, 나 또 왔어요. 언니한테 장학금 통장 보여주려고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이용수(91) 할머니의 울먹임이 애닯다.
“그저께 내가 못 배운 게 한이 돼서 500만원 넣은 장학금 통장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날이 언니 돌아가신 날이지 싶어. 그래도 언니 나 잘했지요?”라며 말을 이었다.
3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김복동(93) 할머니 빈소. 전날에 이어 김 할머니 빈소를 찾은 이용수(91) 할머니는 영정 앞에서 준비해온 통장을 꺼내 보였다.
30일 빈소를 찾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이용수(91) 할머니. / 헤럴드경제
김 할머니처럼 어린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장학금 삼아 개설한 통장이었다. 이 할머니는 왜 하필 그 날이냐는 듯 한참을 울먹였다.
이 할머니는 전날에도 빈소를 찾아 “우리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아무 죄도 없다. 우리나이로 그때 열여섯살이었다”며 “일본이 진상규명에 나서 공식적인 사죄를 하도록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령의 몸을 이끌고 한걸음에 달려온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이 아직도 전쟁범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박근혜 정부가 강행한 ‘12‧28 한일합의’가 철회되지 않은 데 분노를 표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8년 동안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그런데 대통령 비서실장과 일본이 비밀협상을 하고 우리는 듣지 못했다. 우리는 그것이 너무 억울해 세계를 돌아다녔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용수 할머니는 “왜 10억 엔을 받아 우릴 팔아먹느냐. 자유한국당에서 혹시라도 조문 깃발이 오면 던져버리고 싶다”며 “200살까지 살아 반드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겠다”고 말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두고 일본의 전쟁범죄와 법적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채 10억 엔의 ‘위로금’을 받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해 비판을 샀다.
지난 29일부터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는 문재인 대통령부터 어린 학생들까지 각계각층의 애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고령의 나이에도 수요집회에 직접 참석하며 주한 일본대사관 앞을 지켰던 고인의 빈자리는 남은 사람들이 채우게 된다.
김 할머니의 장례는 여성 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치러진다. 2월 1일 오전 6시 30분 발인한다. 이어 오전 8시 30분에는 서울광장부터 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하는 노제가 진행된다.
영결식은 오전 10시 30분 일본대사관 앞에서 치른 뒤 충남 국립 망향의 동산에 안치된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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