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의 고전소통] 범지이리(犯之以利), 물고이해(勿告利害)

강점은 내세우고 약점은 말하지 않는다.

이정랑 칼럼 | 입력 : 2018/12/21 [14:46]

강점은 내세우고 약점은 말하지 않는다.

 

전국시대에 주조(周躁)라는 이름의 유세를 주로 일삼는 변사가 있었다. 그는 제나라에 가서 벼슬자리를 하나 얻을까 해서 제나라의 벼슬아치인 친구 궁타(宮他)를 찾아가 자신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자네가 나를 위해 제나라 왕께 이 몸이 외교 신하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을 좀 해주게나. 제나라가 나에게 힘을 빌려주면 위(魏)나라로 가겠네.”

 

친구 궁타가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이네. 그렇게 되면 제나라가 자네를 가볍게 여기게 될 게 빤하네. 그러니 자네는 먼저 위나라가 자네를 중요시한다는 걸 보여주어야 하네. 자네는 제나라 왕께 이렇게 말하게. ‘왕께서 위나라에게 바라시는 것을 위나라가 들어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제나라는 필시 자네에게 힘을 줄 것이고, 자네는 제나라에서 얻은 그 힘으로 위나라를 움직이면 되는 것이지.”

 

위의 이야기를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주조가 바라는 것은 제나라의 특사가 되어 위나라를 방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약 제나라 왕이 자신을 지지해주면 위나라로 하여금 제나라와 친하게 만들어 보겠다. 반면에 친구 궁타는 그 생각에 반대를 표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건 안 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네 스스로가 위나라에서 환영을 못 받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을 제나라 왕이 임용하겠는가. 여기서 주조는 그럼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물었을 것이다.

 

이에 궁타는 다음과 같이 요령을 일러준다. 자신감 넘치게 제나라 왕에게 가서 ‘위나라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제가 위나라의 힘을 기울여 왕께서 바라시는 것을 만족시켜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라. 그러면 제나라 왕은 자네가 위나라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 여길 것이고, 좋은 대우로 자네를 임용할 것이다. 그런 다음 자네가 그 힘으로 위나라로 가면, 위나라 왕도 자네가 제나라에서 권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네를 깔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네는 제나라 왕도 움직일 수 있고 위나라 왕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주조는 원래 무명의 인물로 제나라에서 벼슬을 얻는다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친구 궁타가 좋은 방법을 강구해주었다. 즉, 거짓으로 위나라의 이름을 빌어 자신을 높임으로써 제나라에서 벼슬을 얻는 목적을 달성하고, 다시 제나라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위세를 높인 다음 위나라가 자신을 소홀히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역시 전국시대의 유명한 책사의 한 사람이었던 소진(蘇秦)도 이 책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그는 ‘합종책(合縱策)’을 제안해 이름을 날렸다. 전국시대 7웅 가운데 서쪽의 진(秦)나라가 점점 강해지기 시작하자 다른 여섯 나라는 남북으로 연합하여 ‘반진동맹(反秦同盟)’을 결성했는데, 이를 ‘합종’이라 했다. 소진은 각국의 군주들을 찾아다니며 유세한 끝에 이 동맹을 성립시키고, 그 자신이 동맹의 사무총장격인 지위를 확보했다.

 

소진은 각국의 군주들을 설득하는 방법으로 우선 해당 나라들의 정세를 철저히 조사해서 그 장점을 뽑아냈다. 그리고 군주를 만날 때 그 점을 더욱 과장하고 보태어서 군주에게 그 점에서 이렇듯 뛰어난 나라는 본 적이 없다면서,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기는 데 최대한의 신경을 썼다. 그러나 그 나라의 단점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언급하지 않고 피해나갔다.

 

예를 들어 병력은 많지만 지세가 불리한 A국에서 유세할 때는 병력이 많은 장점을 극구 강조한다. 그리고 병력은 적지만 지세가 유리한 B국에 대해서는 유리한 지리 조건을 강조한다. 진나라에 대해 줄곧 두려움을 느껴오던 군주들은 이런 설득 공작을 거치면서 이내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때쯤이면 소진은 ‘A국의 병력과 B국의 지리적 이점을 합치면 어렵지 않게 진나라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손자병법’의 ‘구지 九地’에서도 ‘행동으로 보여야지 말로 설득하거나 이해시켜서는 안 되고(犯之以事, 勿告以言), 승리의 이로움을 말해 사기를 북돋아야지 닥쳐올 위험이나 해로움을 미리 알려주어서는 안 된다.( 犯之以利, 勿告以害)’고 했다. 즉, 군대의 일로써 움직이게 하고 언어로써 광고하지 않고 이득으로 움직이게 하고 해로움을 광고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감과 기세를 높이는 것, 이는 성공적인 지도자가 취해야 할 가장 유력한 방법의 하나다.

 

필자 :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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