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백비(白碑), 무덤도 이름도 없는 원혼비

정재권 | 입력 : 2018/10/23 [10:47]

음습한 수풀 골짜기를 오른다. 안경 밑으로 땀이 고이고 턱으로는 마치 수도꼭지라도 열어 놓은 듯 물줄기가 흘러 내린다. 바리케이드처럼 울창한 수풀은 마치 정적이라도 만난 듯 땅벌과 침노린재들이 붕붕 귓가를 위협적으로 스쳐 지난다. 머지않아 검푸른 곰팡이로 뒤덮힌 공터가 나온다. 탄약과 화약고가 있었던 자리는 원한에 사무쳐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정지해 놓은 것인지, 인적이 없고 풀소리 새소리도 없이 적막함이 감돈다. 이곳은 한국전쟁전후 기간 민간인들을 학살한 학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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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살지에 백비 원혼비를 세워 학살지 표식을 하고 위령제를 지내며 남한 전 지역의 민간인학살 역사를 알리는 이들이 백비순례단이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와 사회적공론화미디어투쟁단 및 후원, 연대단체들로 구성된 순례단은 전남 여수-순천-보성 지역을 시작으로 통영-함안-산청-부산을 돌아보고, 칠곡-대구-영천-영덕을 지나 청원-오창-노근리까지 35개의 학살지를 돌며 위령제를 지냈고 총 19개의 백비를 설치했다. 이제 제 5차 위령순례를 앞두고 있고 총 8차에 걸쳐 판문점과 한강인도교를 갔다 국회에 민간인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과거사법 재개정을 촉구하는 백비 봉납식을 갖게 된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 과거사법 재개정을 이뤄 낸다는 전국유족회의 강인한 의지가 백비순례 기획에 담겨 있다.

 

역사속으로 들어가 민간인 학살지를 돌아보며 백비를 세우는 일은 거대한 이념의 전장이 되었던 남북한 근현대사를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끝도없이 새겨진 행방불명자들의 이름들. 백비는 학살자들이 만들어 놓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반공 이념의 벽을 직시하는 일이고, 남북을 가르고 있는 철조망 이남에 버려지고 방치된 학살지들을 찾아가는 일이다. 자유민주수호와 멸공의 광기아래 자기손으로 땅을 파게 하고 그 웅덩이에 떠밀려 암매장 당한, 수도없이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처절하게 죽어간 민중들의 이야기이자 남겨진 후손들의 이야기이다. 동시에 1945년 8월 13일이래 70년이 넘게 분단이념통치, 연좌제와 국가보안법 아래 힘겹게 생존해 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야기이다.

 

백비 위령순례는 4차까지 국민보도연맹, 미군폭격, 빨치산 토벌과 부역혐의, 형무소재소자암매장 등으로 피학살된 학살지들을 찾아갔다. 1차 순례지로 찾은 여수-순천-보성 지역에서는 전남지역에서 벌어진 여순항쟁(1948년 10월 19일 봉기)의 경로를 따라가 보았다.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 남한단독선거에 반대해 일어난 제주4.3항쟁의 진압명령을 거부한 여수14연대의 봉기장소인 여수 신월동 무기고를 그 첫 번째로 방문하였다.

 

이 역사적인 장소에는 반인륜적인 백린탄을 생산하기로 알려진 무기상 한국화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어떤 무기협약에 따른 기밀성과 역사적 장소 보존의 필요성, 일반인들의 출입, 방문의 보장을 위해 언급할 수 없었다. 1948년 12월 1일 여순항쟁을 빌미로 국가보안법이 만들어 졌다. 반공법과 연좌제에 의해 족쇄가 채워져 살아온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는 것으로 국가보안법과 계엄령 아래 저질러진 학살을 대신해야 했다.

 

1차 순례에서 본 것은 국회와 정부가 아직도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의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와 국방부는 분명히 관련기록들을 낱낱이 공개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동안 이를 은폐하고 있고, 국회와 정부는 한국 근현대사의 민간인학살 본질을 잘 알고 있기에 지역별로, 사안별로, 유족회별로 분리 대응하여 관리해 온 것으로 보여졌다. 이는 민간인 학살의 문제가 바로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인 것이다.

 

동포를 학살하기를 거부하였다고 군사반란으로 규정하고 계엄령을 발동하여 지역에 몰아넣고 모조리 멸족시키는 행태는 고립을 피해 순천역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계엄군에 포위되어 순천교 다리밑에서 학살된 사실들을 보며 잘 알 수 있었다. 순천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길목인 예재 학살지와 민족교육의 산지인 양정원 터에는 입구를 차단해 놓은 가시나무 덤불을 만났다. 학살지에서 자주 만나는 이 독하디 독한 가시나무들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뿌리를 쳐내도 완전히 들어내지 않으면 또다시 자라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범석, 제주도경비사령부 제5여단장 김상겸, 부사령관 송요찬, 박승훈 연대장, 반군전투토벌사령관 송호성, 미군임시군사고문단 로버츠 준장, 하우스만 대위, 제5여단장 김백일, 12연대 백인엽, 제3연대 송석하, 제1제5연대장 최남근, 백선엽 정보국장(여순항쟁 당시), 제2연대 함병선 연대장, 김종원 대위, 경찰서장 이봉하, 정만득 지서장, 등 학살자들의 만행은 드러난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천인공로할 일들이었다. 이 학살의 책임자들이 이후에 민간인학살에 대해 어떤 처벌을 받았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     ©  정재권

 

2차 순례는 어려움에 부딪혔다. 부산 학살지의 안내를 해주실 유족회장님께서 병중에 누으셨다. 40도를 넘나드는 고온의 기후변화로 순례단 미디어 식구들도 기침과 컨디션이 난조했다. 난항이 예상되는 가운데 사전답사를 내려갔다. 부산형무소재소자들을 암매장했다는 정묘단과 바다에 유기했다는 장소는 찾을 수 없었다.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영도지역에서 부산형무소재소자들을 암매장한 장소를 찾아내었다. 이번에는 장승 솟대들과 공중화장실이 학살지에 들어서 있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정묘단 암매장 목격자들을 간신히 찾아냈다. 암매장된 시신들에 총상이 없었고 가스로 죽였거나 공기주사를 주입했을 것이라고 증언한다. 반공연맹회장이었다고 하는 목격자는 아직도 시신들이 트럭에서 쏟아지는 장면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수많은 독립군들을 배출했다는 부산지역의 대신동 학살지는 도심개발로 아파트들이 빼곡이 들어서서 부동산들과 경로당을 뒤져도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 소중한 역사를 잃어 버린듯한 허전함과 상실감이 밀려왔다.

 

인민군에게 쫒겨 피난한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는 임시정부가 아님에도 마치 독립군 행세라도 하듯이 버젓하게 임시정부기념관처럼 하여 자유민주주의와 혜안의 대통령으로 왜곡 찬양되어 있었다. 사회적공론화미디어는 그곳에서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라는 허상 아래 죽어간 이름들과 학살자들의 이름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통영과 함안, 산청지역은 한국전쟁기간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접전과 빨치산 토벌대의 토벌작전에 의한 피해가 참혹했다. 국군에게 밥을 해주다 남편은 전쟁터로 끌려가고 끝내 학살된 사연, 멸치창고와 곡식창고에 갇혀서 고문당하다 학살된 이들, 아버지를 본적없는 설움과 긴 세월 학살지에 제를 올리는 정성을 보여주신 유가족의 사연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3차 위령순례는 묻혀진 한국근현대사 민중항쟁의 좀 더 근원지로 찾아갔다. 1946년 10월 대구항쟁은 민생항쟁의 성격으로 해방후 미군정의 쌀공출과 일본으로 밀반입, 사재기에 의해 10배에 달하는 물가상승과 미군정이 콜레라 전염병 차단을 위해 통행을 금지시키자 물자공급이 끊기고 민생이 굶어죽는 아사 지경에 놓이자 대구시민들이 봉기한 것으로 이승만 정권은 이후 국민보도연맹 가입으로 이들에게 사면을 약속하고 대학살을 자행하게 된 진원지였다.

 

3차순례에서는 대구항쟁에 참가했던 유족회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죽은 사람도 억울하지만 산사람은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는 유족회장님의 눈물은 잊을수가 없다. 가창골 계곡은 현재 댐이 들어서 있다. 가증하게도 인근의 산들은 박근혜 영남재단의 소유였다. 순례단은 이곳에 백비를 세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다행히 대구에서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대구항쟁과 민간인 학살의 역사를 알리는 싸움을 지속적으로 이어 가신다는 후문이 들린다. 한 국회의원실로부터는 달성광산의 진상규명에 대한 노력의사도 전해졌다.

 

영천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서도 유가족분들의 참여와 관심이 그 어느때 보다도 뜨거웠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흐르는 와중에 과거사법 재개정을 외치는 목소리가 우렁차게 하나가 되었다. 영덕의 유족회장님께서는 행사 이후에 직접 서울 전국유족회 회의에 참석하시고 언론보도에 힘쓰시며 정성을 다하고 계신다.

 

4차 위령순례 청원, 오창 지역에는 지금까지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유가족분들과 주요 언론들이 참석하셨다. 미신고 유족분들도 함께 하고 계신다. 이분들에게 절실한 것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다. 국민들이 이 안타까운 사연들을 전쟁의 부수적인 죽음들로 치부하거나 또는 유가족들이 사사로운 과거사를 캐내어 국가로부터 배보상이나 타내려는 목적이 결코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 5.18광주의 유가족만큼 세월호 유가족들 만큼 더 오랜 돌덩이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계시는 이분들의 안타까움과 진심을 이해했으면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넘치는 자본과 유동화된 사회,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고, 고도의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산업성장과 누구나 누리는 부동산 혜택, 공정한 경쟁교육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자유민주주의 국가인지 돌아본다. 헌법정신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라는 허상과 체제보장을 위한 국가보안법의 이름하에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피를 흘렸는지 백비 위령순례는 그 역사의 무게를 들고 있기도 버겁다. 역사의 참담함과 왜 이런 역사가 규명되지도 못하고 후대들이 알지도 못하고 있는지 종전선언을 앞둔 분단의 현실과 국민개헌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어떠한지, 남한 국민의 DNA를 바꿔놓을 정도의 학살의 역사를 덮은채 과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인지 어떠한 미래전략과 평화를 논의하고 있는건지 묻지 않을수 없다.

 

 

사회적공론화미디어투쟁단 대표 정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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