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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양심] 위트컴 장군과 미국의 선택

나영철 | 기사입력 2018/10/11 [19:19]

[지식과 양심] 위트컴 장군과 미국의 선택

나영철 | 입력 : 2018/10/11 [19:19]

기즈칸, 알렉산더, 카이사르, 나폴레옹. 이들의 공통점은 위인전 주인공이자 정복자이며 ‘전쟁영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광개토태왕, 김유신 장군, 강감찬 장군 그리고 천재적인 전략과 지도력으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전쟁영웅’이란 지금까지는 왕국 혹은 국가들 간에 패권경쟁에서 남다른 전공(戰功)을 세운 자들을 위한 칭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앞선 전쟁영웅들과는 현격히 성격이 다른 전쟁영웅을 주목하게 되었는데, 그는 리차드 위트컴(Richard Seabury Whitcomb, 1894~1982) 준장이다.

나영철 한맥논단 지기

필자가 한묘숙 여사(1927~2017)를 처음 만났을 때가 4년 반 전이다. 당시에는 그녀의 남편이 미군 장성이었다는 소개와 함께 이름이 ‘위트컴’이라고 들었을 때는 생소했다. 한 여사와의 교류를 통해서 남편과 관련한 많은 에피소드, 주요사건들을 접하면서 점차 위트컴이라는 인물에 대해 매료됐고 자료들을 수집하면서는 빠져들게 되었다. 더욱이 한국전쟁 직후 이뤄진 두 분의 러브스토리와 전쟁참화 속에서 일어난 기록적인 실화들, 그리고 위기와 반전 등의 긴장감 넘치는 요소들을 접하고서는 영화제작을 구상할 정도였다.

리차트 위트컴 장군. 그는 ‘한국전쟁 고아들의 아버지’, ‘한국인 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장군’으로 불린다. 한국전쟁 직후 유엔군 부산군수사령관으로 근무했는데, 그에게 붙여진 별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3년 전쟁의 고통과 후유증으로 피폐해진 피난지 부산에서 다양한 구호활동을 펼쳤다. 또 부산대학교 부지 마련, 부산메리놀병원 건립 등 재건사업으로 크고 다채로운 업적과 일화를 남겼다.

위트컴 장군을 두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영웅의 진정한 표상이라고 확신하게 하는 사건의 시작은 1953년 11월 27일 발생한 한 화재사건에서부터이다. 처음에는 판자촌에서 일어난 작은 화재였는데 갑자기 불어온 강풍으로 지역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 화재는 ‘부산역전 대화재’로 기록됐다. 29명의 사상자와 6천여 세대 3만 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니, 전쟁의 악몽을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설상가상 부산 피난민들을 다시금 절망의 늪에 빠뜨린 대참사였다.

위트컴 장군은 재난복구에 전력을 쏟았고 스스로 갓과 도포를 입고 구호이벤트를 진행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여력과 한계에 봉착되어 깊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모든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수창고를 과감히 열어 이재민들의 구호활동을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군법을 어겼기에 본국으로 소환되었고, 미국 의회 청문회에 서게 되었다. 의원들의 책임추궁과 질타 속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이다!” 그의 말에 감동한 의원들은 전원 기립박수를 보내었고, 정부로부터 더 많은 구호물자와 자금까지 받아서 부산으로 돌아왔다.

당시에는 위트컴 장군에게 ‘영웅’의 칭호가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그 동안의 관례에 따른 ‘전쟁영웅’은 전투에서 이긴 자에게만 칭해져 왔기 때문이다. 위트컴 장군은 그의 연설에서 인류전쟁사의 전쟁승리 개념을 확장시켰고, 일생을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을 몸소 실천함으로 진정한 승리를 거둔 자가 되었다.

21세기의 미국은 지구촌 모든 국가들의 맏형과 같은 격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군산복합체와 금융기득권을 대변한 패권지배의 시대가 유지되어 왔지만, 이제 우리는 전체 인류가 한몸으로 구성된 네트워크 시대에 살고 있고 큰 전환이 필요한 때다. 마침내 사람이 사람을 견제하고 공격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인류전체와 지구가 위협받는 시대이다.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며 주도할 때에 전체 국가와 세계인들은 하나로 뭉쳐서 함께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위트컴 장군이 구현한 정신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미국에는 당시에 위트컴 장군에게 공감과 기립박수를 보낼 줄 아는 의원들이 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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