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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만 미쳤다고 해“...외로운 노인, 태극기·성조기를 들다

"청와대는 가짜, 서울구치소가 진짜 청와대"...파쇼적 대중선동 

정찬대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원 | 기사입력 2018/07/07 [06:26]

“다 나만 미쳤다고 해“...외로운 노인, 태극기·성조기를 들다

"청와대는 가짜, 서울구치소가 진짜 청와대"...파쇼적 대중선동 

정찬대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원 | 입력 : 2018/07/07 [06:26]

태극기 집회는 무엇으로 이뤄져 있을까? 태극기 집회의 '성분'은 무엇일까. 집회 구성원들의 참여 동기, 그들이 가진 신념, 그리고 태극기 집회가 보여주는 특성과 사회적 의미에 대해 심층 취재한 글이 <프레시안>에 실려 그대로 전재한다. 본 글은 정찬대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원이 <‘변형된 전체주의' 태극기 집회 - 민주사회를 위협하는 파쇼적 대중선동>이란 제목의 자신의 소논문을 요약한 것이다.

 

"다 나만 미쳤다고 해"...외로운 노인, 태극기를 들다

 

2017년 봄, 대한민국은 '촛불'과 '태극기'의 아우성 속에 있었다. 광장은 '혁명'과 '파쇼'가 함께 존재했고, 대중은 '선전'과 '선동'으로 갈리었다. 태극기 집회는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강조하는 전체주의 폭민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개인이 집회의 주체로 인식되는 촛불집회와는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의 상당수는 노년층으로 구분된다. 사회 약자와 빈곤층의 참여 비율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박정희 신화에 빠져 있는 사람들, 전쟁을 겪은 노인 세대는 '애국'이라는 이름의 교조주의적 독단론에 쉽게 매몰됐다.

집회 참자들을 그저 용돈이나 벌기 위해 동원된 관제데모꾼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태극기 집회에 대한 안일한 인식의 단순함이다. 그들의 정치적 신념은 거의 맹목적일만큼 강고하다. 또한 극우 반공에 대한 집착은 편집 수준으로 완고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부패한 보수정권의 홍위병을 자처하도록 했을까. 어떻게 선동되고, 어떻게 조직됐으며, 또 어떻게 맹신하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협하는 존재

 


제1차 촛불집회의 시작은 2016년 10월 29일 광화문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1월 6일 맞불 집회 성격의 '미스바 구국기도회'가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다. 실제 '맞불 집회'로 불리던 보수집회는 얼마 뒤 '태극기 (애국)집회'로 명명됐다. 개신교 극우주의자들의 기도회로 시작된 집회는 보수단체들이 결합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해임이 결정된 2017년 3월 집회는 절정을 이룬다.

태극기 집회를 특정 짓는 핵심어는 극우와 반공이다. 여기에 합리적 이성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한나 아렌트는 과거 전체주의 운동에 대해 "매우 광신적"이라고 평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합리적 사고와 이성이 결여됐다. 지금도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전 "계엄령을 선포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반공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몇몇쯤 희생되어도 괜찮다는 것이 이들의 기본 인식이다. 수백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이승만은 적화통일을 막은 국부(國父)이며, 개인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살한 박정희는 가난을 딛고 산업화를 일군 영도자로 칭송되고 있다.

이들에게 촛불혁명은 '김일성 장학생들'에 의한 정권 찬탈의 쿠데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집회 현장에서 마주한 많은 이들은 "문재인이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다. 김일성 장학생들이 국가기관을 모두 장악한 상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불법 감금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이것이 마치 신념처럼 굳어있었다. 어떤 설득과 대화도 통하지 않았다.

'위대한' 보수주의자로 불리는 칼 포퍼는 "열린사회는 전체주의와 대립되는 개인의 자유가 인정되는 사회이며, 여기서 개인의 자유는 다수의견과 다른 자신의 견해를 당당히 주장하고 펼칠 수 있는 사회"라고 규정했다. 다만, 포퍼는 그러기 위한 전제로 '비판적 논증'이 가능해야 한다고 믿었다. 전체주의는 논증이 필요 없다. 이미 맹목적이며 하나의 신념처럼 굳어있기 때문이다. 태극기 집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외된 개인, 그리고 계급 배반

"진보정책? 지들만 배불리고 있다. 절대 서민들에게 혜택 안 간다. 북한은 지주 것 뺏어서 토지든 재산이든 나눠줬다. 그런 북한이 지금 어떻게 됐나. 무상분배? 꿀단지 속에 꿀이 계속 있는 거 아니다. 나중에 다 망하는 것이다. 재벌해체까지 말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난민 된다. 젊은 사람들이 배고픈 시절 못 겪어봐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 이 나라 정말 큰일이다"(62세 여성 최모씨)

2016년 12월 겨울부터 매주 빠짐없이 태극기 집회에 나오고 있다는 한 여성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극빈층이다. 쪽방에서 생활하며 굶기도 일쑤라고 했다. 시위 도중 부러진 앞 이는 치료할 돈이 없이 그대로 방치했다. 그런 그에게 '왜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재벌을 옹호하는 보수정당보다 서민정책을 내놓는 진보정당이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다. 그는 "그렇게 하면 국가 망한다. 젊은 사람들이 다 속고 있는데, 자기들 배만 불리지 절대 혜택 같은 거 없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계급배반 현상(빈곤층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현상)의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6.13지방선거에서도 보수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또 다른 참가자를 만났다. 그는 충남 서천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대한문을 찾았다. 벌써 2년째 이어온 열성이다. 78세 고령에 지칠 법도 하지만 "나라를 생각하면 집에만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생활보호 대상자인 그는 공과금이 밀려 가스가 중단됐다고 했다. 핸드폰 역시 정지된 상태였다. 6월 25일 한국전쟁 기념식 대한문 집회를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1호선 열차를 타러 간다며 불편한 다리를 이끌었다. 그는 "젊은 사람이 문재인 하는 짓거리를 잘 봐야 한다"며 마지막까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외로운' 노인, '태극기 집회'를 찾다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은 대부분 노년층이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었고,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을 직접 체화했다. 1970년대 산업 자본주의의 역군이지만 적잖은 이들이 경제적·심리적 대비 없이 노년을 맞았다. 매년 노인 고독사가 증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 그들에게 태극기 집회는 매주 동무들과 만나는 모임과도 같다.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김영익(가명·83)씨는 그런 점에서 태극기 집회가 특별하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더 자주 대한문을 찾는다고 했다. "바람도 쐬고, 얘기도 하고, 사람들 만나니깐 서로 참여하는 것이다. 집에 있으면 답답하니까"라고 집회 참석 이유를 밝혔다.

그는 "오가다 친구들도 만나고, 자주 보는 사람들과 얘기도 나눈다. 그냥 놀러오는 기분으로 심심하지 않고 좋다"고 말했다. 다만, 그 역시도 전쟁 세대인 까닭에 "미국 때문에 우리가 산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건 꼭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족 내 갈등과 단절

태극기 집회는 세대 간 갈등은 물론 가족 내 갈등도 야기하고 있다. 최호영(가명·대학생·24)씨는 이른바 세월호 세대다. 책가방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있다. 그런 그에게 박정희와 새마을운동 뱃지를 옷깃에 단 아버지는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아버지 최진철(가명)씨는 1954년생으로 1976년 유신헌법 반대투쟁을 하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젊은 시절 이른바 좌파였고,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불만도 가득했다. 하지만 이후 삶에 치이면서 생활 정치와 멀어졌다. 그러던 2016년 12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보수로 완전히 돌아섰다. 나라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도 유신헌법 반대하며 데모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오랫동안 집권했지만, 김일성은 더 장기 집권했고, 정권 세습까지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나라를 먹여 살린 분이다. 그런데 그런 분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이 됐다. 그 분은 돈을 먹고 할 사람이 아니다. 친구들,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했는데 나만 다 미쳤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도 그냥 해상 사고였다. 그걸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나. 아들한테도 얘기했는데, 따지기만 하고 제대로 대화가 안 된다. 노인들이 괜히 떠드는 게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뭘 알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거주하는 김은주(가명·77)씨는 국정교과서 문제로 24살 대학생 손녀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어차피 대화가 안 통할 것을 안 그는 더 이상 정치나 이념문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는 전교조가 젊은 학생들을 모두 세뇌시켰다고 믿고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지지했다던 그의 아들(50세)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노년층과 비교적 진보적 성향을 지닌 자녀와의 이념 차는 가족 내 갈등으로 비화되며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김씨는 "좌파들이 가족까지 파괴시키고 있다"며 모든 책임을 진보정권 탓으로 돌렸다. 그는 매주 토요일 오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가방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가지런히 포개져 있다.

가짜뉴스, 그리고 선전 선동

 

 

"선관위 강성노조 장악 불법대선으로 문재인 당선" "대한민국 국가 부채 사실상 2000조 육박 문 정권 1년 사이 뭐했기에 국가 채무 550조 늘었나" "문재인 남한 정보 USB에 담아 통째 넘겨" "문재인 외삼촌 북한 고위직 문재인 조종"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는 이른바 '가짜 뉴스'다. 특히 지난 5월 '판문점 선언' 때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경제개발계획이 담긴 저장장치(USB)를 북에 건넨 것을 두고 온갖 낭설이 터져 나왔다. 서울 대한문 인근에서 만난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은 "군사 정보를 넘겼다" "고액의 은행 정보가 담겨 있다"며 가짜 뉴스를 공유했다. 문제는 이렇게 공유된 메시지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는데 있다.

6.25전쟁 기념식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경기 과천·44)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선 나도 잠깐 오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진실을 안다. 이런 사실을 알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집회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좌파에 모두 장악돼 왜곡된 뉴스만 보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교적 젊은층에 속한 그녀에게는 노년층이 보인 '나라 걱정'보다 북한과 진보에 대한 혐오가 더욱 짙게 느껴졌다. 그는 판문점 선언과 관련 '북한과 마냥 대립할 수 없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유 민주주의하고 공산주의하고 어떻게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느냐"며 "그냥 이대로 지내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통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내비친 것이다. 집회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수용할 경우 북한과 충분히 함께할 수 있다고 한 것과는 대조를 보였다.

그는 또 광주5.18민주항쟁에 대해서도 '북한군 침투설'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그는 "북한이 다 그런 거다. 증거도 다 나오지 않았느냐"며 "지만원 박사가 사진까지 분석해 밝혀낸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만원은 지난 2016년 7월 '5.18 북한특수군 침투' 주장과 관련한 항소심에서 패소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선 "김일성 장학생에 의해 사법부도 장악됐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증거가 다 있다. 조금만 알아보면 이 분(태극기 집회 어르신)들 말이 다 맞다"고 강변했다.

전체주의 운동은 지만원과 같은 극우보수 이념을 전달하는 메시아가 등장한다. '극우 논객'으로 알려진 조갑제, 정규재, 변희재 등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신격화한 대표적인 인물로 이러한 운동이 대중선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했다. 한나 아렌트는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한길사, 2006)에서 이 같은 현상을 "폭민과 엘리트의 일시적 동맹"이라고 꼬집었다. 또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이들의 동참은 전체주의 운동의 맹목적인 충성과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대중성을 담보한다고 말했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보수 기독교의 결합

 


태극기 집회의 시작은 보수 기독교인들의 '구국 기도회'가 출발이 됐다. 지난 6월 25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한국전쟁 기념 태극기 집회'에서도 교회 목사와 신도들이 구국 기도회를 갖는 등 예배를 진행했다. 이른바 '아스팔트 교회'였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한국 교회의 역사는 그 뿌리가 깊다.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해방 후, 그리고 한국전쟁과 군사독재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권과 보수 기독교의 결탁은 많은 폐해를 가져왔다. 1948년 제주 4.3 당시 민간인들을 무참히 살육한 서북청년단의 악행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극우보수 단체들은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까지 결성해 태극기 집회에 동참하고 있다.

극우 기독교는 반공 이념을 신도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입시켰다. 또 일부 대형교회는 교인들을 보수집회나 보수정당 후보의 지지대열에 동원시키기도 했다. 70대의 한 여성은 2016년 11월 7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두 번째 구국 기도회에 참석한 뒤 지금까지 매주 빠지지 않고 태극기 집회에 나가고 있다. 그는 "서경석 목사가 기도회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한번 가봤다. 그런 것이 지금까지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며 "(집회 참석에) 목사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를 집회로 이끌게 했을까? 그는 '종교적 신념'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선택한 이 나라에서 북한 빨갱이와 같은 사상을 가진 이들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교회에 애국자가 많다"는 말도 했다. '하나님 뜻은 그런 게 아닐 것 같다'는 물음에 "모르는 소리다. 북한이 얼마나 많은 주민을 죽이고, 인권을 침해하는데 그런 소리 하느냐"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봐야 한다"고 되받았다. 그는 주위 친구들에게도 태극기 집회를 권한다. "태극기 집회에 안 나오는 친구들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인들과도 집회에 나오는데,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그러면서 "지방에도 친구가 있는데, 멀어서 그런지 잘 안 온다. 나는 그 친구를 진짜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극기 집회에는 탈북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국내 전체 탈북자는 3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적잖은 수가 남한 정착에 필요한 직간접적 지원을 교회로부터 받고 있다. 남한에 안착하기 위해, 또는 사상 개조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이들은 교회에 다닌다. 극우성향의 목사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을 위해 이들을 적극 활용했다. 태극기 집회도 마찬가지다. 개신교 연구자 김진호씨는 자신의 논문에서 "탈북 단체들의 다수는 개신교 교회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탈북자 시위대들은 찬송이나 기도를 과장하여 드러내는 기독교적 제스처를 적극적으로 취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그는 태극기 집회에 이스라엘기가 있는 것도 보수 기독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없으면 대한민국은 공산화"

태극기 집회에는 두 국기가 늘 펄럭인다.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다. 집회 참가자 대부분은 미국의 원조를 받던 세대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없었다면 이미 대한민국은 공산화됐다고 굳게 믿는 이들에게 미국은 동맹 그 이상의 국가다.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은 "미국 때문에 우리가 자본주의를 이뤘다"며 "그 은혜를 모르면 벌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반 중국으로 가야 한다. 미국을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미국은 동맹의 수준을 넘어 '구원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미국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비슷했다. 이들은 "미국 없으면 안 된다. 그러면 대한민국 공산화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그들에게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물은 뒤 곧바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80대 한 남성은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을 계도하는 차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잘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문재인 하는 것은 공산당과 회담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이북사람 아니냐. 그래서 더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도 "미국이 북한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북한 아사자만 수백 만 명이다. 그런 거 생각하면 트럼프가 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묻자 "돈 퍼주면서 회담한 것"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태극기 집회 현장에서 만국기를 판매하던 한 여성은 "'북미'가 아니라 '미북'이다. 트럼프가 그렇게 한 것은 장사꾼이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확실하게 이익을 갖고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선 "문재인은 북한 지령에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이라며 "평화 어쩌고 하는데, 그건 국제적인 사기"라고 비난했다. 또 다른 여성도 "미국의 계획이 있을 것이다. 북한을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으로 끌어오려는 트럼프의 생각이 있을 것"이라며 북미정상회담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선 "문재인이 북한의 스파이란 얘기가 있다.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회담 자체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렇듯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북미정상회담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도 북한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를 갖고 회담을 이끈 것"이라고 호평했다. 반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선 '혐오' 일색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지령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가짜 뉴스'도 스스럼없이 밝혔다. 허무맹랑한 얘기지만 이들은 이것을 '진짜'로 믿고 있었다.

"친일? 지금은 한미일 공조할 때"

 


2018년 3.1절 기념 태극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일장기를 들고 나오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더욱이 그날은 3.1절 99주년이었다. 독립 운동가를 기리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린 상황에서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일장기를 손에 든 채 거리를 활보했다. 이후 집회에서도 일장기는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국민적 거부감이 강해 현재는 태극기 집회에서 일장기를 보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여전히 일본에 대해 매우 우호적으로 생각했다. 특히,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중국 지원으로 세워지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들은 중국을 견제하고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도 한미일 공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은 "내 롤모델(role model)이 유관순이다. 일제강점기 생각하면 물론 가슴에 맺힌다"면서도 "지금 국제 정세는 어쨌든 한미일이 공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여성은 또 "중국은 한일 관계가 적대적이길 원한다"며 "위안부 소녀상도 중국한테서 돈 받아서 설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북한 통해서 남한을 먹으려고 한다. 왜 그걸 모르느냐"고 핀잔했다.

또 다른 참가자도 "일본이나 한국 모두 중국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일 양국이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장기를 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산화되느니 차라리 미국의 한 주(州)로 편입되길 더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참가자는 "어쨌든 일본 때문에 중국 속국으로부터 벗어난 계기기 되지 않았느냐"며 "지금도 중국은 우리를 속국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한미일이 반드시 공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광화문은 가짜…박근혜 있는 '西靑(서울 구치소)'이 진짜"

태극기 집회 한 참가자는 이승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승만 박사'라 칭했다. 박정희 역시 '박정희 대통령'이라며 존칭했다. 그는 먹고 사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승만과 박정희 모두 그러한 측면에서 존경받아야할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문제를 언급하자 "이승만이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했는데, 무슨 소리냐. 그런 소리 할 거면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며 호통 쳤다.

박정희에 대해서도 "5.16쿠데타 때 사람 한 명 안 죽었다. 경제발전 시킨다고 그렇게 고생했는데, 무슨 사람을 죽였느냐. 대한민국 사람들 정말 천벌 받는다"고 분개했다. 그는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았다. 우리가 산 증인"이라며 "왜 우리 말을 듣지 않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가짜"라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가 옮겨갔다. 진짜 대통령은 '서청'에 있다"며 "광화문은 가짜가 있는 가짜 청와대"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말하는 '서청(西靑)'은 박근혜가 수감돼 있는 서울구치소를 의미한다. 이어 박근혜 에 대해선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잘못"이라며 "그걸 했으면 나라가 이 꼴이 안 났다"고 분개했다.

'변형된' 전체주의, 파쇼적 대중선동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이데올로기 대결 시대는 종식을 고했다. 하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은 여전히 냉전적 대결구도를 유지한 채 '반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국수주의적이며, 전위적이고, 반공주의적 대중선동은 탈냉전·탈이념 시대에도 여전히 거리 한 켠을 가득 메우고 있다.

독일 나치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는 "거리를 정복할 수 있다면 대중을 정복할 수 있고, 대중을 정복하는 자는 국가를 정복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체주의 선동의 핵심이 대중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군국주의 전체주의자들은 그렇게 고립된 개인을 조직하고 선전 선동을 통해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조직된 개인은 폭민이 되어 전체를 위한 도구가 됐다. 그것이 국가주의 역사이며,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입한 전체주의 역사였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극우 반공'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쿠데타도, 계엄령도 가능하다는 것이 기본 인식이다. 전체주의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며 여전히 극우세력은 반동을 꾀하고 있다. 방심하고 경계심을 늦추는 순간,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릴 때 전체주의 선동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더해져 예상치 못한 힘을 발휘한다. 박근혜 탄핵 사태를 전후한 '태극기 집회'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개인은 전체 속에서 비로소 존재가치를 찾는다. 전제주의 체제 하에서 보여주는 대중 선동이 태극기 집회 안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신념과 현실의 극단적 부조화를 겪는 이들, 변화를 거부하는 퇴행적 외침이 태극기 집회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태극기 집회는 그 자체가 우리사회 고질병에 대한 갖가지 함의를 담고 있다. 분단, 반공, 노인, 가정, 세대 등 우리시대 포괄적인 문제가 태극기 집회 안에 고스란히 반영된 까닭이다. 그리고 그 안에 어르신들의 삶의 농도 함께 배어있다. 불운한 과거와 통곡의 역사,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태극기 집회를 바라보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적지 않다. 물론 그 교훈이 '귀감'이 되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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