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신화는 'MB가 키우는 기레기'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명박 리포트] 7년간 자신을 모신 운전기사를 짜른 이유는 전세금 200만원 때문.

남영주 기자 | 입력 : 2018/02/25 [12:51]

 

11년전 , 2007년 이미 이명박의 실체에 대해 첫 폭로를 한 지침서가 있습니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이였을때 전 비서 김유찬 (대한민국의 공무원·정당인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자 이명박의 투기 의혹을 제기하였다.)


그가 집필한 이명박 리포트입니다.
이미 언론사기자들이나, 검사들은 이 책을 초입으로 읽었을지도 모르며, 이명박의 실체를 궁금해하는 시민들중 많은 분들이 읽으셨을겁니다.

 

이명박 리포트를 시중에서 구할 수 없으나 이주전 도서관에서 이명박 리포트를 빌려 보게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명박 신화가 가능했을까요.

 

0. 현대건설 정주영회장을 배반하고 돈을 뜯는데 성공한 이명박.

1.대필작가에게 거짓으로 자서전을 쓴다.

2. 거짓 신화로 쓰여진 책을 사재기해 베스트셀러에 올린다.

3.언론사에 로비하며 성접대로 언론사기자들을 매수

4.방송사에 돈을 주고 홍보.

5. 온갖종교를 매수 결탁 표를 얻는데 성공

6. 그래도 안돼면 불도저식 불법선거.


왜 2007년과 2008년 이명박 경선과 대선 이명박 정권내내,언론에 비리의 온상이 드러날 수 없었는지. MB언론 장학생들의 만행도 담겨있네요.

 

경제, 언론, 정치, 법조계, 종교계 등 전 분야에 마수를 뻗으며 돈으로 권력을 사서 거짓 신화를 만드는데 투기와 사기의 귀재 이명박. 다시는 이런 전과14범이 대통령이 되지 않으려면 돈과 권력이 거짓 신화를 만들지 않도록 불법선거를 근절시켜야 합니다. 돈과 권력이 언론과 공권력을 장악하지 않도록 이명박을 방조했던 사회각계각층에서 반성하고 자성해야합니다. 야심찬 이명박은 사람들의 성공과 돈에 대한 욕망을 잘 알고 약점삼아 기회를 얻어냈습니다.


이 책엔 MB재산관리인 김재정, 다스(대부기공), 친인척 측근 부동산, 은닉재산 ,차명계좌 등 이미 이책에 폭로되어 수록되었고, 이 가운데 김어준의 파파이스나 김어준 블랙하우스, 주진우 기자의 다스뵈이다 같은 시사 프로그램, JTBC, MBC 를 비롯한 언론과 검찰수사망에 밝혀지는 사실들도 있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신 김유찬씨의 행방불명설이 있지만 2013년에 이명박 리포트2 가 나왔고 2014년에 언론사 인터뷰가 있습니다.

 

김유찬 “국민들의 잘못된 선택, 역사로 보복 당한다” - 투데이신문
1996년 이명박 폭로 양심선언, ‘금권정치’ 경종 울리고자‘이명박 리포트’ 출간 당시 국민·진실이 방어막이라 생각국가지도자 범법행위... www.ntoday.co.kr

 

그 뒤로 어떻게 지내시는지는 모르겠네요.
이명박 리포트 아직 못 읽으신 분들께서 함께 읽길 바라며 공유하기 위해 책의 일부를 담았습니다.

 

이명박식 베스트 셀러 되는 법.


이명박씨는 자신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게 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중에 한 방법으로 자신의 책을 모조리 사버리는 것이었다.
여기에 동원된 인물들은 지구당 참모들과 그 식구들이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50권 혹은 100권씩 사들었다.
지구당 창고에는 그렇게 사들인 책이 일주일이면 수천 권씩 쌓여갔다.


따라서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몇달간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사들인 책은 추후,
지구당 부위원장들에게 판매되었다. 꿩 먹고 알 먹고 식 베스트셀러 조작수법이었다.

이명박? 그는아니다 35p

이명박과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

 


1996년 종로부정선거 양심선언 이후 이명박 캠프측에서는 나를 '배반자'라고 규정했다.
우리 정치판에서는 자신을 모시던 '주군'을 공격하는 행위나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행위를 쉽게 '배신자'로 낙인 찍는다.


나는 지난 10여 년간 모시던 주군을 배반한 사람이라는 부정적 여론 때문에 적지않은 마음고생을 하였거니와 취직등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하였다.

이명박 캠프측이 1996년 종로부정선거 실상을 폭로한 나를 배반자라고 규정한 것은 아래의 이유때문에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30여년간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회장이 자신을 키워준 정주영 회장을 등지고 떠난 그 복잡한 뒷이야기를 일반국민들은 알지 못한다.지금은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은 1992년 당시 권력의 횡포에 맞서 자신이 직접 대통령이 되어보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그것은 평생 사업만을 배운 사람으로서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유린당한 자존심을 스스로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그 울분을 보상받겠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1992년 대선 당시 '반값 아파트공급'. '경부고속도로 복층화 계획' 등은 그야말로 범국민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던 신선한 대선공약이였다


나는 상암동 137층 초고층빌딩 건립사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교회장로 한분의 소개로 당시 정주영 회장가의 종손인 정 모 박사를 알게되었다.


그는 과거 정주영 회장 생존 시 종손이라며 무척이나 아끼던 분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박사학위를 받아 모연구소에서 일하며 현 정권에서도 많은 역할을 하고 계신 분이었다. 현 정권의 한 모 부총리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필자는 그분을 통해 1992년 대선 당시 정주영 회장과 이명박 간에 있었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정말 내 귀를 의심할 정도의 내용이었다.
정 박사는 수시로 정주영 회장과 대면할 기화가 있었던 것 같았다.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회장과 동석하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하루는 이명박 씨가 찾아와 정주영 회장을 만나고 난 후 대화의 끝자리에 자신이 현대를 위해 많은 일을 했으니 그 보상으로 인천제철(현 현대제철)을 달라고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이때 정주영 회장은 잠시 충격을 받고 아연질색을 했다고 한다.
"별 미친놈 다보겠네!"
이명박 씨를 내보낸 후 정주영 회장의 답변이였다고 한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대선출마를 공식화한 상태였고 이명박 씨는 정주영 회장을 배반하고 반대편인 집권당의 전국구 의원으로 가기위해 암암리에 수순을 밟고 있을때였다. 이명박 씨가 정주영 회장을 배신하는 명분을 찾기 위해 정주영 회장에게 제시한 것이 바로 '인천제철'을 달라는 것이었다.

 

과연 이명박 전 시장은 정말 정주영 회장이 인천제철을 자신에게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본건데 불가능한 일이었고, 정주영 회장을 떠나기 위한 계책이었다는 것이 정 박사의 이야기이다. 떠나기 위한 빌미를 만든 명분이 바로 인천제철을 달라는 것이었다.

 

재산관리인 김재정 소유재산 실소유주는 이명박.


당시 감사원에서도 이명박 당시 현대 회장 앞으로 되어있는 다수의 부동산 등 정체불명의 재산에 대해 실제로 대대적인 감사원 자체감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41p


이 사실은 필자가 이명박 리포트를 집필하면서 당시 이명박 전 시장의 은닉재산으로 추정되는 부분을 실사했던 전직감사원 담당국장으로 부터 확인되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당시 최고 권력집단에 의한 감사결과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채 안개속에 묻혀버렸다.

최근 권영옥 국장을 통해 들은 말은, 이명박 전 시장의 실제적인 재산관리인인 김재정 씨의 소유 재산 대부분은 실제 주인이 이명박 전 시장의 것이라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권영옥 국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명박 전 시장은 그동안 30여년전 자신의 주군이었던 정주영 회장을 배반한 대가로 자신에게 돌아온 집권당 전국구 국회의원 자리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속여왔다는 것 밖에 안된다. 그리고 그런측면에서 그의 공식등록재산은 178억원이 아니라 수천억원에 달한다는 세간의 의혹과 주장에 대해'이유있다'는 결론이다.42p

 

다스 (대부기공)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이명박 전 시장은 그 동안 김재정 명의의 대부기공 주식이며, 김재정 소유인 대부분의 부동산은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국민들에게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숱한 재산검증과정에서도 그는 용케 피해갔다. 권 국장은 매제인 김재정이 지금은 자신이 병들고 세상에 대한 아무런 미련이 없고,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음을 비우듯 담담하게 술회했다고 전했다.


김재정 그 자신이 어떻게 그 많은 재산을 모았겠느냐고 스스로 반문하면서 말이다.
종로선거를 치르면서 나느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거의 매대자루에 현금을 담아다 쏟아 붓듯이. 치른 종로선거에서 과연 이명박 씨는 그 많은 돈이 어디에서 나서 선거비용을 조달할까 하는 의문이었다. 나중에 그 의문은 일부 법정에서 밝혀졌다.

 

그것은 그의 형 이상은 씨가 회장으로 되어있고, 매제인 김재정이 대주주로 되어있는 대부기공의 회계 책임자 정 모 씨가 법정에서 진술하는 과정에서 일부 밝혀지게 되었다.

 

당시 이명박 의원이 대부기공 (현'다스')의 돈으로 선거조직의 많은 이들의 급여도 지급하고 지구당 당직자들에게 '부장', '과장' 등 대부기공 직원의 직책도 마음대로 부여하였던 것을 보며 아 ! 대부기공의 실제 오너는 이명박 의원이구나! 하는 심증을 확실하게 가질 수 있었다. 

 

권영옥 국장의 진술에 의하면 이명박 전 시장이 나의 종로부정선거 양심선언 으로 인해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 이후 자신의 대부기공 (주)의 '부장'으로 발령을 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권국장은 그자리를 거부했다. 종로 지구당 기획부장이던 강 부장과 신모부장도 모두 당시 대부기공 소속되어 급여를 지급받는 형식이였다.


과연 제대로된 회사라면 이러한 일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결국 이명박 전 시장 측이 제아무리 감추려 해도 모든 정황증거상 대부기공의 실제적 오너는 이명박 전 시장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셈이다.

 

일이 터지면 이명박 전 시장 측은 대부기공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형 이상은 회장의 회사라고 우겨댔다. 그렇게 그는 지금까지 전 국민을 속여온 것이다. 원래 자는 사람을 깨울 수 있지만 상거래 상 얼마든지 회사의 대표이자 주주는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물론 법적으로 등기부 상의 대표이사나 주주가 그 회사의 대표이사고 주주이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나는 바로 이명박 전 시장측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김재정의 대부분 재산이 이명박 전 시장 소유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로 그의 재산관리인으로 알려진 김재정이 처남 권영옥 국장에게 한 고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이명박 전 시장에게 이부분에 대한 검증을 요구할 차례다.
만일 김재정의 고백이 사실이라면 이명박 전 시장은 그동안 철저하게 국민을 기만하고 속인 것이 된다. 이명박 씨는 국민이 무서운 줄 모르는 사람이다.

(61P 이명박? 그는아니다)

 

이명박 X파일은 어디에??

 

이명박 X파일은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를 경험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x파일이다. 걸어 다니는 X파일인 셈이다.


나는 그중 한 사람일 뿐이다. 나와 같이 짧은 기간 그를 경험한 사람조차 그에 대해 책 한권이 넘을 정도로 쓸 사연이 많이 있는데 수년간 혹은 수십년 간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더욱얼마나 많을까. 적어도내가 경험한 이명박 씨는 세간의 전설적인 명성과는 달리 치졸하고,인색했으며 그리고 병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의심했다. 내가 짧은 기간 함께 했던 그의 참모들은 모두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들이다.


그들 모두 현재는 호구지책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폐인이 되었거나, 평편없는 인생들이 되고 말았다. 그와 인연이 되었을 때는 참으로 영민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들이었는데 그를 떠나고 나서는모두일회용 소모품처럼 버림받고말았다.적어도 용감하 후덕한 장수 밑에서는장졸들이 크는 법이다.


그는 자신의 사족처럼 부리던 참모들을 이회용 소모품처럼 써먹고 용도가 폐기되면 가차없이 버렸다. 이명박 식의 용인술이었던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바로 이명박 씨의 X 파일이 그가 그렇게 팽시키고 버린 이들, 자신을 주군으로 생각하고 충성을 했던 이들, 그를 진정한 이 시대의 영웅으로 생각하고 따랐던 이들의 회한과 피눈물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씨는 현대건설의 신화를 독차지하고 그 숱한 중동 건설 현장의 산업전사들의 피와 땀을자신의 것으로 교묘히 포장해 가져갔다. 적어도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동료와 부하들의 피와땀방울이 아니었던 들 이명박 신화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이 키우는 MB 언론장학생(기레기)

 


그새끼 짤라버려 !
이명박씨는 참모들에게 지나치게 인색했다. 자신은 어디서 돈이 났는지 물쓰듯이 쓰면서 참모들이 무엇하나 진행하려 하면 의혹의 눈길로 지켜보았다.


종로 선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1995년 12월 어느날, 나는 일단의 언론사 기자들과 강남 룸살롱에서 술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당시 나의 주요업무중 하나는 이른바 언론인 즉, 기자관리였다.


지난번 서울 중앙지검에 정두언의원과 박형준 의원 등 현역의원 2명과 내게 돈을 전달한 사람 중 한사람인 권영옥 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는 자리에서 나는 기자들에게 월 평균 4,000만원 정도기자접대비를 사용한 사실을 공개했다.

자신의 인기 관리를 위해서 이른바 'MB언론 장학생'을 관리하기 위해 그는 거의 무제한으로 돈을 쏟아 부었다. 매일 찾아오는 기자들을 접대하기 위해 나는 현대판 '채홍사;노릇까지 해야만 했다. 밤이면 주지육림 속에 강남의 룸살롱에서 친 이명박계 기자들을 위한 거나한 술판이 벌어지곤했다.

혹여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쓸까봐 혹은 가능한 한 자신에게 유리한 기사를 써달라고 나는매일매일 성경의 10계명 중 하나를 어겨가며 기자들을 관리(?)했다. 물론 이 모든 행위는 이명박 씨의 지시 혹은 묵인 하에 진행되었다.

1차 식사대접, 2차 맥주파티, 3차 고급룸살롱, 4차로는 그 이상 접대까지 풀 서비스를 제공하고 내가 집으로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었다. 내게는 '월화수목금토일'이 아니라 '월화수목금금금'만 존재하였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기자들을 관리한 덕분에 늘 이명박씨는 훌륭한 인물로 묘사되어 기사에 실렸다.

당시 이명박 참모 중 종로에 주거지를 두고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랴부랴 참모들이 주거지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그중 주종탁 조직부장은 종로에 거주하고 있던 한 지인의 집을 얻게 되었다.

 

집주인은 이명박 의원의 조직부장이 임시로 거주하겠다는 말에 집세를 받지 않고 무상으로 임대해 주겠다고 했다.이미 주 부장은 자신이 살던 집을 빼 전셋돈을 손에 쥐고 있었다.
선거판이라는게 수시로 알게모르게 돈이 필요했다


주 부장은 결국 자신의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전셋돈을 헐어 지구당 조직운영비로 쓰게 되었다. 선거가 승리로 끝나고 난 후 당연히 이명박 씨가 정산해 줄 것을 기대하였다.
선거는 승리로 끝났다. 압승이었다.


전화벨이 울리자 사무국장이 전화기를 들었다. 이명박 의원이었다. 그러나 점차 전화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사무국장은 주 부장이 개인 전셋돈 까지 빼 이명박 의원의 선거비용을 조달해 썼다고 정산해 주어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그 새끼! 짤라 버려!"
이명박씨의 말이었다.

 

이명박은 종로부정선거를 내가 양심선언 형태로 폭로하자 처음에는 부정으로 일관하다가 다급해지니까 나를 적극적으로 해외로 빼돌리고는 사실을 은폐하였다. 그리고는 또 뒤에서 총질을 해댔다. 아주 형편없는 인간으로 말이다.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내지 않은 적이 없는 한 가정의 성실한 가정을 여기저기 술집이나 기웃거리고 여자관계가 복잡한 더럽고 추잡한 인물로 깎아 내렸다. 그리고 일부 이명박 언론장학생(기자)들이 이를 확대 재생산했다.

 

나는 이전 시장측이 국회의원 시절 국회담당비서였다. 돈 있고 잘나가는 이전 시장을 취재하려고 대한민국의 왠만한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은 다 찾아왔고 내가 이전 시장을 대신해 그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나는 이전 시장을 대신해 기꺼이 그 어렵다는 '술장부' 노릇도 마다하지 아니하였다. 내게 이 전시장을 모시던 1년간 토요일과 일요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날마다 정치부 기자들은 접대하느라고 심신이 지쳐갔다. 그들에게 1차 식사대접, 2차 강남 고급 룸살롱 술 접대, 촌지 챙겨주기, 그리고 그보다 더한 향응 제공까지 모두 이 전 시장의 적극적 지시 혹은 묵인 하에 진행되었다.

 

내 손으로 한 기자들 접대비만도 진술한 바와 같이 월간 4,000만원이 평균 넘있었다. 이광철 비서관을 통해 대부분 결제되었다. 이렇게 해서 관리되는 건 친 이명박계 기자와 언론인들만도 대략 40명이 넘었다. 이른바 이명박 언론장학생(기자)들 이다.

 

이들에 의해 이명박 씨는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기사가 실리지 않도록 여론을 호도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가 실릴 것 같으면 이명박 언론장학생들이 앞장서서 막아주었다.


나는 이들 이명박 언론장학생들을 관리하기 위해 청교도적인 나의 생활철학과 삶의 원칙도 모두 희생해야만 했다. 매번 기자들에게 밥 사주고, 술 사주고, 촌지주고 성 접대 까지 하면서 과연 그런 돈이 이명박 전 시장은 다 어디서 났을까 참 궁금했었다.

 

거의 매일매일 밤12, 새벽 1에 귀가하는 나를 두고 당시 아내는 캠프에 그렇게 일이 많으냐고, 쓰러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걱정했다. 가끔은 기자들과 술자리를 4차 5차까지 가는 경우에 동이 틀 무렵에야 귀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7년간 모신 운전기사를 짜른 이유는 전세RMA 200만원 때문.

 

필자가 1998년 제 2회 민선구청장 출마를 준비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하루는 우연치 않게 거리에서 이명박씨를 모시던 운전기사 이 모씨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지루한 법정공방으로 심신이 지쳐있던 때였다. 그리고 캠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심적으로 부담이컸을 때였다. 그러나 이 기사 거리에서조차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우리는 지난 이야기나 나누고자 인근 사우나로 자리를 옮겼다.
사우나에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그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김비! 김비 기자회견하고 난 후 얼마 안있어서 나도 짤렸어!"


나는 흠짓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혹여 나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나 때문은 아닌 듯했다.
"왜 형님을 짤랐어요? 형님은 이 의원을 오랫동안 모셨잖아요?"
한참 정적이 흘렀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내가 생활이 어려워서 이명박 의원에게 200만원만 꿔달라고 했어. 전세금이 올라 200만원을 갑자기 만들 길이 없었어! 바로 다음날부터 그가 나가라고 그러더라고.
그래도 성실하게 이 의원을 7년이나 모셨는데….,"

이명박을 떠나간 사람들.


나는 그렇듯 이명박 씨의 신기루를 보고 몰려온 이들이 하나 둘 떠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대부분 그의 메마른 인간성에 회의를 느끼고 떠났다. 내가 1996년 기자회견을 통해 그를공격한 근본적인 이유도 결국 따지고 보면 그의 '박덕함''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사람이란 익을수록 고개가 수그러진다고 했건만 그는 교만하기 그지없었다. 지금까지 인생성공의 모든 요인을 바로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오만함'이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현대건설 신화는 그가 혼자 이룩한 신화가 아니지 않은가. 위로는 정주영이라는 큰 바위가 버티어주고 끌어주었고, 밑으로는 열사의 나라에서 비지땀을 흘렸던 현장 근로자들의 피와 땀이 없었던들 과연 샐러리맨 신화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는 그 모든것을 자신의 공으로 독식했다. 결과적으로 많은이들이 손사레치며 그를 떠났다.

 

남영주 기자 : 오늘만 사는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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