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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석 판사 ”재판이 곧 정치...고착된 구시대 통념 자각하고 극복해야”

훌륭한 법관이라도 정치혐오 무관심 속에 안주하면 진정으로 훌륭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7/09/01 [03:55]

오현석 판사 ”재판이 곧 정치...고착된 구시대 통념 자각하고 극복해야”

훌륭한 법관이라도 정치혐오 무관심 속에 안주하면 진정으로 훌륭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서울의소리 | 입력 : 2017/09/01 [03:55]

현직 판사가 "판사도 정치성향을 드러낼 수 있고, 훌륭한 법관이라도 정치혐오 무관심 속에 안주하면 진정으로 훌륭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는 취지의 소신 글을 올렸다. 

 

▲     © 한국경제


31일 보도에 따르면 인천지법 오현석(40·사법연수원 35기) 판사는 전날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재판과 정치, 법관 독립’이란 제목의 글에서 “과거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에 판사들이 법률기능공으로 역할을 축소시켜 근근이 살아남으려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심리적 작용이 있었을 것”이라며 “정치색이 없는 법관 동일체라는 환상적 목표 속에 안주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 판사는 “새로운 시대는 이미 시작했다”며 “개개의 판사들 저마다 정치적 성향이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서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재판이 곧 정치”라며 “훌륭한 법관이라 하더라도 정치혐오 무관심 속에 안주하는 한계를 보인다면 진정으로 훌륭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 판사는 “판사는 양심껏 자기 나름의 올바른 법해석을 추구할 의무가 있다”며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의 해석, 통념, 여론 등을 양심에 따른 판단 없이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관들에게 정치적 다양성을 포함한 약간의 다양성을 허용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공존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며 “그것이 우리 사회가 미래로 나아갈 방향이라는 자신감을 판사들 스스로 견지하면 좋겠다”는 말로 글을 끝맺었다.


오 판사는 이달 중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10여 일간 단식을 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 후보자가 22일 양승태 대법원장을 면담한 뒤 법원행정처 차장이 인천지법을 방문하자 단식을 중단했다.

 

일각에서는 비판도 있지만 청량제 같은 소신있는 판사들의 정치적 발언은 이어지고 있다.

 

류영재 판사는 올해 대선 다음 날 인 5월 10일 소셜 미디어에 촛불혁명에 대해 '오늘까지의 지난 6~7개월은 역사에 기록될 자랑스러운 시간'이란 글을 올렸다. 

 

2011년 최은배 부장판사(퇴직)는 이명박을 향해 '뼛속까지 친미(親美)'라고 썼다. 그해 12월 이정렬 부장판사(퇴직)와 서기호 판사(전 국회의원)는 이명박을 조롱하며 소셜 미디어에 '가카새끼 짬뽕' '가카의 빅엿'이란 글을 올렸다.

 

다음은 오 판사 글 전문,

 

재판과 정치, 법관 독립

 

요즘에 재판과 정치의 관계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과거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에 법원 판사들이 법률기능공으로 자기 역할을 스스로 축소시켜놓고 근근이 살아남으려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심리적 작용이 있었을 것입니다. 즉, 정치에 부정적 색채를 씌우고 백안시하며, 정치와 무관한 진공상태에 사법 고유영역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고착시키며, 정치색이 없는 법관 동일체라는 환상적 목표 속에 안주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한 고착된 구시대 통념을 자각하고 극복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했습니다.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 본연의 역할은 사회집단 상호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얼핏 존경할 만하게 보이는 훌륭한 법관이라 하더라도 정치혐오 무관심 속에 안주하는 한계를 보인다면 진정으로 훌륭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따라서, 개개의 판사들 저마다의 정치적 성향들이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이제는 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법관 독립을 보장함으로써 사법부 판결의 그러한 약간의 다양성(정치적 다양성 포함)을 허용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공존 번영에 기여할 것임을 우리 사회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미래로 나아갈 방향이라는 자신감을 판사들부터 스스로 견지하면 좋겠습니다. 미성숙한 외부적 여건을 감안하면, 표현에서는 신중하게 할 일이지만, 이해시키고 설득해 나가야 합니다.

 

사람은 복제 로봇이 아닌 이상, 판사 개개인은 고유한 세계관과 철학, 그 자신만의 인식체계 속에서 저마다의 헌법해석, 법률해석을 가질 수밖에 없음이 자명합니다. 누구나 서로 다른 빠르기의 시간좌표계를 가진다는 진실을 밝힘으로써, 상식을 반성하고 통념을 극복할 기회를 제공해주었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비슷합니다. 물론, 광속 미만에서 로렌츠 수축이 미미하듯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해석의 차이가 경미하겠지만요.

 

독립은 의무이기도 합니다. 판사는 양심껏 자기 나름의 올바른 법률해석을 추구할 의무가 있고 그 자신의 결론을 스스로 내리라는 취지가 헌법 제103조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의 해석, 통념, 여론 등을 양심에 따른 판단 없이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명령이라고 말입니다. 차이와 다양성 자체가 의무일 수는 없지만, 법관의 독립을 긍인한다면 다소간의 차이와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파생합니다.

 

독립은 존재의 참된 본성입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佛家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하였고, 임제 선사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 하셨습니다. 그대로 받들기가 정말 어렵지만 무척 소중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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