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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의전팀장, 의전팀이 꼭 필요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걸 왜 남이 대신 해주나?"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6/05/21 [12:57]

박원순 "의전팀장, 의전팀이 꼭 필요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걸 왜 남이 대신 해주나?" 

서울의소리 | 입력 : 2016/05/21 [12:57]

#. 2012년 5월 18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여수세계박람회장 정문 앞. 서울시청 의전팀 직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박람회장 행사가 끝나고 만나기로 한 시간에 박원순 시장이 관람객들과 사진을 찍느라 제때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 시장은 관용차를 이용하지 못하고 다음 장소까지 일반 시민들과 섞여 임시셔틀버스로 이동했다.

 

#. 2014년 8월 15일 광복절 세종문화회관 앞. 행사가 끝난 뒤 후문으로 나오도록 돼있었지만, 내부를 둘러보다가 정문으로 나온 박 시장. 직원들에게 전화도 안하고 혼자 서울시청까지 걸어왔다. 직원들은 당연히 무슨 사고가 난 게 아닌지 비상이 걸렸다.

 

의전팀장에게 물어본 한 마디 "의전팀이 꼭 필요하나?"

 

시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수행해야 할 의전팀 직원들에게 시장의 행방을 '놓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을 수행하는 경우에는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난다. 박 시장이 시민과의 직접 접촉을 중요시하는 만큼 그만큼 밀착수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의전에 익숙한 정통관료 출신이 아니고 오랫 동안 시민단체서 잔뼈가 굵은 박 시장에게 의전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하고, 가급적 멀리하고 싶은 존재다.

 

"2012년 1월 의전팀에 온지 며칠 안 돼 시장님과 식사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의전팀이 하는 일에 대해 묻고는 '의전팀이 꼭 필요하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만큼 의전에 대해 불편해 하시는 거죠." 오성문 서울시청 의전팀장의 말이다. 이때부터 서울시청 의전팀은 의전을 담당하면서도 의전을 파괴해야 하는 역설에 처한 것이다.

 

기사 관련 사진
박 시장은 이전 시장이 쓰던 에쿠스 승용차를 팔고, 그랜드카니발 승합차로 바꿨다. ⓒ 연합뉴스
 

 

 

"내가 할 수 있는 걸 왜 남이 대신 해주나?"

 

박 시장이 가장 먼저 주문한 것은 차의 문을 열고 닫아주는 것과 비 올 때 우산을 씌워주는 것, 그리고 회의탁자에 앉을 때 의자 빼주는 것 등의 금지였다.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것을 왜 남이 대신 해주냐는 것이다. 전임 시장이 쓰던 검정색 에쿠스 승용차는 공매로 팔아버리고 그랜드카니발 승합차로 바꿨다. 호텔에 갔을 때 간혹 '뒤로 빼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빼고는 만족감이 높다는 후문이다.

 

외부 행사에서 예전엔 경호 차원에서 일반 시민들의 접근을 배제했는데, 지금은 완전 개방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회의에서 미처 못 들은 말은 시민들을 엘리베이터에 태워서 대화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민방위 훈련장에서 60대 여성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기도 하고, 재개발 현장에선 시민들이 허벅지를 끌어안고 못 가게 하거나, 에워싸고 협박을 하는 '불상사'도 있었다.

 

현장 방문 때 수행 인원도 대폭 줄였다. 예전엔 서울시장이 한번 전통시장을 방문하면, 국장, 과장, 팀장, 시의원, 의전팀 직원에다가 해당 자치구의 구청장, 수행비서, 실국장, 과장, 팀장, 주임은 물론 관련도 없는 총무과장, 총무계장, 총무계주임, 동장까지 '총출동' 해서 현장에 나온 공무원만 총 20-30명에 달했다는 것. 그러면 본의 아니게 상인들의 장사를 방해하거나 시민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고 정작 중요한 시민 여론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지금 전통시장을 방문할 땐 시장과 담당팀장, 비서관 등 3명만 가는 것으로 간소화됐다. 지난 4월 16일 팽목항에 부부가 함께 찾았을 때도 관용차가 아닌 개인차에다 비서만 1명 동반했다. 공항이나 철도를 이용할 때는 귀빈실을 이용하지 않고 일반인과 똑같이 줄을 서서 탑승하고, 간부들이 공항 영접을 나오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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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성동구 마장동 서울시설공단에서 열린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4주년 간담회에서 박원순 시장이 일반 참석자와 같은 의자에 앉아 노동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서울시제공
 

 

 

시장은 꼭 가운뎃자리에 앉아야 하나

 

일반 시민들은 눈치 채기 어렵지만, 시장이 참석하는 행사장 안에서의 의전도 많이 달라졌다. 시장은 다른 참석자와 달리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는 게 관행이었지만, 지금은 일반인들과 같은 것을 쓴다. 자리의 위치도 반드시 중간이 아니라 가장자리 혹은 뒷자리에 앉기도 한다.

 

특히, 일정상 행사에 늦게 도착할 경우 예전엔 시장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으나, 지금은 시간에 맞춰 일단 행사를 시작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도착한 뒤에도 행사에 방해되지 않도록 굳이 앞자리 혹은 가운뎃자리에 가지 않고 가급적 조용히 뒷자리에 앉으려 한다. 단상이 있는 행사장에서도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으면 가급적 단상에 올라가지 않고 단 아래에서 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한다.

 

표창장이나 위촉장을 주는 풍경도 달라졌다. 예전엔 시장이 앞에 서서 청중을 보고 있으면 받는 사람들이 차례로 나와 받아갔지만, 지금은 받는 사람들은 가만 있고 시장이 직접 와서 한 사람씩 준다. 실제로 최근 한 간담회에선 위원 100명이 앉은 테이블을 일일이 찾아가 위촉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행사장에서 시장이 가는 길에 빨간 카페트를 깔거나 시장 가슴에 코사지(가슴이나 어깨에 다는 꽃장식)를 다는 게 없어졌다.

 

그는 시민, 내빈과 똑같은 명찰을 단다. 정장 입은 도우미나 안내원, 경호원을 배치해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도 없어졌다. 제막식 테이프커팅도 예전엔 테두리를 치고 내빈들만 했지만, 요즘은 참가한 시민들과 함께 자르기도 한다. 야외행사 시 주요 내빈석에만 치는 햇볕가리개 차양을 없앴고 비가 오면 우산 없이 다른 참석자들과 동일한 일회용 우비를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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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용산가족공원에서 열린 제44회 어버이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박원순 시장. 일반 참석자와 똑같은 의자와 우비를 사용하고 있다. ⓒ 서울시제공
 

 

 

시장은 혼자 우산 쓰고, 구청장은 직원이 씌워주고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수십 년 간 쌓여온 관행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어렵다. 단체장 스스로의 실행의지와 추진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실무 부서 직원과 외부기관들의 협조가 따라주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장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가장자리나 뒷자리에 앉고 싶어도, 준비한 기관 입장에서는 시장이 가운데 앉지 않으면 행사의 빛이 바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진사들은 어디에다 초점을 둬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구청장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아직도 일부 구는 구청장이 차를 타면 문을 열어주고, 비오면 우산을 씌워주는 곳이 있다. 때문에 시장은 혼자 우산을 쓰는데, 구청장은 직원이 씌워주는 촌극이 연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시장이 온다고 구청 앞에 주민을 동원해서 도열해 기립박수를 친다든지, 평소에 안하던 물청소를 하고 계단을 닦는 등 70,80년대식 행태도 아직 남아있다. 연수나 파견 등으로 오랜만에 복귀한 일부 시 간부들이 예전 생각을 해서 강한 의전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년 간 다져온 의전파괴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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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가 지난 2014년 9월 투자출연기관장들을 포함한 3급이하 간부들에게 배포한 '의전혁신-소중한 약속' 실천강령 카드. '행사중 영접과 환송', '역할 없는 간부 행사참석' 등 5개 항목에 대해 자제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 서울시제공
 

 

 

"의전은 편리하고자 하는 것, 서로 불편할 필요는 없지"

 

박 시장이 취임한지 4년 반이 지난 지금, 서울시가 하려는 의전파괴는 얼마나 이뤄진걸까. 오성문 의전팀장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 50%밖에 이뤄지지 않았다"며 아쉬워하고 "박 시장 임기 마칠 때까지 90%까지 달성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서울시가 지난 2014년 펴낸 <서울시의전실무편람>에는 의전에 대해 "예를 갖추어 베푸는 각종 행사 등에서 행해지는 예법으로서 이는 곧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평안, 평화스럽게 하는 기준과 절차"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사람간의 예를 지켜 업무나 행사를 보다 매끄럽게 진행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오 팀장도 "과거에 의전이라고 하면 무조건 윗사람을 잘 모시는 것으로 인식돼왔지만, 이젠 행사를 잘 준비하고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의전파괴를 적극 지지한다는 본청의 한 국장급 간부는 "의전이 과잉으로 흐를 때 부하직원도 불편하지만 상사 역시 불편하다"며 "상하가 서로 편리하자고 하는 것인데, 예전 관습에 얽매여 불편을 겪을 필요는 없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업무 관련 마련된 손님과의 식사자리에 부하직원들을 줄줄이 대동해 가는 것도 구습이라며, 필요하지 않으면 가급적 혼자 참석하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오랜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지난 1월 처음 공무원 사회에 진입한 하승창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부임 초기 아직 국장들이 다 참석하지 않았다며 회의장에 들어가는 것을 만류해서 당황한 적이 있다"며 "회의 때 수시로 간부들에게 과잉의전을 자제하라고 지시한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메인 가기  [서울‘혁신’시, 무엇이 달라졌나 19] 의전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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