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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조작(趙作)씨의 안경(2)

소설가 김제영 | 기사입력 2015/06/24 [21:07]

중편소설-조작(趙作)씨의 안경(2)

소설가 김제영 | 입력 : 2015/06/24 [21:07]

간첩으로 잡힌 여인은 곧바로 석방이 되었다. 그녀는 정부의 고위직 공무원의 딸이었다. R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재학중인 재원이다. 고문전 차장은 이 사건을 수습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그녀를 서울로 압송한 요원이 휴가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알고 휴가비를 반납했다. 반납한 봉투를 그에게 내주며 상관의 너그러움을 베풀었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인기라. 앞으로 주의하기요. 내도 실수가 컸다. 그란디 우예 간첩이라고 단정을 했는교?

 

“망월동 묘지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광주시민은 다 알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 때문에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광주시민은 다 알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 때문에 감시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그래서 아무리 죽은 자가 그리워도 광주 사람들은 망월동에 가기를 꺼립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요. 그녀는 매일 나타났습니다. 감시원을 의식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이곳 정보에 어두운 외국에서 잠깐 다니러 온 여행객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뒤를 밟았습니다. 숙박계에 주소가 적혀 있지 않기에 여관 주인을 추궁한 즉 주소가 일정치 않으니 이 여관을 주소로 해 달라고 했답니다. 그녀의 옆방으로 우리들 숙소를 옮겼습니다. 밤이면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었습니다. 그중에도 망월동 묘지에 묻힌 자의 부모가 있었습니다. 여관에서 나오는 그녀를 불심검문했습니다….”

 

“아가씨. 잠깐 서시오.”

 

“나 아가씨 아닙니다.”

 

“뭐라구요. 아가씨가 아니라구요?”

 

“당신네들 늘 나를 지켜봤지 않아요? 내 남편이 거기에 묻혀 있어요.”

 

“어쨌든 신분증 좀 봅시다.”

 

“신분증 잃어버렸어요.”

 

“집이 어데입니까?”

 

“당신네들이 들어 있는 바로 옆 방이 현재의 내 거주지예요.”

 

그리고 요원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그녀를 미행한 게 아니고 우리가 그녀에게 미행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부쩍 의심이 가지 않겠습니까?”

 

“그게 다인교?”

 

“아닙니다. 우리에게 포획된 그녀의 거동에는 의심쩍은 데가 많았습니다.”

 

“하모. 맞다. 그랬을 기라. 나가보기요.”

 

그가 나간 후 고문전 차장은 혼자서 한참을 웃다가 중얼거린다.

-김봉래 이놈아, 우예 그리 성급히 가삐릿노-

 

김봉래는 대학도 사시(司試)도 동기다. 고문전은 제도권에서 승승장구했고, 김봉래는 반 군사정부 투쟁에서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선 진보적 인사들의 존경과 믿음의 대상이었다. 막달라마리아가 예수의 여인이듯 그녀는 김봉래에게 그러한 여인이요 동지이기도 했다. 운동권에 휩쓸리는 딸의 생활을 차단시키려고 부모는 그녀의 결혼을 서둘렀다.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유망한 청년이었고 가정 또한 정부의 요직에 있는 고급 관리여서 비슷비슷 잘 어울리는 짝이었다. 그러나 김봉래가 차지하고 있는 그녀의 가슴속은 그 누구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 누구도 김봉래의 맞수가 되지는 못했다.

 

그녀는 부모가 권하는 신랑 후보에게 충분히 자신의 입장을 설명, 정중히 단념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막무가내로 추근댔다. 과거를 묻지 않겠단다. 참으로 가소롭다. 세상 만사를 자기 본위로 해석하는 그들의 교만이 유치하다 못해 골빈 핫바지로 여겨서 그녀는 상대의 데이트 신청을 칼로 무 자르듯 거절했다. 그것도 모르고 양가에서는 결혼날짜 택일에 바쁜 걸음들을 하고 있으나 결혼을 피하는 길은 가출이었다. 사랑은 물리적 조건과는 별개이다. 끼리끼리 실컷 정략 결혼들을 해라.

 

그녀는 아무에게도 귀띔을 하지 않고 집에서 도망쳤다. 광주로 직행한 그녀는 낮에는 망월동의 김봉래와 밤에는 그의 가족과 오래간 만에 아늑하고 단란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어부가 고기망을 바다에 던지듯 그녀의 집에서는 그녀와 연관된 전국의 친족, 친지, 친구들에게 심인(尋人)의 망을 펼쳐놓았다. 그녀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현 주소를 서울역 대합실로, 공작금 은닉처를 도봉산, 마이산, 설악산 등으로 버티었음은 혹여 심인(尋人)망에 걸릴 우려에서였다. 그녀는 도주하다시피 뉴욕으로 떠났다. 고문전 차장이 그녀를 도왔다.

 

벌써 칠 팔년 세월이 흘렀다. 있지도 않은 공작금 은닉처를 대라고 그녀에게 무모하게 고문을 가했던 당시의 차장 직급에서 고문전은 현재 국장을 진급을 했다. 그녀는 가금씩 고문전 국장에게 뉴욕의 이야기를 써 보낸다. 설사 이념과 생활상이 극과 극이기는 하지만 김종래를 가슴에 묻고 사는 그녀에게 고문전 국장은 김봉래의 동기동창으로 김봉래에 대한 추억의 한자락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문전 국장 또한 그녀에게 이곳 소식을 성실하게 전해 주고 있다. 평생 그녀에게 무릎을 꿇어도 상쇄될 수 없는 수사 과오를 용서 받고 싶은 심리에서이기도 했지만 김봉래의 영향권에서 성숙한 그녀의 과학적 역사의식의 사고와 민족적 자각의 가치관이나 시각에 투영된 고문전 자신의 일상의 삶과 편린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그에게 내제된 정치 실현적 야망의 움트임 인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부모도 모르게 츨국하던 날.

 

“고 차장님. ‘도적이 도적이야’ 하는 꼴이예요. 어린애들 숨바꼭질도 아니고 소나무 뒤에서 망보고 사진 찍고 하는 요원을 철수시키세요. 그게 무슨 졸렬한 방법입니까. 5·18로 집권한 과오를 뉘우치고 광주의 희생자들에게 속죄를 하는 경건한 마음이 있다면 어찌 지천사어(指天射魚)와 같은 짓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내 대신 김봉래 동지의 무덤을 찾아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겠습니다. 정치문명의 이 시국에 불이익을 초래할 테니까요.”라고 했다.

 

그녀의 판단 대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단 한 번도 그의 무덤을 찾지는 않았지만 소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묘지 방문자를 사진 찍던 감시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고담이 되었고 오늘에는 성역으로 참배객이 줄을 잇고 있음은 망월동의 변화의 소식으로 써 보냈다. 엊그제 그녀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왔다.

 

-(전략) 김봉래 동지가 살아서 내 앞에 나타난 게 아닌가 했습니다. 물론 동양인과 서양인의 바탕은 다르지요. 정열과 의지와 지향하는 이상이 같다는 것이지요. 김봉래 동지는 내 남자이기에 앞서 내 스승이었습니다. 이 분 역시 그렇습니다. 내 지도교수이기도 하지요. 국제적으로 소수민족 연구의 권위자이기도 합니다. 유럽 출신 미국인입니다. 김봉래 동지의 이야기를 듣고 그분은 아쉬워했습니다. 어째서 김봉래 동지의 생명을 잉태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하구요. 김봉래 동지가 아기를 남기고 떠났더라면 우리는 그 아기를 키우는 행복이 더했을 것이라 구요. 우리는 그런 실수를 하지 말자고 정식으로 결혼 신청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결혼식을 생략하고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첫 논문집을, 난 내 창작집(이곳에 와서 소설을 썼음)을 결혼 기념 선물로 교환했습니다. 반지나 목걸이 등은 일절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노예를 묶던 쇠사슬의 의미지 때문이지요. 그 분도 나도 생각이 같았습니다. 맨하탄에 나가 한국의 음식점에서 한정식을 먹은 것 외에 결혼 비용이 $1도 들지 않았습니다. 결혼 선포를 해야 하니까 그때는 약간의 돈이 들겠지요. 파티비용 말예요. 다음 주에 단독주택을 갖고 있는 동료 교수네 정원에서 가든파티를 하기로 했어요. 독일에 계시는 그분 부모님들께서는 동양 며느리가 보고 싶다고 파티에 참석하겠노라는 기별이 독일에서 왔어요. 우리집에서는 쓰다 달다 기별이 없군요. 외국인 사위라니까 오 육십년대 동두천 여인들 생각을 하시나 봐요. 나는 이분의 리서치로 아내로 미국 속의 학문하는 동양의 한국인으로 대등하게 모든 권리를 누리고 있어요. 고 국장께서 우리 부모님 설득하시느라고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이야기 동생에게 들었어요. 고맙습니다. 또 쓸게요. 참. 고 국장님. 고문은 지구상의 어떤 범죄보다도 잔악하고 야만적인 범법 행위임을 잊지 않으셨겠지요. 이곳 뉴욕에까지 한국의 안기부는 고문기술 개발공장이라는 소문이 교포와 교포들 입을 통해 낡은 수도관에서 누수가 있듯 새어나오고 있습니다. 직접 당한 경험으로 미루어 우려가 됩니다. 건강하세요. 1989년 3월 송혜란!

 

계단을 다 내려온 고문전 국장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안기부에 남겨진 일이란 S의원의 검찰 송치뿐이다. 조서를 다시 꾸미라는 수사의 한계를 벗어난 부장의 요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이다. 그렇다. 평화당에 정권을 넘겨서는 안된다는 부장의 의지를 읽은 이상 주저할 이유는 없다. 그것만이 이곳에까지 밀려오게 될 동-서 화해의 물결을 막는 유일의 길이다.

 

수영 선수가 물에 들어가기에 앞서 준비 운동을 하듯 고문전 국장은 고개를 상하 좌우로 움직이고 주먹을 꽉 움켜 쥐었다가 손바닥을 펴 손가락을 엄지에서 새끼가지 접었다 폈다 되풀이하고 양 어깨를 앞뒤로 움직여 근육을 풀고 고문실로 들어섰다.

 

S의원을 지키고 있던 부하들을 내보낸다. 그는 S의원 앞으로 가 초죽음이 된 그의 턱을 손바닥 끝으로 살갑게 제낀다. 백공천장(百孔千瘡)의 몰골이다.

 

“의원님예. 우선 살아야카지 않겠는교.”

 

제끼어진 고개를 다시 떨군 S의원은 반응이 없다.

 

“보소. 어느 개가 짖느냐인교 와 말이 없는교?”

 

S의원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다.

 

“묵비권 행사인교?”

 

당연히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하는데 소 닭보듯 닭 소보듯이다. 고문전 국장은 슬그머니 배알이 꼬여왔다.

 

-내래 누구고. 산천초목이 떠는 대한민국 안기부의 대공수사국장인 기라. 니 내를 상기 몬 알아보나?-

 

고문전 국장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한 대 올리고 싶었으나 지긋이 격정을 누르고 국장의 품위를 가누며,

 

“보이소. 의원님예. 이래 갇혀서야 되겠는교. 날래 나가서 의원활동으 해야 하지 않겠는교. 실토르 하몬 곧 내보내 줄 거라예. 의원님과 나 둘 뿐이라예. 비밀을 지킬 기라예. 털어노이소.”

회유를 시도한다.

 

“더 할 말이 없는데 무슨 말을 허겄소. 참으로 답답하요.”

 

“총재님께 얼마 준 기요.”

 

“고로콤 사람을 못 믿겄소. 몇 천 번 말했소. 총재님께 드릴 돈이 없었다고 하지 않았소. 한심하요.”

 

“착각하지 마이소. 당신으 상기 국회의원인 줄 아는교. 간첩이요. 간첩은 사형이요. 알고 하는 소리인교?”

 

“정치가가 정치 활동을 했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위장을 하고 몰래 이쪽의 군사 기밀을 탐지했거나 국가 기밀을 남겨준 일이 없소. 공개적으로 당당히 내 동족의 땅에 다녀왔고 통일 연구비로 장기 무이자 융자로 돈을 얻어왔오. 냉동 장벽에 바늘구멍이라도 내놓으면 그 구멍으로 겨레의 숨결이 드나들며 그 구멍이 커지고 그리 되면 얼어붙은 냉동벽이 녹아내리지 않을까 분단국 정치인으로 당연히 해야 할 정치 활동을 다른 의원들보다 먼저 했을 뿐이오.”

 

“해야 할 정치활동으 먼저 했다꼬? 보소. 내가 누구꼬? 공안 검사에 대한민국 대공수사국의 왕초인기라. 내 수사 경력을 알고나 하는 소리인교? 그런 수작에 내래 넘어간다코 생각했는교? 총재에게 얼마주었는교? 죽고싶은교? 액수가 얼마인교?”

 

“준 일이 없소. 없는 것을 만들라 하요? 날 취조한 수사관에게 물어보소. 난 더 할 말이 없소.”

“이 문둥이 자슥 말하거라. 총재에게 일만 달라 주지 않았는교? 말 안하기가?”

 

발길이 올라가고 주먹이 나르고 머리채가 잡히고 코피가 터지고 아야 아~ 어~어 으윽, 으으. S의원의 공포와 고통에 자지러지는 고함이 터지고 고문전 국장의 이 새끼, 개새끼. 이 놈, 저 놈 등 육두문자가 난무하고 밀폐된 고문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심문이 아닌 이쪽이 필요로 하는 내용에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S의원의 몸뚱이는 구두발로 짓이겨졌다.

 

“말 안하기가? 공작금에서 총재에게 $10,000 주지 않았는교? 아니라꼬? 상기 맛을 모르나!”

 

일단 브레이크가 풀리자 고문전 국장은 짐승처럼 으르렁대며 S의원에게 덤벼들었다.

 

(다음주에 계속 이어집니다)

 

중편소설-조작(趙作)씨의 안경(1)

 

김제영(소설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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