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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산 죄인입니다. (518민족통일학교 개교에 즈음해)

남북한 정권에 있어 통일보다 더 높은 國是(국시)가 있을 수가 있나?

윤재학 칼럼 | 기사입력 2015/03/07 [15:13]

당신은 산 죄인입니다. (518민족통일학교 개교에 즈음해)

남북한 정권에 있어 통일보다 더 높은 國是(국시)가 있을 수가 있나?

윤재학 칼럼 | 입력 : 2015/03/07 [15:13]

 

▲ 오종열 선생

오종렬(吳宗烈)

1938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출생.

대한민국의 교육자, 시민사회운동가이다.

 

고흥에서 중등 교사로 발령된 이후 초, 중,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금산초등학교, 광주 동명여자중학교, 전남대학교 사대부속고등학교, 전남고등학교, 전남여고 교사로 교편을 잡았으며 1987년부터 전국교사협의회 활동과 교사 노조를 조직하는 노력을 하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이후 전교조 광주광역시지부 초대 지부장 등을 역임했다. 효순, 미선 사건 당시 미군 규탄,  노무현 탄핵 무효 운동,  FTA 반대 운동, 2008년 촛불집회 등에 참여하였다.

 

그밖에 언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였고,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로도 추대되었다.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민선 제1대 광주광역시의회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이상 인터넷 검색자료)

 

내가 본 오종렬!

 

키는 훤칠하며 젊었을 때는 매우 건장했을 체격이고, 백발의 머리칼은 하늘을 향하여 곤두서 있고, 눈은 한 밤중에 깊은 산속에서 맞닥뜨린 호랑이 눈 같이 형형히 빛나고 있지만, 그 범접 못할 정도로 형형한 눈동자에는 뭔가 모를 회한과 분노와 응어리가 깃들어 있었다.

 

통일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반독재 집회와 시위현장에 백기완 선생, 고 이소선 어머님(전태일열사 모친), 함세웅 신부님 등과 더불어 항상 참석하여 선두를 이끌어 가는 재야원로로 먼발치로서나마 존경을 해 마지 않았었지만 그분의 상세한 이력은 거의 모르고 있었다.

 

한 마디로 그는 죄인이었다.

1980년 5월 살인마 전두환이 풀어놓은 사냥개 진압군이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 때 오종렬은 광주의 한 여고 학생주임교사로서 수많은 자신의 제자들이 사냥개들의 총검 앞에 무참히 낭자를 당하는 것을 맨몸으로 막아서지도 못하고, 어린 제자들의 목숨을 구해주지도 못했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절규한 것이 전부였다.

1980년 5월 살인마 전두환에 의한 광주시민 학살

 

광주의 그 피의 광란 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이 죄다.

하기야 일당 천의 임꺽정 같은 천하장사라 한들 총검으로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고 드는 눈깔이 뒤집힌 사냥개들을 맨주먹으로 무슨 재주로 막아내고 제자들을 살려낼 수가 있단 말인가?

 

필자가 중고등학생이었던 것이 벌써 50년도 넘었으니 “학생주임”이 학교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직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실 안에서는 자신이 전공한 학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아직 미성년자인 교실 밖을 벗어난 학생들이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지키게 선도하고 그들의 안위를 지켜주는 것이 학생주임의 역할일 것이리라.

 

하지만 그는 제자들을 위하여 모든 노력과 정성을 쏟아 부었지만, 마지막 안위만은 지켜주지를 못 했다. 그 원죄가 오종렬 선생으로 하여금 앞에서 열거한 그런 가시밭길을 걸어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518민족통일학교

 

어제 광화문광장 kt빌딩 지하의 뷔페에서는 <5.18민족 통일학교> 후원의 밤 행사가 열렸다. 뜻을 같이하는 100여명이 모여 저녁식사를 곁들여 조촐한 자축연이 벌어졌다.

 

오종렬 선생께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5.18국립묘지 인근에 900여 평의 부지를 구입했고, 건축공사비 4억여 원은 뜻을 같이하는 단체와 개인들의 성금, 그리고 기능기부(건축공사 기능소유자의 무상노동 기부)등으로 충당되어 현재 공정률 80%이며 2015. 5. 18준공과 개교를 목표로 순항중이란다.

 

그 자축연의 자리에서 나눠준 유인물을 보고서야 오종렬 선생의 눈에 서린 회한과 분노와 응어리의 정체를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팜프렛의 구호는 “갑오에서 오월로, 오월에서 통일로”였다.

 

그렇다 갑오동학농민 혁명정신이 바로 5.18광주민중항쟁 정신이고, 5.18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이 바로 군인은 정치에서 물러나 정치인에게 정권을 맡겨 민주정치를 하게하라는 요구였고, 민주주의는 겨레의 꿈에도 소원인 통일의 길로 달려가기 위한 수단과 방법인 것이다.

 

남북한 정권에 있어 통일보다 더 높은 國是(국시)가 있을 수가 있나?

8천만 한겨레에게 통일보다 더 다급하고 소중한 꿈이 있을 수가 있나?

 

바로 동학농민혁명정신은 광주 5.18에 연결되고, 광주5.18정신은 민주주의를 거쳐 통일로 달려가자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갑오 동학난”이 “갑오 동학혁명”으로 역사의 재평가를 받는데 1세기가 걸렸다. 뒷날 통일이 된다면 “광주항쟁”은 반드시 “광주민중혁명”으로 높이 재평가 될 것이다.

 

그 팜프렛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오종렬 선생이 수많은 광주시민과 어린제자들이 살육당하는 현장에서 두개골이 두 쪽으로 갈라진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가 없는 어린 소녀의 참혹한 주검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선생께서는 항상 그 참혹했던 정경이 떠올라 한 동안은 수박을 입에 대지를 못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짧은 글을 읽는 내 목구멍에서는 붉은 선지가 목구멍을 치받고 올라오는 기분이었고, 가슴은 미국대사의 얼굴에 생채기를 낸 식칼이 아니라 날이 선 쇠스랑으로 쑤시고 할퀴어대며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과 같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아픔이었다.

 

35년이 지나 글 한줄 읽은 내 충격이 그러할 진대, 그 참혹한 정경을 직접 보셨을 오종렬 선생의 눈이 아무 근심걱정 없는 평화스러운 눈동자라면 그가 하는 민주화운동은 위선이다. 그분의 눈에 서려있는 회한과 분노와 응어리의 정체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아- 오종열 선생님!

당신은 죄인입니다. 당신은 어떤 영광스러운 직책을 맡던 간에 영원한 선생님입니다.

그 참혹한 학살의 현장에서 당신의 제자들을 지켜주지 못 하고 바라만 보았다니 어찌 죄인이 아닐 수가 있습니까?

 

하지만 그 죽음의 현장에서 당신의 목숨을 살려둔 것은 당신의 뜻도 우연도 아닌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아들이 숯덩이가 된 어머니의 심신을 하늘이 다독이고 지켜주어 아들(전태일)이 못 다하고 간 몫을 그 어머니(이소선)로 하여금 흔들림 없이 이루게 했듯이, 하늘이 제자들이 못 다 이루고 간 꿈을 당신이 현실로 만들게 하는 오늘 이런 일을 시키기 위해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그 현장에서 하늘이 당신의 목숨을 지켜주었던 것입니다.

 

오종열 선생님!

선생으로서 못 다 이룬 꿈, 새로 태어날 518민족통일학교에서 마음껏 펼치십시오!

그래서 당신의 형형한 눈동자에 맺힌 한과 분노와 응어리를 보고, 당신의 사자후를 듣고 깨우친 젊은이들로 하여금 휴전선 철조망을 시원 하게 걷어 내고 통일의 문을 활짝 열게 하십시오!

 

그 역할을 당신에게 맡기기 위해 하늘은 아들 전태일을 데려가며 이소선을 살려 두었듯이, 제자의 죽음을 바라만 본 죄인인 당신을 이 세상에 살려두었던 것입니다.

 

읽으신 분들에게 당부 드리는 말씀

 

518민족통일학교 건립에 꼭 돈이나 노동력을 기부하는 것만이 그 숭고한 뜻을 돕는 것은 아닙니다.  이 숭고한 발걸음을 해코지하고 딴죽을 걸고 나오는 세력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들도 입으로는 평화통일을 나불거리지만 영원히 분단국가로 남아 미국과 야합하는 정권이 뿌려주는 푼 돈 몇 푼에 현혹된 무리가 반드시 생트집을 잡고 518학교의 앞길에 재를 뿌리고 딴죽을 걸고 나올 것이 뻔합니다.

 

이것을 막아내는 것도 기부입니다.

우리 이 더러운 책동을 똘똘 뭉쳐 막아냅시다.

 

아-!

518민족통일학교가 꿋꿋이 자라나 평화통일의 열쇠가 되어야 할 텐데!

 

윤재학 칼럼 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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